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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염전 - 태양과 바다와 갯벌과 바람의 신을 만나다
곽민선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2월
평점 :
당신은 “염부(鹽夫)”가 표준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단어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국어사전에는 방언으로만 존재하는 단어다.
소금은 공기, 물과 더불어 생명의 필수 요소이다.
공기, 물을 만드는 이는 천지 창조주이다.
소금도 본디 창조주의 몫이었다.
창조주의 대리인으로
자연과 교감하며
소금을 생산하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이
“염부”이다. - P.58
이 책을 감상하며 충격적으로 다가온 단어가 “염부”였다. 물고기 잡는 사람을 “어부(魚夫)”, 농사짓는 사람을 “농부(農夫)”,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을 “광부(鑛夫)”라 하니 소금이 나오는 염전에서 일하는 사람을 염부라 부르는 게 마땅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염부는 국어사전에도 전남 신안지방의 방언이라고 기록돼있다. 염부는 제대로 된 이름도 갖고 있지 못하는 직업이다.
초가을은 햇볕이 좋고 바람이 선선해 소금이 오기에 좋은 환경이다. - P.52
소금은 바닷물에서 오기도, 생겨나기도, 태어나기도, 만들어지기도, 그리고 만들기도 한다. 또 바닷물에서 내기도 한다. 바닷물을 가두어 증발시키면 갯벌의 수많은 미생물이 그 바닷물을 정제한다. 옆으로 옮겨 한 번 더 증발시키고 그 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볕 좋고 바람 좋은 날 소금을 불러온다. 기다란 막대기 끝에 달린 “대파”를 가지고 소금을 긁어모아 비로소 소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천일염은 신이 만들어 낸다고 작가는 말한다. 바람의 신, 갯벌의 신, 태양의 신, 그리고 바다의 신이 함께 불러오는 것이다.
한낮 태양이 내리쬐는 염전에서 염부는 매번 태양의 신을 만난다.
태양신은 투명한 바닷물을 백색의 생염(生鹽)으로 창조한다. - P.35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투명한 물에서 흰색의 소금을 만들어내는 태양.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신의 속성이라면 소금은 태양의 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이다.
소금 입자에 공간이 있는 것은 빛과 바람이 머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P.145
소금값이 제법 오르고 있다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류 때문이다. 하지만 책은 소금의 생산자나 소비자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소금을 불러오는 신, 소금을 긁어모으는 염부, 그 소금에 섞여 있는 땀, 그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금을 이야기하지만, 소금의 이야기는 전부가 아니다.
책을 처음 받았을 때 판형이 커서 부담스러웠다. A4용지 한 장 보다 조금 더 큰 판형으로 무게도 제법 묵직해 잠자리에서 읽기는 어렵겠다 싶었다. 하지만 책의 겉장을 여는 순간 첼로를 안고 자세를 취한 작가의 사진에서 유쾌함이 느껴졌다. 어느 농부는 키우는 작물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들려준다던데 작가는 소금에게 첼로 소리를 들려주는 것일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책장을 넘겼다.
책의 머리말을 쓴 건 4년 전으로 기록이 되어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출간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새벽의 염전 이야기로 시작해서 소금의 생산과정으로 끝을 맺고 있다. 하지만, 책 전부는 그것이 아니다. 글은 시(詩)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내용은 시보다 더 진한 여운이 있다. 함축적인 단어, 공감각적인 특별한 요소가 없는데도 읽는 순간 그대로 시가 된다.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 본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