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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Let 다이 15 - 완결
원수연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저자: 원수연

 

 

           *이미지 출처: 알라딘

  

 

  렛다이가 드디어 끝이 났다.

  Full house로 유명한 원수연님의 렛다이는 한국만화에서 흔치 않은 소재인 동성간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이야기다.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동성애에 대한 만화나 소설 등이 물 위로 올라오는 추세라 단순히 동성애를 다룬 만화라는 점에는 그다지 특별 할 것이 없으나 그 소재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여느 한국 동성물과의 차이랄 수 있겠다.

  현재 한국에서 읽히는 동성애물의 90%이상이 일본의 ‘야오이’이다. 이 야오이는 [주제 없고], [소재 없고], [의미 없다]란 세 일어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고 할 정도로 단순한 패턴을 보여준다. 쉽게 말하자면 포르노에서 주인공만 남x남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서는 현실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정말 힘들다. 말 그대로 ‘만화’인 것이다.     우리나라역시 일본의 야오이의 영향을 많이 받아 몇 없는 동성물들의 대부분이 현실은 반영하지 않은 야오이였다. 이 ‘만화’들 속의 주인공들은 여느 이성커플과 마찬가지로 사랑하고 사회 속에서 전혀 거리낌 없이 살아간다. 그들의 사랑에 잘못은 없지만 우리네 사회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에 그렇게 표현됨으로써 동성애는 말 그대로 만화 혹은 fiction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이 점이 많이 아쉬웠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하는 만화를 내놓는 작가들이 많아지면서 (일본 내 동성물이 상업성을 인정받으며 여전히 대부분이 ‘야오이’지만) 예전보다는 나아지고 있다. 라가와 마리모님의 뉴욕뉴욕은 그 점에서 단연 다른 야오이들과의 차이를 보이는데 그 차이는 현실성에 있다. 이 때까지의 현실 밖 상상 속의 이야기만 접하던 독자들이 현실 속으로 들어온 이야기를 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동성물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일전의 야오이를 보고 느꼈던 오락성에서 탈피 그들이 처한 현실을 간접적으로 느끼며 그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뉴욕뉴욕과 마찬가지로 렛다이 역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뉴욕뉴욕보다는 사회에서의 동성애를 많이 다루지 않지만 그 동안의 우리나라 동성애물이 현실성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돌아 볼 때에 분명 이 렛다이는 현실을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높이 평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야오이나 동성물이라는 단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성애를 다룬 만화를 가리켜 이성애물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동성애물도 순정이라는 장르에 들어갔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램이다. 렛다이에서도 느껴지지만 동성간이 되어도 이성간이 되어도 ‘사랑’이 애절하고 아프지만 아름다운 것은 마찬가지인데 어느 한쪽은 다수여서 정상적이란 소리를 듣고 누구에게나 축복받을 수 있으면서, 다른 한쪽은 소수여서 비정상이 되고 숨기는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이 참 잔인하다고 느껴진다.

  렛다이의 두 주인공 다이와 재희가 마지막에 만나는지 만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나는 그들이 만났고, 또 만나서 무척이나 행복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싶다. 또, 우리 시대의 수많은 다이와 재희들도 최대한 상처받지 않고 아름답게 아름답게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사족) ‘오랜만에 제대로 써보자’ 하고 썼더니 무슨 감상문이 아니고 요상하게 되버렸다; 제대로 써진 것도 아니고..; 거기다 정작 렛다이에 대한 이야기는 쪼오끔이고 다 나머지는 ‘이 시대의 야오이’에 대한 잡설들..-ㅗ-; 이런...; 다 쓰고나니까 따로 하나 더 써야할 듯 싶어지는게; 렛다이의 단점을 하나도 말하지 않았다; 무조건 좋다좋다 식이 되어버려서 원.


사족2) 너무 장점만 짚어서 여기에 단점들도 좀 적으려 한다.

