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이야기 - 조광제의 철학 유혹
조광제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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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구입하게 만든 문구는 이것이다.'최초의 철학자 탈레스부터 이 시대 최고의 철학자 들뢰즈까지 멀게만 느껴지던 철학자의 이야기를 통해 존재의 실체에 다가선다'존재론은 어쩌면 분과학문으로서의 철학이라는 개념으로 담아내기 힘든 사유의 영역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식론과 함께 철학의 양대분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존재론의 다른 이름은 형이상학이다. 형이상학은 철학적 사유를 포괄하여 인간과 삶의 비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라는 점에서 존재론-형이상학이 단지 철학적 사유 속에 갇히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서두에 밝인 이 책에 대한 몇 자의 정보로 이 책에서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현대 프랑스철학에 이르기까지 존재론의 역사에 대한 파노라마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 틀림없다. 특히 나는 다음과 같은, 이 책 서문의 첫줄을 읽고서 나의성급한 충동구매(!)를 질책하기까지 했다.'이 책은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곰곰히 생각했다. 나는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아닌가. 처음 접하는 사람인가. 그리고 천천히 저자의 목소리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저자는 존재, 즉 '있음'의 의미와 무게(진짜 있음에 대한 물음)에 대한 고대 철학자들의 물음을 하나 하나 정말 친절하게 되짚어나간다. 우리 일상의 사물과 현상들을 예로 들어가며 전혀 사변적이지 않은 목소리로 말이다. 그리고 대중들이 쉽게 가닿을 수 없다고 느꼈을법한 거창한 담론들이 알고보면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존재 물음에서 비롯된 것이고 다시 바로 그것으로 귀결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지면상의 한계, 혹은 집필목적의 제한과 같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인용되는 철학자들의 논의들이 그리 친절하게 소개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자의 소개처럼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철학적 사유에 대해 가까이 갈 수 있는 무엇보다 친절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혹은 서양철학사를 가볍게 일별해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아깝지 않은 경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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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과 싸우다 - 1994년 제4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142
송재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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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재우며 흐린 베란다의 불빛에 기대 이 시집을 읽었다. 흐리고 검은 빛과 희고 깊은 활자들이 몸을 바꾸어 천천히 책과 내 몸 사이의 공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송재학의 시를 처음 접할 때, 나는 그의 언어들의 현란한 침묵과 육중한 비약들에 마음을 앗겼다. 그리고는 그 격렬한 은유의 차가움에 놀라고 있었다. 그의 모든 시는 풍경을 읽으려 하고 그 풍경들은 그의 내면을 흐르는 액체들과 같이 섞이며 파동하려 한다.무거운 침묵과 강렬한 비약, 그리고 그 차가운 은유들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그리고 그 언어들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

그는 모든 소리를 공간으로 번역하려 한다. 철아쟁과 피리와 가얏고와 해금과 할머니의 노랫소리들은 모두 시간 바깥에 있다. 그것은 균질적인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려 한다.그런 착란의 순간들을 시로 표현해 보려는 난삽한 시도가 요즘 어렵지 않게 보이고 있지 만, 송재학의 경우는 그런 존재론적 균열에 대한 자각과 현상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흔적들을 공간 속에 재배열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는 소리를 육체로 받아들인다. 그에게 소리는 청각이 아니라 촉각이다. 그리고 소리와 육체의 파동 속에 마음의 파동을 다시 시의 언어로 번역하고 있다.

삶과 죽음, 있음과 없음, 이음과 매듭...그는 이 난폭한 이원론을 섬세함이라는 무모하고 강렬한 언어로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의 다음 시집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가 지금 내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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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원리 - 조지훈 전집 2 나남신서 445
조지훈 지음 / 나남출판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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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간행되었던 <시의 원리>와 몇몇 시론들, 그리고 미완성된 <한국현대시문학사>를 함께 묶었다.

이 책 한 권으로 조지훈의 문학 전반을 세세하게 파악하기에는 부족하달지라도, 전반적인 문학관을 조망할 수 있게 한다. <시의 원리>는 1953년이라는 우리 현대문학사의 형성기 혹은 과도기라는 시대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전통적 문예의식과 근대 이후의 문학관의 변천사를 가늠할 수 있는 훌륭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조지훈의 문학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는 줄로 알지만, <시의 원리>에 나타난 서술에 비추어 본다면 문학유기론과 동양적 선의 인식론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이 때의 문학유기론은 주로 서구 낭만주의 이론사의 맥락에 닿아 있고 시창작과 인식론의 기저를 이루는 정서와 감정과 같은 문제들은 칸트의 목소리를 빌리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드러난 계보들이 경직되지 않는 것은, 지훈의 전통 한학에 대한 철저한 소양이 자신의 이론에 깊은 뿌리가 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서구 이론을 적극적으로 체화하고 있는 데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어학과 역사학, 민속학 등 한국학 전반에 대한 깊은 관심과 탐구들이 스스로의 창작론이나 문학론과 연관을 맺고 있다.

