산기슭에서, 나 홀로
우에노 지즈코 지음, 박제이 옮김, 야마구치 하루미 일러스트 / 청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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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지즈코 님을 알게 된 건 "비혼입이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라는 책을 통해서 였다. 우리엄마와 같은 해에 태어난 분이다. 엄마가 (그시절 부모들이 그러는 것처럼)서민가정주부의 삶의 질곡 속에서 고통을 호소할 때그녀는 드물게 혼자사는 공부하는 사람의 삶을 선택했다. 한참 페미니즘 책을 읽을 때 국회도서관에서 선생님이 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제본하기도 했고(절판), "돌봄의 사회학"이 출간되자 일단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책들에 밀려 아직 읽지 못하고 있을 때, 에세이 출간 소식을 알게되었다. 에세이라니. 내가 궁금했던건 그녀의 삶이기도 했으니 이 책을 먼저 읽어야겠다 싶었다.

선생님은 우연한 기회에 50대에 일본 야쓰가타케 남쪽 기슭에 집을 지은 후 20여년동안 도시(도쿄)와 시골 양쪽의 생활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에는 주요 터전을 시골로 옮겼다. 48년 생이니 올해 나이 만 77세. 시골이라는 공간에서, 비혼 여성으로 나이듦을 경험하는 이야기다. 선생님이 겪은 시골 생활의 어려움은 사실, 도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시골 생활을 저어하게 하는 요인들이다. 가드닝이든 텃밭이든 자연에게서 (아름다운 정원이든 맛있는 먹거리든)유용한 것들을 얻으려면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 도시에서 당연하게 누리는 상하수도 시설이 사실 애써서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 쓰레기 처리조차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점, 벌레에서부터 개구리, 뱀, 사슴, 멧돼지, 너구리까지 원래 그들의 공간이었던 곳을 침범해 사는 자로서 그들의 존재를 항상 인지하고 살아야한다는 지점까지 즐겁기만 할 수 없는 현실을 솔직하게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생활을 떠나 이주자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지는 관계들은 다른 삶의 활력을 준다는 점도 보여준다. 물론 도시에 집을 둔 채, 시골의 또 다른 집을 유지한다던가, 도시생활을 정리해도 시골에 맞춤형인 집을 지어 여유있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느정도 상위계급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방법들을 안다. 서로의 이전 직업을 궁금해하지도 않고, 사생활을 캐묻지 않고, 그저 함께 해서 즐거운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도시의 삶을 탈출하여 다른 시각의 삶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사람들이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년 퇴직 후 혹은 약간의 이른 조기 은퇴 후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만나서 내가 나인채로 관계를 맺고, 서로 돕고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주자 커뮤니티를 가진 시골 생활은 비혼인에게 도시의 삶보다 아늑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슬픈 것은...선생님이 20년동안 살아가는 동안...사람들이 나이를 들어갔다는 것. 선생님에게 기꺼이 정원을 빌려주어 도시락을 까먹는 즐거움을 누리게 해주었던 이웃, 반딧불이 장소를 안내해주던 동네의 명인이 더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리라는 얘기를 담담하게 할 때엔 나이듦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마음과 생각을 미리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생님도 이웃들과 관계를 맺으며 또 그들의 삶의 선택과 시간들을 관찰하고 고민한다. 언제가 내가 해야하는 그 고민을 하는 선생님의 행간을 느낄 수 있었다.

정희진 선생님이 어떤 강의에서 이제 나이가 들고 나서 더이상 페미니즘이 인생의 주제가 아니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노화와 나이듦에 대한 고민이 더 커졌다는 얘기였다. 문탁에서 만난 이희경 선생님도 나이듦이란 주제로 계속 공부를 하시고 삶을 모색하신다. 너무나 상투적인 말이지만 정답은 없다. 그러나 이런 고민들이 더 공개적으로 공론의 장에서 함께 이야기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돌봄의 사회학에서 이 고민을 길게 쓰지 않으셨을까 싶다.

야생동물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곳은 원래 그들의 땅이었다. 나중에 살러 온 인간들에게 피해를 보는 건 오히려 동물들이 아닐까?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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