우선, 다이가 은형이의 레이프나 자살에 깊은 책임이 있지만 거기에 대한 속죄라던가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또 현실을 반영한 건 좋았지만 좀 더 확실하게 표현해 내진 못했다. 좀 들어가다 말았달까. 물론, 한국의 다른 동성물들(특히 만화)에 비해서는 많이 반영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이런 측면에서는 송채성님의 ‘미스터 레인보우’가 현실적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게 게이의 삶을 그려내서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송채성님이 병으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완결을 내지 못하셨지만. 잡지 연재할 때 간간히 봤었는데 재밌고 좋게 봤던 기억이 있다.(기대되던 작가님이셨는데 돌아가셔서 더 많이 안타까웠다)

   앞으로 한국 만화계 혹은 소설계 혹은 영화계에서도 동성애를 일종의 오락거리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로맨스로 작품으로써 독자들에게 어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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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반지의 제왕: 파시즘에 대한 판타지를 경고하다
반지의 제왕 3부작 트릴로지 일반판 박스세트 (6disc, 디지팩)
피터 잭슨 감독, 엘리아 우드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판타지 문학의 원조. 존 R.R. 톨킨

최근 피터 잭슨 감독 - 이 사람은 <고무인간의 최후>라는 "유명한 and 죽이는" 컬트영화를 제작한 감독이다.-의 영화 <반지의 제왕>을 통해 우리에게 새삼 알려지기 시작한 존 R.R. 톨킨에 대한 열광은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다. 전세계 인터넷이 보급된 나라라면 어디나 이 '톨킨'이라는 작가를 다루고 있는 웹사이트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990년 예문출판사에서 출판된 이래 꾸준히 판매고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창작과 비평사에서 두 권으로 나온 <호비트>도 있다.) 집사람 덕분에 이 두 종을 다 가지고 있는데, 톨킨은 영국 <타임즈>가 선정한20세기 100대 작가 중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189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블룸폰테인에서 출생하여 어렸을 때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한 뒤 1925년부터 1959년까지 자신의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고대 영어와 색슨어를 연구했다. 학생 시절, 자신과 같은 하숙집에 머물던 에디스 브렛과 결혼한 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친한 친구들을 잃는 아픔을 경험하고 종전후 귀국하여 신화와 전설에 관한 책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대학 교수가 된 톨킨은 아내와의 사이에서 네 명의 자녀를 두는데 그는 당시 영국의 문학적 풍토(특히, D.H. 로렌스)를 혐오했으므로 아이들에게 읽어줄 만한 이야기를 직접 쓰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이야기가 바로 <호비트>이다. <호비트>의 대성공에 고무된 그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반지의 제왕>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1954년 처음 작품을 출간한 이래 12년만에 완성시킨다. 그의 작품에서 그 흔한 연애담 한 번 나오지 않는 까닭은 앞서 말한 대로 그가 D.H. 로렌스 같은 이들의 소설을 혐오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영미문학의 탄생시킨 위대한 작품 <반지의 제왕>

