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그라드의 성모마리아
데브라 딘 지음, 송정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가슴 절이며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 애절함에 대해서 알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그 애절함이 닳아 사라지면 마음도 마냥 갈피를 못 잡고 흩어져 버린다. 책을 덮으며 기억에 대한 생각을 했다. 영화 ‘내 곁에 있어줘’의 그 긴 여운처럼...


이 책을 읽기 전에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먼저 읽었다. 서경식 선생이 프리모 레비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유태인 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치에 감금된 후 생존하였으며, 그의 삶을 보며 우리 민족의 아픔을 함께 빗대어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였을까. 마리나의 전쟁 외상의 경험이 온전히 다가왔으니.


전쟁이란, 인간을 더 이상 인간답게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악의 설정이다. 이 설정을 데브라 딘은 ‘알츠하이머 병’에 빗대어 이야기를 풀어갔다.


p.156 단어를 잊어버리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시간이 갑자기 단축되고 부서지면서 그녀를 생각지도 못한 곳에 떨어뜨려 놓는 것이었다.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마리나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는 더 이상 그녀에게 의미가 없다. 그녀와 함께 한 드미트리도 그녀에게는 안중에도 없다. 마리나는 과거 속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자신이 화해해야 할 과거를 들추고 있는 중이다. 그 화해란 자신보다 먼저 죽어간 많은 넋들이며,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자신, 그리고 미술관의 명화들이다.


작품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빈 액자 속 명화를 기억해 내려 애쓰는 마리나와 더 이상 기억해내고 싶지 않은 전쟁에 대한 아픔이 교차하며 가슴을 울렸다. 마리나의 기억을 좇다보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그것은 내가 전쟁세대가 아니기 때문이며, 마리나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에서 오는 것일 것이다. 마리나의 딸 헬렌처럼 이해하고 싶으나 다가갈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빈 액자 속 명화를 설명하는 마리나의 홍조 띤 얼굴을 상상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긴 호흡으로 표지의 그림을 보았다. 기억의 궁전 속을 헤매던 마리나는 자신의 궁전을 완성해 냈을까. 몇 그램의 초콜릿 무게처럼 가볍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무게의 것들과 화해했을까.


p.209 아냐는 사라진 그림들을 아직도 미술관에 남아 있는 그림들처럼 쉽게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사라져버린 작품을 포함한 모든 작품에 대한 대략적인 지식을 갖고서 마리나의 기억의 궁전으로 찾아왔다. 마리나가 그 작품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은 또한 아냐가 집착하는 대상이 되어 있었다

“만약 그 그림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면......”

아냐는 처음으로 별난 생각에 빠졌다.

“그러면 이 세상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돼버릴 거야.”


전쟁에 대한 소설도 많고 영화도 많다. 곧 개봉 될 클린틴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버지의 깃발’이 전쟁영화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공언하고들 있지만, 전쟁이 끊이지 않는 한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P.245 여자의 얼굴은 낯이 익었지만, 마리나는 누구인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곳에는 기억해야 할 얼굴들이 너무나 많았다. 어떨때는 눈앞에 텅 빈 벽만 보일 때도 있었다. 무서웠다. 이렇게 잊어버린다는 것, 삶을 이루는 자은 조각들이 하나 둘 사라져간다는 것. 만약 모든 그림들을 사라지게 그냥 놔둔다면, 마리나도 그 그림들과 함께 사라져버릴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인간을 추락시키는 전쟁은 발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나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발발하고,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 남의 일로 치부하지 말고 공동체 의식을 발동해야 한다는 것. 우리 모두 잘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

 

작품을 제대로 알릴 멋진 리뷰를 쓰고 싶었지만, 부족한 감상평을 쓰고 말았다. 부족한 리뷰를 끝까지 읽어주신 분께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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