다만, 이 저술만으로 볼 때는 몇 가지 지점에서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인식론적 일면들이 쉽게 발견되기는 한다. 이를테면 시적 창작론과 인식론에 있어서의 禪적 방법론과 낭만주의가 다소 피상적 수준에서 연결되고 있다는 것, 혹은 자신의 문학가치론이 자신의 문학사 서술과 다소 생경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들을 들 수 있겠다.

이러한 점들은 조지훈의 저술 전체를 통괄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다소 성급한 지적일 수도 있겠다. 단지 이 책만으로는 이러한 의문들이 제대로 해소될 수 없겠다는 것. 내 경우 <시의 원리>보다 뒷부분의 <한국현대시문학사>를 주의깊게 보게 되었는데, 국어학과 사회사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문학사 서술의 깊이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문학의 근대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저술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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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32호 - 2002.가을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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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유종호의 <다시 읽는 한국시인> 발간과 관련한 김사인과의 대담이 첫머리에 실려 있다. 아주 진솔하고 평이한 대화가 실려 있다. 그러나 새 저서의 뒤를 받치거나 비춰줄 만한 깊이 있는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소설 란에서는 성석제의 <저녁의 눈이신>을 포함해 4편이 실렸다. 성석제는 예의 그 날렵하고 위트 넘치는 문체로 시골 초등학교 축구부 근방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어떤 글에서, 시골 초등학교 축구부와 도대표 선발대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평가를 본 적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나, 지금가지 성석제가 보여 주었던 세계에서 더 나아가지도, 또 그다지 색다르지도 않은 세계이다.

기획특집 코너에서, 김화영은 텔레비젼 독서프로그램의 현실에 대해 깊은 성찰을 제공하고 있고, 황호덕이란 젊은 평론가는 최원식의 회통론을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들며 치열하게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논의의 정교함이나 깊이에는 의심가기 충분하지만, 그 열정과 치열성이 자못 감탄스럽다. 진은영은 들뢰즈의 카프카론을 가볍게, 그러나 진지하게 다루고 있어 읽을 만 하다. 이 코너가 이번 호의 가장 읽을 거리라 생각하는데, 세 글이 어떤 유기성이나 연관 없이 그대로 묶여 있다. 편집자 서문에도 그에 대해 별반 언급이 없다. 알아서 연결시키란 얘기는 조잡한 편집의도를 드러내는 것 밖에 되지 않을 터. 옥의 티다.

현란하게 돌출하는 색색의 언어의 옷을 입은 사유들이 횡행하는 시단에서, 작은 눈으로 보이는 조그만 사물들을 크고 넓고 깊은 깨달음으로 심어 두는 유안진의 근작시를 다시 만난 것도 기쁨이다. 그의 시는 시를 쓴다는 것, 그리고 시를 읽는 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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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밭 창비시선 210
최정례 지음 / 창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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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이남호는, '최정례시인은 최근 가장 밀도 높은 언어를 구사'하고 있으며, '일상의 균열을 너무 정직하게 투시하'기 때문에 '수은처럼 위험하다'고 말한다. '아픈 기억들과 외면당한 욕망들이...복개천처럼 흐르는' 우리들의 삶을 냉정하게 증언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을 한번에 꿰뚫을 수 있는 적확한 독법이다. (이 시집에 실린) 최정례 시는 적어도 두 갈래의 발성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삶이라는 것 자체의 모순과 슬픔과 소외를 숨김없이 남김없이 드러내어 주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시간에 관한 것인데, 어제(과거)의 시간을 오늘(현재)의 순간에 섞어보는 것, 혹은 오늘의 순간을 어제에 심어두고 그 어제를 오늘 다시 꺼내 말리는 것이다. 이 두가지의 발성법은 몇 몇 뛰어난 절편들에서는 훌륭하게 결합되기도 한다. <늙은 여자>, <붉은 밭>, <빨간 다라이> 들이 그것이다.

삶에 대한 도저한 비극적 인식, 그리고 냉소, 어쨋든 살아야 한다(할 것이다)라는 체념과 그 체념을 버팅기는 뻔뻔스러운 상상력들, 그 슬픔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 축축한 응시들이 이루는 이 시편들의 언어는 쉽게 접근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이러한 밀도 높은 언어들이 이남호의 말처럼 '우리들의 삶'이라는 영역으로 확장되지는 않는다. 개인적 불행과 외면당한 욕망들의 기억이 시인의 시간에 대한 현학적 관심과 어색하게 팔짱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비극성에 대한 고집이 일상에 대한 응시 보다는 좌절과 체념, 그리고 기억과 착란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녀의 시선이 무게를 가지는 것은 기억과 착란을 조직(구성이 아닌)하고 이끌어가는 편집증적 상상력 덕분이다.

우리는 그녀의 슬프고 뻔뻔스러운 이미지들에 한걸음씩 다가가서 그것들을 음미할 뿐인데, 시인은 그러한 우리들을 다시 뻔뻔스럽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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