존 R.톨킨이 그토록 대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몇 가지 중요한 특징과 장점들 때문이었다. 우선 그는 언어학 및 유럽의 고대 전설과 신화에 뿌리 둔 완전히 새로운 세계, 신화를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국내의 수많은 판타지 문학 애호가들은 정말 애호가가 아닌 이상 그냥 즐기려 하는 축에 드는 이들은 판타지 문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잘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른 아류(?) 작품들과 달리 톨킨의 이 책은 막상 펼쳐서 읽으려면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장장 12년이란 공을 들여 다듬은 작가의 새로운 세계를 아무런 준비운동 없이 달려들어 재미있게 읽으려 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란 생각이다. 그러나 톨킨이 창조한 세계는 그만큼 정밀하고 치밀하다. 그 증거는 현재 생산되고 있는 수많은 판타지 문학들과 롤 플레잉 게임, 기타 여러 게임들이 톨킨이 만들어 낸 가상의 종족들, 마법 등을 고스란히 옮겨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반지의 제왕>에는 무수히 많은 유럽의 전설과 신화가 녹아들어 있다. 지금은 비록 서양이 하나의 기독교 문명권이 되었지만 기독교가 전파되기 이전의 유럽 대륙은 여러 신들과 전설, 신화가 넘쳐나는 곳이었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엘프, 드워프, 오크 등의 종족은 톨킨만의 독자적인 창조물이라기보다는 유럽 특히 게르만족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북구의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종족들이다. 그러나 톨킨은 이들에게 상세한 정보와 역사, 설명을 덧붙임으로써 이들을 현대에 이르러서도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부활시켰다. 또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톨킨은 여러 신화와 전설들을 조합해낸 소설 <반지의 제왕>에 "성배의 전설"을 결부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악이 패배하고 선한 마음이 승리하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반지의 제왕>은 대단히 긴 분량이지만 이를 간단히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호비트족의 빌보 배긴스는 모험 끝에 우연히 반지를 하나 얻게 되고, 이를 자신의 조카인 프로도에게 물려준다. 반지를 물려받은 프로도의 반지를 본 빌보의 친구이자 중간계를 보호하는 마법사 간달프는 그 반지가 '절대반지'임을 알게 된다. 절대반지는 악의 화신인 사우론이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반지로 이 반지는 반지의 소유자를 권력과 악의 화신을 이끌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전쟁에서 패하여 반지를 잠시 잃었던 사우론은 반지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지를 되찾기 위해 암흑의 기사들을 세상에 내보낸다. 한편 오랫동안 사라진 줄 알았던 반지가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은 사우론의 반대 세력들은 오랜 토의 끝에 힘을 한데 모아 '절대반지'를 파괴하기로 한다.

그러나 반지는 손쉽게 파괴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반지는 사우론의 근거지에 있는 모르도르(mordor) 화산의 화염만이 파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지를 무사히 사우론의 근거지까지 옮겨 파괴할 임무를 띤 아홉 명의 용사로 구성된 반지 원정대가 결성되고 이들은 반지의 힘에 흔들린 내부의 분열과 사우론 일파의 공격을 받는 천신만고의 고난을 거친 뒤 '절대반지'를 파괴하는 데 성공한다. 결국 악의 세력인 사우론과 싸우던 연합 세력이 승리하여 멸망했던 옛 왕가의 후예가 왕국을 재건한다."


<반지의 제왕>의 근간에 숨겨진 기독교적 세계관

작가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리고 그런 욕망의 뿔리에 충실한 장르가 바로 환타지 문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양의 용(龍, Dragon)이 결국 도마뱀과 곰과 같은 야수의 조합, 동양의 용이 뱀과 사슴 뿔 등의 조합이듯 인간의 상상력이란 보지 못한 것으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상상이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톨킨 역시 뛰어난 이야기꾼으로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으나 이야기의 많은 부분들은 종래의 이야기들 속에 이미 나온 것이고 그의 작품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은 <시네21>에서 <반지의 제왕>이 아더왕 전설의 '성배를 찾아서'와 흡사하다고 말하고 있는 데 나의 생각엔 그보다는 존 번연(Bunyan, John)의 『천로역정(天路歷程, The Pilgrim's Progress)』과 오히려 더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 베긴스와 그의 동료들이 걸어가는 길이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찬이 걸어가는 길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우칠 수 있다. <천로역정>의 제1부는 주인공 크리스찬이 처자를 버리고 등에 무거운 짐(죄)을 지고, 손에는 한 권의 책(성서)을 들고 고향인 ‘멸망의 도시’를 떠난다. 그는 여행 도중에 여러 인물들을 만나며, ‘낙담의 늪’,‘죽음의 계곡’,‘허영의 거리’를 지나, 천신만고 끝에 ‘하늘의 도시’에 당도한다. 제2부에서는 그의 처자가 그의 뒤를 쫓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여기까지라면 <반지의 제왕>은 그저 그런 <천로역정>의 아류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톨킨은 크리스찬이 들고 가는 한 권의 책(성서)을 빼앗고, 대신 그의 손에 악의 힘, 절대권력을 지닌 악의 '절대반지'를 쥐어 주었다. 반지를 손에 쥐었던 수많은 인간들을 욕망의 화신으로 만들어 파멸시킨 바로 그 반지를 말이다.

