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서재 결혼시키기'의 내용은 작가 앤 패디먼의 개인 적은 생각들을 나열한 에세이이다. 그러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책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만 모아놓고 있다. 책을 다루는 작가의 버릇에서부터 자잘하고 조잡한 것까지 책에 관련된 것이라면 그녀가 겪은 모든 것을 실어 놓은 책이다. 읽으면서 '참 솔직하게 써놓은 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악서라 생각되는 책의 작가와 제목(-물론 나로서는 모르는 책들뿐이지만, 그만큼 그녀의 독서량이 엄청나다는 것도 말해주는 것이다-)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써 놓았기 때문이다.
여러 글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의 가족들까지 책이라면 유별난 애정과 버릇들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앤 패디먼을 포함한 그녀의 가족들은 모두 작가이다. 심지어 그녀의 남편까지도.
그녀 혹은 그들이 읽고 지나간 소설, 신문, 잡지 등 문자로 이루어진 모든 것들은 바르게 쓰여질 행운을 얻음과 동시에 망신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패디먼 가족들은 레스토랑의 메뉴판을 봐도 본능적으로 교정을 시작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메뉴판 위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 글자가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제외한 우리 모두가 그런 자세였다 - 나는 우리 얼굴에 똑같이 떠오르는 황홀한 표정이 어떤 음식을 먹을까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는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데이라Madeira 소스에서 e자 하고 i자를 바꾸어 썼네.'오빠가 한 마디 했다.
'벨 파에제Bel Paese는 붙여 써 놓았네.' 내가 거들었다. '게다가 소문자로 써 놓았어.'
'그래도 지난 화요일에 저녁을 먹었던 집보다는 철자가 낫구나.' 어머니가 끼어 들었다. '그 집에서는 P-E-A-K-I-N-G(원래는 Peking(북경)) 오리요리를 한다 더구나.'
우리는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리 패디먼 가족은 수십 년을 같이 지냈으니 이제 정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우리의 부족적 정체성의 구석구석을 남김 없이 알고 있을 법도 한데, 아직까지도 진단해 내지 못한 가족 공통의 유전자가 적어도 하나는 남아있었다. 우리는 모두 교열 강박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이런 생활은 나로 하여금 동경과 동시에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의례 시중에 나온 책이라면 작가와 교정자를 믿고 내용에 치중했던 내게 이런 방식의 책읽기는 흉내조차 내기 힘든 위대한 능력으로 받아들여 질 뿐이었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패디먼은 단순히 책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 하나가 아니라 그녀의 삶 자체가 책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해졌음은 물론이고, 책에 대해 가졌던 상식과 위선도 벗어버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