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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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자인 앤 패디먼은 저널리스트이다. <아메리칸 스칼러>의 편집자라고 한다. 그리고 이 책에 씌어진 글들은 '평범한 독자'라는 이름으로 의회도서관의 잡지에 연재되었던 글이다.

저자는 기획자로부터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 대해, 평범한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써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글들은 책이 가지고 있는 담론적 측면보다는 생활로서의 책읽기에 더 무게가 기울어져 있다.

책 읽기에 얽힌 저자의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가벼운 위트와 함께 풀어져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책에 대한 뭔가 철학적인 담론을 기대했다면 (나와 마찬가지로) 책을 펼쳐 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실망하게 될 게 틀림없다. 내 경우 이 책 전체를 3시간 만에 읽어버렸는데, ('읽어버리다'란 표현이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이런 경우는 나로서는 흔치 않은 경우인데, 저널리스트다운 저자의 날렵하고 깔끔한 글솜씨와 옮긴이의 매끄러운 번역에 힘입은 바 크다고 생각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가볍다는 것. 가벼운 것 가체가 흠이 될 수는 없겠지만, 책과 지식을 다루고 생각하는 저자의 자세 역시 가볍다는 것. 좀 심하게 말하면 제국주의적이랄까. 저자의 독서목록에 큰 줄을 차지하는 것은 주로 영미문학이나 유럽과 미국의 저작에 한정되어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의 책들은 거의 읽지 않는데, 유일하게 중국의 문화에 대해 자신의 어머니가 공저자로 쓴 책이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책의 내용보다는 서문을 쓴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한 번 밖에 언급하지 않았다는 얘기, 그래서 항의하고 사과받았다는 얘기가 전부이다.

저자는 자연, 역사, 심리, 문학 등 다방면에 관심이 있지만, 특히 탐험과 관련된 책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남극, 북극이나 오지 탐험이 제국주의 팽창 시기의 산물이었다는 생각이 다시 드는 것은 내 첫인상과 기대감을 충족해 주지 못한 배신감에 괜히 꼬여 있는 내 심사에서 오는 것일까.

그래도 이 책은 책을 무작정 좋아하는 애서가들에게는 무릎을 칠 정도의 동질감을 줄 만한 재미있는 꽁트들이 팝콘 튀듯 튀어오르고 있어, 유쾌하게 읽어볼 만 하다. 그리고 말미에 붙어 있는 '책에 대한 책' 서지들도 (책에 관심이 있는 장서가들이라면)본문 이상으로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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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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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은 고독하다 그들은 아무래도 세상살이에 서툴고 남들이 고민하지 않는 것을 고민하기 때문에 고통스럽고 그래서 외롭고 그래서 세상 살이가 더 고통스럽다 이 책은 이러한 절망과 고통으로 점철된 고흐의 일기 묶음이다

미술품 감상에 막 취미를 가지기 시작했을 때 만나게 된 이 책은 첫 페이지를 들추는 순간부터 마치 오래 간직해 둔 보석함을 열듯이 나를 들뜨게 했다 삶에 대한 고흐의 질긴 열정과 고뇌들이 조금의 가식도 없이 풀어져 있다 나는 하루에 아주 조금씩만 그것들을 열어보고, 그리고 조심스럽게 고흐의 삶과 죽음의 길을 따라가 보았다

경제적 궁핍과 가족 문제, 대인 관계, 사회적 부적응의 문제들이 진솔하게 펼쳐져 있다. 그러나 편지글인 관계로 고흐의 그림에 대한 전문적인 비평이나 창작과정이 그리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지는 않다. 물론 그런 내용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감자 먹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할 때면 황금빛의 벽에 걸어야한다는 말을 강조한다든지, 색채에 대한 집착들.. 그러나 이 책의 편집의도는 그런 데 있는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한 인간으로서의 삶, 그리고 한 인간의 영혼의 방황과 고뇌를 그림이라는 예술적 매개를 통해서 얼마나 진솔하게 보여주느냐에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편지글의 내용, 그러니까 고흐의 고민과 예술적 열정의 흐름에 따라 잘 정리된 화보들, 깔끔한 편집으로 그리 부담스럽지 않게 고흐의 삶을 따라갈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우리가 고흐를 떠올릴 때, 우리는 그의 뜨거운 정열과 광기를 생각한다. 그래서 범인이 범접할 수 없는 어떤 거리감이 생성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선입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냉철히 사고하고 있었다. 또 항상 반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면적인 수련(독서를 통한)을 언제나 게을리하지 않았고,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발자크, 도스토에프스키와 종교학이나 심리학에 대한 책들.. 자신의 병에 대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냉철한 판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동생 테오에게 한 말..'차라리 환자가 들판에서 일을 하는 병원으로 가고 싶다.'그는 정신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병원의 억압구조에 대해 누구도다 냉철히 사고하고 있었다.

