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근대문학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1
가라타니 고진 지음, 박유하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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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 근대문학의 심층과 표층을 구성하는 풍경, 내면, 깊이, 아동 등의 개념들의 출생기를 고고학,계보학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담론 비판의 형식으로, 무덤덤한 문체로 펼쳐지는 그의 작업은 바로 <근대>의 형성, 그리고 내셔널리즘(국가주의)이 제국주의 팽창과 불가결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통찰에서 비롯된다.

가라타니 고진은, 깊이의 왜곡이 낳은 아름다운 문체를 버렸다지만, 그의 무미건조한 문체는 나에겐 매혹적이었다. 은유를 버린 은유들이 짓는 메마르고 냉정한 문장들이 담론의 기원을 향해 묵묵히 들어가고 있다. 영어판 서문을 쓴 프레드릭 제임슨의 장황한 문장과는 적대적이다.

그가 비판하고 있는 일본 근대에 형성된 담론들인 내면, 깊이(구성력), 풍경, 아동, 병 중에 나는 특히 내면과 풍경, 그리고 깊이의 전도들을 눈여겨 보았다. 그것은 어쩌면 100년도 안되는 시차를 두고 고전적 전통과 급격히 단절된 우리 인문적 풍토에 대한 자성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의 방법론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푸코의 고고학에 깊이 닿아 있다. 다만 푸코가 병(광기), 혹은 성, 그리고 지식 등 서구 근대사회 주변의 거대담론에 천착했다면,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국가의 성립,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근대의 형성에 가장 가까이 있는 문학담론의 형성으로써 일본 근대의 기원을 파헤치고자 한다. 근대 내셔널리즘의 기저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언문일치의 권력을 꿰뚫어 본 그의 시각은 놀라운 것이다. 한자문화권이라는 공감 역시 우리에게 쉽게 읽히는 연유가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외국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저술했다는 그의 언급과 같이, 일본 문학에 무지한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다소 껄끄러울 수도 있는 고유명사들과 그들의 문학사가 생경하지만, 그것은 서구 문화 전반에 대한 지식이 없이 읽어내려 갔던 푸코 저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면의 내용이 아니라 내면의 얼굴인 것이다.

서문들이 뒤에 붙어 있다. 드문 일이나, 서문들을 먼저 보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편집 순서대로 보았던 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각 장의 뒤에 저자가 새로 덧붙인 글들이 간결하게 첨부되어 있다. 본문을 다 읽고 다시 깔끔하게 정리된 서문들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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