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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 아킬레스건 완파 이후 4,300㎞의 PCT 횡단기
정성호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책은 제목처럼 걷는 이야기다. 처음부터 걸었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걸었다. 마치 <나는 걷는다>의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아나톨리아 횡단처럼 작가 역시 끝이 나지 않을지도 모를 길을 걸었다. 매일 걸었고 또 걸었다. 아파도 걸었고 그렇게 쉬었다가 또 걸었다.
책의 페이지마다 그 걸음이 느껴져서 나도 함께 걷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의 아쉬움이라면 각각의 이야기마다 날짜를 함께 적어 주고, 걸었던 길을 지도에 표시해 주었다면 공간과 더불어 시간에서도 독자가 작가와 함께 하고 있다는 실감나는 느낌이 더 들지 않았을까 싶다.
오자가 몇개 있어 조금 신경쓰였다. P.18 아킬레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하지만 유일하게 강물이 닿지 않은 발목에 화살은 맞은 그는 죽음이라는 숙명을 피할 수 없었다.”와 P.26에서 배낭의 무게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뜸하게 있는 물 포인트에 맞춰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아 항상 배낭은 항상 무거웠다.”는 걷다가 덜컥 걸려버리는 돌부리 같은 느낌이었다.
4,300km의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마라톤이나 히말라야의 등정보다 훨씬 더 고되고 외로운 길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매일을 걸으며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것 역시 아주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셰릴 스트레이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리즈 위더스푼이 주연을 한 영화 <와일드>를 보고나서 PCT에 대한 강한 열망이 솟구쳤다고 했다. 나 역시 그 영화를 개봉일에 맞춰 보았다. 그리고 똑같이 PCT에 대해 열망이 솟았지만 작가는 행동했고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 작은 차이가 사람을 이렇게 다르게 만드는 것 같다. 작가는 걷다가 만난 “네이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그 사람이 하는 선택에 있다고 생각하거든.(P.217)”. 작가의 선택과 나의 선택하지 않음에 대해서 어떤 결과를 가져온 것인지, 또 가져올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작가는 걸었다. 그리고 나는 한 발자국도 떼지 못했다. 그것만으로도 작가는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것 같다. 작가의 한 걸음이 독자들에게 어떤 생각을 만들어 줄 수 있을지는 시간이 지나고 독자 스스로가 알게 될 것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작가와 함께 캐나다 국경에서 함께 소리쳐주고 싶었다. 그리고 등을 두드려 주고 싶었다. 수고했다고. 책을 읽는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걸었고 함께 다리가 아파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작가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고 위로를 받고 싶다면 아주 조금은 문장을 다듬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