고흐는, 무엇보다 스스로의 삶에 대한 진지하고 치열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고 놓지 않으려 노력한 한 인간이다. 그는 광인이 아니었으며 다만 불행한 환자였을 뿐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 치열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진실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치있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런 것들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첫장을 여는 순간 끝까지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고흐에 관심 있는 사람이나 인상파 미술에 얽힌 이야기들을 처음 접하려는 독자들에게는 참 유용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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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
도로시 버틀러 지음, 김중철 옮김 / 보림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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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는 선천적 장애아인 쿠슐라의 삶과 독서, 그리고 부모와 친지들의 헌신적인 교육에 관한 이야기이다. 쿠슐라의 부모들은 철저히 쿠슐라의 입장에서 책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과정을 관찰하고 쿠슐라의 발달과정을 체크한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내 딸에게 책을 읽어줄 때 가졌던 의문점들(딸-만 3년 8개월-은 어른이 보기에는 스토리도 단순하고 그림도 매력있어 보이지 않는 책들을 반복해서 읽어주길 바란다)이 명쾌하게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 미덕 외에 이 책이 안고 있는 (내 나름으로는 심각하달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짚어 보겠다.

쿠슐라의 태어날 때부터의 신체적 장애는 본인이나 부모들에게 더할 수 없는 고통과 노력을 요구했다. 이 책은 부모들이 전문가의 충고나 지시를 때로 거부하고 쿠슐라를 위한 스스로의 발달을 유도하는 방법을 시도하는 예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이 '저자의 연구 목적과 방법론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저자는 이 책이 자신의 학위논문을 보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분석, 통계적 방법과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이론적 토대의 가치관이 때로 부적절하게 드러나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책이 학위논문이라면 이런 말은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 때에도 방법론상의 문제에 대한 교육학적 관점의 논쟁은 존재할 수 있겠지만.

계량적, 합리적 분석 방법은 모든 과학적 연구의 근간을 이루는 유효한 방법론임에는 틀림 없다. 그러나 분석 단위와 분석, 절단과 그 계량화에 대한 맹신은 연구 대상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상식 수준에서 견지되어 오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러한 근대적 과학적 연구방법 자체가 순수자연과학이 아니라 인문과학의 영역에서 일으키게 되는 것은 보다 근원적인 이념적 문제이다.

이 책의 연구 대상은 인간이다. 단순한 물리적 실체도 아니고 논리적 구조를 가진 추상적 존재도 아니다. 현대 정신의학이 비판받았던 지점 역시 인간을 개체화하고 계량적 분석의 대상으로 적용시킴으로써 경험적, 실존적인 부분을 망각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 책의 논리의 줄기가 되고 있는 통계적 발달 수준의 강조는 도가 지나치다. 판단을 위한 보조 기구로써가 아니라 그것이 바로 아이의 발달과 아이의 존재를 규정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은 연구자(과학자)의 시각이지 부모의 시각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점의 차이, 그리고 부모의 시각과 경험들이 저자에 의해서 왜곡될 수 있는 가능성인 것 같다.