<반지의 제왕> - 완전한 허구의 세계에서 탄생한 신화인가?

<반지의 제왕>을 일컬어 혹자는 "마른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 같은 작품이라며 그 놀라운 창조성에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벼락'이란 것이 '공중 전기의 대지 방전 현상' - 구름과 지면 사이의 방전현상 - 이란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구름 한 점 없는 마른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이란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세계의 수많은 J.R.R.톨킨 매니아들이 이미 낱낱이 탐색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톨킨이 창조한 중간계(middle earth)의 생생한 자연 묘사와 다양한 종족의 역사와 특징, 언어 창조에 대해 톨킨의 능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앞서 용(龍)의 예를 들어 설명했듯이 톨킨은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신화와 영국인으로서 경험해 온 자신의 주변 생활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차용했다.

그가 창조한 수많은 세계 역시 그가 경험하고 사유해온 것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반지의 제왕>의 전편이랄 수 있는 <호비트>에서 주인공 빌보 베긴스가 속해있는 종족, 톨킨 자신이 호비트족의 특성을 영국인 농부의 일반적인 품성을 근거로 했다고 말하고 있듯이 호비트의 묘사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키는 1m도 채 안되고 성격은 명랑하고 낙천적이지만 맛있는 음식, 그중에서도 버섯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탐식가로 하루에 여섯끼를 먹고, 발등에는 털이 잔뜩 나 있어 신발을 신지 않고 다니며 소리없이 걸을 수 있다.

<호비트>와 <반지의 제왕> 사이의 시간차와 절대반지의 변화

J.R.R.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읽기 전에 반드시 <호비트>를 읽을 필요는 없지만 <반지의 제왕>을 읽고 나서 <호비트>를 읽는 일은 초콜릿을 다 먹고 나서 커피를 마시는 일만큼 밍숭밍숭한 일이다. 게다가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 베긴스의 양부인지, 친척 아저씨로 나오는(잘 기억이 나지 않으므로, 이해하시길) 빌보 베긴스가 모험을 경험하는 주인공이므로(그런 까닭에 영화<반지의 제왕>에서 빌보 베긴스는 호비트족의 고향 마을인 샤이어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그조차도 절대반지의 힘에 순간적으로 이끌리고 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호비트>의 주인공이었던 빌보가 <반지의 제왕>의 출발점인 '절대반지'를 발견해 돌아오기 때문이다.

<호비트>를 읽으면 <반지의 제왕>에서 펼쳐질 프로도 베긴스의 모험담이 더욱 재미있어진다. 난장이보다 키가 작은 호비트족의 빌보는 마법사인 간달프의 초청으로 13명의 난장이와 함께 황금을 찾아 모험여행을 시작한다. 모험을 좋아하지도 않고 힘도 약한 빌보였지만 무시무시한 모험길에 우연히 얻게된 절대반지의 힘을 얻어 일행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나타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호비트>에서는 '절대반지'가 <반지의 제왕>에서와 같이 그토록 무서운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비트>가 출판된 1937년과 <반지의 제왕>이 출판된 1952년 사이에 J.R.R.톨킨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톨킨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친구들을 잃고 자신은 병에 걸려 목숨을 부지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종전을 맞이한다. 그 자신이 서부 전선의 진창 속에서 벌어진 참호전을 직접 경험했던 참전 군인이었기 때문에 전쟁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경험한 그였다. 그런 톨킨이 <호비트>를 완성하고 다시<반지의 제왕>을 집필하여 발표하던 시기는 유럽에서 파시즘이 팽창하고, 제2차 세계대전의 화마가 전세계를 휩쓸던 시기와 묘하게 겹친다. 그런 까닭에 일부에서는 이 작품을 파시즘에 대항한 연합국의 대립 구도를 알레고리로 다룬 작품이라 생각하고 중간계(middle earth)와 세계지도를 비교하는 작업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판타지 문학 - 현실과 동떨어진 별세계의 이야기에 불과한가?

