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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세설 상.하 세트 - 전2권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송태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드디어 다 읽었다! 읽는 내내 마치 막장 일일드라마를 보고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뭔 그런 자질구레한 사건사고들이 끊이질 않고 일어나는지. 막장드라마라고 욕을 하면서도 끊지못하고 시작시간 되면 자동적으로 텔레비젼 앞에 앉아서 보고있는 나를 느끼며 자괴감에 빠지곤 하는.
『세설』은 작가 다니자키의 세 번째 부인이자 그가 희구하던 여성인 마쓰코의 자매들을 모델로 한 이야기다. 간사이 문화에 대한 애정이 짙게 배어 있는 가운데 몰락한 오사카 상류 계층(부유한 상인 집안)의 네 자매 쓰루코, 사치코, 유키코, 다에코 이야기, 특히 셋째인 유키코의 혼담을 중심으로 당시의 풍속을 잔잔하게 전하는 풍속 소설이다.
간사이가 정확히 어디를 말하는지 몰랐는데 이참에 일본 지도를 들여다보게 됐다. 오사카, 교토가 있는 지역이 간사이, 그보다 북동쪽 해변 근처에 있는 곳이 도쿄. 간사이가 일본에서는 시골같은 느낌인 모양이다. 사투리를 사용하고, 도쿄 사람들에 대해서는 부러워하면서도 지기 싫어하는 느낌이 있는? 일본에 대해서 잘 몰라서 읽어가면서 이해안되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일본어나 일본문학을 공부하시는 분들에게는 사투리 표현 같이 디테일한 부분들에 재미를 많이 느끼시는 듯 하다.
『세설』은 극적인 사건보다는 '사계의 흐름과 함께 실제 생활처럼 소설 속의 시간도 천천히 지나간다. 봄의 벚꽃 구경, 여름밤의 반딧불이잡이, 가을의 단풍 구경, 후지 산, 가부키, 피아노, 인형, 프랑스어 교습, 무용 교습, 무용 공연, 각기병, 장티푸스, 주사, 약, 만주, 홍수, 기모노, 사진기, 전화, 도쿄 말과 간사이(오사카) 사투리, 미용실, 파마, 호텔, 병원, 학교, 셋집, 독일인, 백계 러시아인, 갖가지 일본 음식들, 피아노, 커피, 제과점, 백화점, 신혼여행, 해수욕, 온천, 기차, 연애, 맞선, 여객선 등이 계절의 변화' 같은 묘사와 설명들이 상당히 자세히 나온다.
중간중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조선인들을 묘사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기분이 좀 묘했다. 평범한 일본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는 당시 조선인들의 삶이라니. 늘 피해자 입장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고난을 기술하는 상황에 있었지 그 반대 입장에서 우리를 보는 느낌이라 어색하기도 했고, 그들의 입장에선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은 '피아'라는 사실에 당혹스러운 느낌도 있었다.
작가 다니자키는 여성에 대한 숭배, 이상성욕, 발에 대한 집착과 같은 평범하지 않은(?)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는데, 작품 뒤에 수록된 역자의 글에서 보면 80평생 초지일관 그런 기조를 유지하며 남다른 삶을 살아온 인물인 듯. 그가 희구하던 여성을 상징했다는 유키코의 면면을 보면, 알듯 모를듯 이해하기 어렵고 신비롭기까지 한 '일본여인'의 야릇한 이미지가 묘하게 겹쳐보이는 듯도 하다.
작품 뒤에 수록된 '다나베 세이코'씨의 유키코에 대한 묘사를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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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작가는 〈유키코〉라는 여성을 간사이 문화, 여성 문화의 상징처럼 생생하게 그렸다. 오사카 여자들 중에는 유키코 유형이 아주 많은데 바로 그것이 오사카 여자의 한 전형이다.
〈부끄러움을 잘 타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는 말도 잘 못 하〉지만 〈겉보기와는 다른 데가 있어서 꼭 참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뭐든지 아무 말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며 〈보기와 다르게 외출을 좋아하〉고 〈내성적인 것 같지만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여자, 그리고 전화를 싫어해서 맞선 상대와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는 주제에 다른 사람의 수고에 미안하다든가 감사하다는 말, 위로의 말도 하지 않는다.
가녀리게 아름다우며 나긋나긋하고, 말수는 적지만 그 자리에서는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야 불평을 털어놓는다. 자존심 강하고 에둘러 말하는 번거로운 발상을 하며 자신의 호기심에 엄격하고 사치를 좋아한다.
유키코는 시간관념이 없고 그녀에게서 간사이 중심주의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이문화권에는 반발하지만(신분 차이 같은 것에는 민감하고 또 도쿄라는 지역을 무시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명석한 판단력이나 비판 정신이 있어서 〈사람은 도쿄 사람이 더 좋다〉는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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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사람들의 삶을 그린 소설들을 읽는 재미와 곤욕스러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의 경상도와 전라도 문화 차이를 어렴풋이 깨달으면서 느낄 법한 신기함과 흥미로움 같은 것과 비슷할까? 새로운 사실을 배울 수 있어서 나름 의미있던 독서였다고 자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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