한 예를 들어 보자. 쿠슐라의 부모는 때로 전문가의 충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방법을 사용했다고 했다. 그 과정은 사실관계를 서술하는 식으로 담담히 기술되었으나, 부모는 미셀 푸코가 지적했던 것 같은 근대적 의학권력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일 수 있다. 물론 이 책에서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사회과학적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정확히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나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부모가 의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신하고 의사의 지시에 거스를 때까지의 실존적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인문과학에서의 과학적 분석단위들의 사용은 판단과 종합을 위한 최소한의 층위에 한정되어야 한다. 물론 이 경우에도 분석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의 논쟁 가능성은 배제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이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다. 나는 분석적 연구방법 자체를 전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의 경우, 균형을 전혀 잡지 못했고, 근대적 사유의 가장 전형적인 오류 가능성, 그리고 비인간화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이것은 이 책 전체와 쿠슐라의 이야기에 대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저자의 시각과 연구 방법, 기술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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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관, 혹은 너는 누구냐
한형조 지음 / 여시아문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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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시작은 어디일까. 동아시아적 사유와 탈근대적 담론체계의 교직이 유행처럼 번져가던 잡다하고 지리멸렬한 담론의 홍수를 지나쳐갈 무렵, 우연히 마주치게 된 이 책은 내게 질척하고도 두터운 물음의 기둥 두어 채를 선사하고 있었다.

無門, 문이 없다. 드나드는 문이 없으니 벽도 있을 수 없다. 문은 체계와 구성이요 구조이며 로고스다. 그러나 끝내 문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문도 없다.

이 책이 줄기차게 던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농담과 같은 것, 그러나 장 대 끝에서 한 발 내딛으면 천길 낭떠러지이다. 진리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일에 속한다. '허허 그녀석 참..' '싱겁긴..'이 말만큼 위태로운 것은 없다. 우리는 위태로움을 즐기는 도중에 그 위태로움을 내 뼈 속에 심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위태로울 리 없고 위태롭지 않을 리 없다.

이것은 저것이 아니고 저것은 그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이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무문선사는 '단지 그것은 헛소리'라고 말할 뿐이다. 나역시 지금 헛소리를 하고 있지만 그 헛소리가 헛소리인지 헛소리 아닌지는 우물가에 물뜨러 나온 자가 건드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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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 - 근대, 이성, 주체를 중심으로 살펴본 현대 한국 철학사
강영안 지음 / 궁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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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근대, 이성, 주체를 중심으로 살펴본 현대 한국 철학사'이다. 저자는 서양철학 수용의 초창기에 '한국인 서양철학 전공자'들의 작업과 고민을 현장감 있게 소개하고 있다. 학문적 성실함과 탄탄함이 문맥 곳곳에 배어 있다. 그간 저자가 보여 주었던 담론적 성과와 신뢰감을 저버리지 않을 만큼 내용면에서 좋은 저작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일독한 후 다시 제목을 돌아 보니,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 이다. 그 물음은 부제인 '근대, 이성, 주체를 중심으로 살펴본 현대 한국철학사'로 이어진다.

저자에게 좀 가혹한 평일지도 모르겠으나, 이 책 전체의 서술 내용은 이 제목이 가지고 있는 담론적 무게를 전혀 지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일독한 후의 생각이다. 먼저,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 라는 문제는 차치하고,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이었나 하는 점이라도 면밀하게 밝혀지지 않은 감이 있다. 저자는 나름대로 평가를 내리고는 있지만(현실지향적...1장 참조) 논의 과정이 저자의 유추(물론 그 논리적 근거는 충분하지만)에 기대고 있는 만큼 좀더 현장성 있는 논거가 필요한 것 같다.

또한 근대, 이성, 주체라는 단어들이 철학적 논의의 과정에서 단지 기표의 측면에 한정됨으로써 이 어마어마한 개념들이 허공에서 표류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저자의 논의를 따라 가다 책을 덮을 즈음, 또 드는 생각은 '한국철학'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 조선성리학, 실학, 도교와 불교(불학)과 같은 고유사상, 혹은 전통사상의 위치는 어디쯤 설정되어 있는 것일까. 이 책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저자는 이것들을 '철학'의 범주에 두지 않거나, '철학'과 '사상'의 범주를 구별하고 있는 것일까. 부제를 '...현대 한국철학사'가 아닌 '...현대서양철학 수용사'라고 했으면 아마 이런 의문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지나가는 말이지만, 책 전체를 통틀어 필자는 한 올의 오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필자에게는 드문 일이며 저자의 학적 성실함, 혹은 출판주체의 성의와 노력을 방증하는 작은 사례라 할 것이다. 철학과 철학함에 대한 저자의 경의로운 열정과 업적에 항상 큰 배움을 얻어가는 30대 국문학연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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