J.R.R.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근래 유행하고 있는 문화 상품으로의 판타지 작품들과는 문학적 품격에서 그 격을 달리하고 있다. 흔히 판타지 문학은 '현실도피적인 뜬구름잡기'라고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반지의 제왕>은 리얼리티의 세계와 다른 대척점에 서 있는 환상의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우화로서의 기능을 가능케 한다. <반지의 제왕>이 단순히 서사적 판타지 로망에 불과했다면 그토록 오랜 시간을 두고 생명을 지속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예문출판사에서 나온 <반지전쟁>(예문판에서는 '반지전쟁'이란 이름으로 출판되었다.)의 역자후기를 보면 로즈마리 잭슨의 저서 <판타지 : 전복의 문학>을 인용하며 현실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욕망 구조에 도전하고 부정하는 문학으로서 판타지를 설명하고 있다.

대개 현실도피적이라든지 초월적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아온 환타지 문학이 오히려 현실세계와 다른 세계의 절정에 놓임으로써 리얼리티의 내면에 위치한 가치 구조를 전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톨킨의 "반지전쟁"은 서사시적 로만스라고 불릴 수 있는 요소가 많지만 로즈마리 잭슨의 이러한 평가에도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악마 사우론을 통해 제국주의 침략의 주된 동인인 타인과 사물에 대한 지배욕을 형상화하고 인간과 자연의 친밀한 유대를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음에서 그런 평가가 가능해진다. 문학이 기본적으로 독자에겐 감명과 즐거움, 승화된 정신을 제공하는 기능을 가진다면 "반지전쟁"만큼 이 기능에 부합하는 작품도 드물 것이다.


J.R.R.톨킨은 무자비한 파시즘의 시대를 거쳐 다가올 냉전과 폭력의 시대를 예견하고 그에 관한 경고를 절대반지의 힘이라는 상징을 통해 우리들에게 알려오고 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벌레처럼 짓이겨지는 동료들의 헛된 죽음과 제2차 세계대전의 대학살극을 목도하면서 파시즘이란 절대권력은 절대로 승리할 수 없음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프로도 베긴스는 자신만의 힘으로 모르도르의 화산에 절대반지를 떨구고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판타지물들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어느 작품도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능가하지 못한다.(하기사 세계적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을 능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흑인의 랩과 힙합이 그 출생이 반항적이었다는 사실은 잊은 채 국내에서는 아무 의미없는 가사들로 채워지는 것처럼 판타지 역시 시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아야 한다는 경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불완전한 인간의 성장과 연대의식

<반지의 제왕>이 지니고 있는 매력은 크게 신화에 기초한 환상적인 세계의 창조와 프로도 베긴스로 상징되는 한 젊은 청년의 성장기에 있다. 이 소설은 판타지 문학이면서 동시에 성장소설(Bildungsroman)이다. 이 소설을 성장소설로 이해할 때 빌보 배긴스가 프로도에게 넘긴 '절대반지'는 성인례를 치르기 위한 구조적 장치가 된다. 프로도는 절대반지를 통해 단련되고 사회에 대한 책임을 교육받는다. 영화 속에서 마법사 간달프는 부모인 빌보의 곁을 떠난 프로도를 훈육하는 교사의 역할을 맡는다. 프로도는 간달프에게 "반지가 왜 하필 나에게 온 거죠?" 라고 묻는다. 간달프는 "중요한 것은 반지가 나에게 오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할 게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갈 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며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어쨌든 반지는 프로도의 손에 쥐어졌고, 프로도는 함께 떠났던 반지 원정대의 동료들이 반지의 힘에 이끌려 파멸되는 안타까운 광경을 지켜보며 차츰차츰 성장해 간다. 그러나 프로도 역시 모르도르에 도착해 반지를 버리려는 순간 반지의 힘에 굴복당하고 만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프로도는 동료들과의 끈끈한 연대와 우정을 통해 무사히 귀환하게 된다.  

