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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와 비슷한 시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 그러나 파친코가 전세대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미국 주류사회로 파고들기 위해 분투하는 후세대의 이야기에 방점을 두고 진행되는 이야기라면, [작은 땅의 야수들]은 191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를 살아가는 조선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았다.
어렵게 어렵게 생활고에 시달리다 기방에서 춤과 노래를 배우던 여주인공과 그녀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 거기에 당시 있었던 굵직굵직한 역사적인 사건들이 오버랩 되면서 이야기가 굴러간다.
그야말로 한일합방시대에 힘들게 살았던 조선인들의 이야기, 그 전형적인 스토리 그대로다. 여주를 사랑하는 가난한 인력거꾼, 주먹 잘쓰고 정의로운 불량배는 여주를 사랑하지만 고백하지 못하고 늘 여주 곁에서 도움을 주기만 하고. 잘 나가는 배우가 된 여주를 노리는 돈많은 일본인, 여주의 절친인 또 다른 배우는 돈많은 사업가의 사탕발림에 첩이 되었다 버림받아 폐인이 되고—
한국에서 자라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전형적인 한국 신파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인지. 이것은 한국 신파의 감춰진 문학성 때문인건가 아니면 그녀의 감성코드가 뼈 속 까지 한국인이기 때문인건가.
사실, 이런 스토리가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니, 좀 놀랍다. 한편으로는 와국인들에게 한국의 역사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그들에게는 과연 우리의 역사적 불행이 어떤 식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한국인의 영적인 힘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한국사람의 입장에선 이젠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어 별 감흥 없을 수 있지만, 이 사실을 처음 듣는 외국인들에게는 특별하고 새롭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의 외할아버지는 김구 선생의 비서로서 독립운동에 일조하신 분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작가는 그 분을 통해서 당시의 일들을 전해듣고 감화받아 이야기를 구상했고, 이 책은 꽤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만들어 낸 첫 번 째 작품이다. 이 사실 역시 외국독자들에게는 작품 이면에 숨겨진 특별한 스토리텔링이 됐을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하면 이 책이 외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는게 납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한국어판은 과연? 한국에서도 그만큼 성공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영어로 써진 작품이었어도 한국어에 익숙한 작가여서 그랬는지 번역이 아주 매끄럽고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번역가도 공을 많이 들였겠지만 이 부분은 절대적으로 작가의 역량이 크게 영향을 준 것 같다.
이민진 작가는 전투적으로 그녀의 작품 [파친코]를 세계인들에게 들고나가 강연 등을 통해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며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곤 했는데, 앞으로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가지고 작품을 쓰게 될 사람들은 과연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위해서 글을 쓰게 될 것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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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그 어떤 것에 대한 소망도 동경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마침내 바다와 하나였다.
작은 땅의 야수들 | 김주혜, 박소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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