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 궁리필로소피 10
로저 스크러튼 지음, 조현진 옮김 / 궁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스피노자는 데카르트 이후의 대륙합리론의 맥을 잇고 있는 합리론의 철학자이다. 니체의 형이상학 비판의 도마 위에서 혹독한 처분을 받은 바 있지만, 니체와 스피노자를 함께 아우르고 비판적으로 흡수한 들뢰즈 철학이 대두되면서 다시 스피노자 철학의 원류가 주목받는 듯 하다.

조그만 문고판에 100페이지 남짓하다. 그 안에서 에티카의 저술 순서를 다라가면서 스피노자의 사유를 서술하고 있다. 워낙 난해하고 깊이 있는 사유를 요구하지만, 문체는 간결하고 진지하다.

모든 철학자에 대한 저술이 몇 마디의 투박한 언설로 감금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지만, 그래도 몇 마디로 욕심을 부린다면, <신에 대한 지적 사랑>amor intellectualis Dei 이란 말로 아우를 수 있겠다. 신=자연=세계=우주에 대한 지적 탐구와 그로 인한 자유와 진리의 의미를 찾는데 스피노자의 생애와 사상은 점철되어 있다.

역자는, 이 책이 지나치게 '세계를 영원의 관점에서 보는 철학'으로 저술되었다는 점을 신중하고 적절한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지만, 스피노자 철학에 무지한 나로서는 오히려 읽어가는 데 부담이 없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런 이해가 '오해'가 아니어야 하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그런 측면에서 '영원성'에 대한 스피노자의 견해는 깊은 울림을 남겼다. 한스마이어호프는 영원성을 '시간 밖에 있는 경험의 한 성질'로 보았다(문학과 시간현상학). 그것이 스피노자에게서 '시간과 변화 바깥에 있는 논리적 관계'(저자의 말, 93쪽)라는 말로 확인된다. 그들에게 영원성은 '영원한 시간이 아님, 영원히 지속되는 시간이 아님',혹은 '무시간성을 뜻하는 것도 아님'이란 말들로 함께 소통된다.

이 짧고 작은 책을 통해 스피노자 사상의 정수를 맛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간명하고 진지한 어조로 쓰여진 문장들은 스피노자 사상의 입구를 알려주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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