반지의 제왕
지상의 요정들에겐 세 개의 반지
돌집의 난장이왕들에겐 일곱 개의 반지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들에겐 아홉 개의 반지
어둠의 권좌에 앉은 암흑의 군주에겐 절대반지
어둠만 살아 숨쉬는 모르도르에서
모든 반지를 지배하고, 모든 반지를 발견하는 것은 절대반지
모든 반지를 불러모아 암흑 속에 가둬버리는 것은 절대반지
어둠만 살아숨쉬는 모르도르에서

* 오랫동안 톨킨의 이 작품은 영화화 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평가되어 왔다. 책을 읽은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이 작품이 원작의 세세한 재미를 상기시키는데는 실패했다는 평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어차피 문학과 영화는 다른 것이다. 피터 잭슨은 문학적인 재미를 살리기 위해 영화적인 재미를 포기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 작품이 원작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영화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재미를 갖춘 수작이 될 수 있도록 만든 원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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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크로이드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용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간만에 느껴본 짜릿한 반전' 이라고 할까.

 

물론, 슬슬 범인을 밝히 때쯤은 눈치 챘지만

그래도 범인을 밝히는 순간에는 심장이 두근두근 소름이 오돌오돌.

끝내주는 기분이었다!

 

아아, 정말 안타까운게 추리나 반전의 요소가 들어가는 것들은

줄거리를 쓰다보면 네타가 되버리니.

 

그래서 네이버의 힘을 빌어 형식적인 내용을 쓰자면

┎어느 날 마을의 명사()인 애크로이드가 서재에서 칼에 찔려 살해되었는데, 이 사건은 앞서 이 마을에서 일어난 한 부인의 자살과 관계가 있는 듯하였다. 은퇴하여 마침 시체를 발견한 의사 셰퍼드 옆집에 머물던 명탐정 포와로가 수사에 나서면서 사건해결이 시작된다. 사건은 의사 셰퍼드의 수기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런 내용.

 

이제까지 읽었던 크리스티님의 작품 중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다.

정말 읽으면 후회가 없을 듯.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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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클럽 1
매튜 펄 지음, 이미정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단테클럽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가 실존 인물이다.

그러나, 발생하는 사건은 허구이다.

 

주인공이자 실제로 '단테클럽'에서 단테의 신곡을 번역한 이

홈스, 롱펠로, 로웰, 필즈

네 사람들이 책에서 역시 단테의 신곡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을 풀어나간다는 내용이다.

 

 전에 읽었던 4의 규칙보다는 훨씬 나은 소설이었다.

이 소설 역시 시인이나 소설가들에 대한 지식을 약간 요하지만

4의 규칙만큼 넓은 범위는 아니고 문학쪽이 대부분이라

서양 문학을 많이 접한 사람이라면

좀 더 이 책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서 살인사건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의 형벌을 그대로 재연하는 모방범죄인데

그게 꽤나 잔인해서

꽤 상세하게 이미지화시켜서 상상하는 나로서는

나름대로 충격적이었다.

'윽'소리가 나올 정도로.

(내가 겁이 좀 많긴 하지만.)

 

그런 주 사건들의 모습들만 아니라면

무난히 읽히는 책.

 

사실, 이 포스트를 몇 일 전에

몇 줄 써놓고 비공개로 돌려놨는데

막상 지금 생각나서 쓸려고 하니

그다지 쓸 말이 없다.

 

단테의 신곡에 대해 내가 잘 안다거나

미국의 남북전쟁에 대해 잘 안다거나

하다못해 책 속에 나오는 문학가나 벌레들에 대해서라도

안다면 뭔가를 얘기할 텐데.

무지하다는 건 참 슬프다.

 

그래서 그냥 감상도 단순명료.

 


1. 벌레가 나온다 → 징그럽다

2.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 잔인하다

3. 식인파리가 실존한다 → 정말?!!!!! 오, 갓뎀.

 


..단테의 신곡.

이 책 역시 한 번 펼쳐는 봐보고 싶다.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p.s 정말 읽을때는 괜찮게 읽었는데

막상 쓸려니까 머리 속이 백지장이 될까나.

단어도 문장도 제대로 떠오르지 않고.

음. 뭐지;

 

p.p.s 아, 남북전쟁이야기 나올 때는

초등학생시절 읽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생각나더라.

오래 전에 읽어서 잘 생각은 안나지만 언뜻언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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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의 규칙 1
이안 콜드웰.더스틴 토머슨 지음, 정영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4의 규칙 역시 다빈치 코드와 같은 역사추리물의 하나이다.

다빈치 코드를 읽고 또 다른 역사추리물이 읽고 싶어서 집어든 책이었는데

결과는?

'?????'

대략 이런 느낌이랄까.

 

히프네로토마키아라는 서양의 초기 인쇄물을 해독하는 대학생들의 추리물이건만.

도당췌! 추리는 어디에 있소 -┏

이것은 역사추리를 빙자한 네명의 친구들이 우정과 사랑이야기가 아닌가?!

(실제로 작가 둘은 친한 친구이고 친구간의 뭐 어쩌고를 할려고<?

이 책을 썼다고 하던데 그래서 저 주인공들의 우정이 더 강조되지 않았나 싶다.)

 

거기다가 폴의 말투는 너무 여성스럽고.

군데군데 오역이 포진해 있는듯 문장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많고.

 

솔직히 다빈치 코드보다 많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다빈치코드는 신학쪽에 지식이 없어도 읽는데에는 커다란 지장을 주진 않았지만

4의 규칙은 전반적으로 엄청 폭넓은 지식을 요하기에 이해하는데에도

문제가 많이 따랐다. 예를 들어, 건축에 관련된 부분에서 특히 많이 애를 먹었는데

뭔지 정확한 주석도 없고 해서 나중에는 그냥 그러려니 넘기며 봤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히프네로토마키아에 대한 해독부분을 무지한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쉽도록

매끄러운 번역을 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부분이 많이 아쉬웠다.

 

읽은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머릿속에서 '히프네로토마키아'라는

책빼고 주인공들의 이름이라던가 대부분이 희미해진 걸 보면

엄청 재미없게 읽은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책의 내용 중 그나마 건질 만한 부분은

결말이 아닌가 싶다.

여운을 남기는.

개인적으로는 그 뒷이야기를 조금더 써줬으면 하지만

또 4의 규칙처럼 오버된 장르파괴현상이 남무하는 소설이 될까봐

이대로 끝맺음이 더 낫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4의 규칙은 다빈치 코드와 같은 역사추리소설이지만

대중성에서는 다빈치 코드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건축, 문학 등 중세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춘 사람은

4의 규칙에서도 쏠쏠한 재미를 느끼리라 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특히나, 흥미진진한 역사추리물을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4의 규칙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p.s 책내용 중 그나마 뚜렷히 기억에 남는 거라곤

결말뿐이어서 감상이 무척이나 뒤죽박죽이다.

내 감상도 히프네로토마키아를 닮아가는 듯.

 

p.p.s 아,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은

히프네로토마키아를 실제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언젠가는 도전해 보리라.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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