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건 책이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요즘 뭐 읽어?' 라고 물었더니 바빠서 거의 책을 못 읽는다는 대답과 함께 '최근엔 빅픽처를 봤는데, 재밌었어.' 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러고보니 서점에 갈 때마다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있었고, 곧 같은 디자인의 같은 작가 작품들이 같이 진열되었다. 그런데 어째 한 번도 책을 집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고 딱히 내용이 궁금하지도 않아서 무심히 지나쳐버리기를 한참.

책이 처음으로 내 장바구니에 들어온 건 올 여름. 멀리 이집트까지 배달할 책을 고르다가 문득 '재밌었다'던 평이 생각나기도 했고, 게다가 반값 세일 중이라서, 가져가면서 후딱 읽고 거기 두고 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차저차해서 이 아이는 수화물로 부쳐지게 되었고, 막상 가서는 더위를 식혀줄 '스노우맨'과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등을 읽느라 손도 안대고 그냥 두고 왔다. 뭐 그렇다고 딱히 아쉬운 마음은 없었으니 그냥 인연이  아닌가보다 하고 말았지.

그리고 다시 한 번, 책이 장바구니에 담겼다. 사실 이번에는 어쩌다가 담긴 건지 잘 기억이 안난다. 이사를 하고, 이래저래 못사고 미뤄두었던 책들을 우르르 주문하면서 같이 왔으니까. 적립금 받으려고 오만원을 맞추느라 넣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늘 눈길을 주면서도 어떤 내용인지 읽어보지도 않는 내가 괘씸해서 책이 직접 들어온 건지도. 아무튼, 그렇게 책이 책장에 꽂혔다.


금요일 저녁에 평소보다 일을 좀 일찍 마치고 이 아이를 집어들고 소파에 누웠다. 읽을 책들이 쌓여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이 아이가 궁금해져서 뒷 표지의 줄거리 소개를 읽었더니 '응? 이런 이야기였어?'란 생각과 함께 호기심이 동했다. 믿고 사는 몇몇 작가의 책이 아니면 책을 사기 전에 줄거리 파악은 반드시 하는 편인데, 그러고보니 어째서 아직까지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잠깐. 그리고 새벽까지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결혼생활을 한다는 것,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산다는 것,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다는 것.


벤의 이야기가 좀 더 깊이 와닿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이 책을 만난 것이 '지금'이기 때문일게다. 베스의 절망은 내가 지금 하는 고민이고, 벤처럼 살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는 나와 꿈을 좇았으면 어땠을까를 고민하는 벤은 결국 닮아있으니까. 순간순간의 선택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런 선택을 한 것을 비난하지 못하고 이해하게 되는 건 아마도 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신호겠지.


원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 행복할 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지나온 시간 전체가 '나'이니까 그 시간들이 쌓이지 않은 아예 다른 삶이라는 것은 공허해진다. '게리'의 '성공'도 결국은 벤이 지나온 시간에 힘입은 것일테니, 그 시간 대신 다른 시간을 경험한 '게리'는 어쩌면 또 하나의 게리에 불과했을지도. 야구에만 만약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에는 늘 만약이 없으니까, 나 또한 지나간 시간 전체가 나를 이루고 있겠지. 잊고 싶거나 다시 선택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몬태나에 정착해가는 과정과 게리가 유명해지는 과정에서는 '아악' 소리를 내면서 봤다. 어딘가 게시판에 조언을 구하는 글 - 동네 사람들이 제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알고 있어요 ㅠㅠ - 이 올라왔다면 몸서리를 쳤을테고, 알려지면 안되는데 일약 대스타가 되면 정말 사라지고 싶을테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이니까 반은 웃으면서 '으으 어떡해!!' 정도로만. (소설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흑;;) 그래도 그 덕분에 마지막까지 이야기의 속도감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정도면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을만한데, 아직 망설여진다. 사실 나 자신도 그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되어서 고민해봤는데(이야기로서 훌륭한 것에 가장 큰 점수를 주는 인간이 왜 괜찮은 이야기꾼으로 추정되는 작가의 책을 망설이는 건데?), 아마도 어떤 소재를 다루는지를 몰라서 그런 듯. 무거운 주제를 피해다닌지 꽤 오래 되었는데 여전히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이야기를 접하고 싶지는 않은가보다. 그렇지만.. 알라딘 다이어리 때문에 템테이션을 주문하게 되겠지... OTL


아 참. 책 판권 표시를 보면 1997년 작품으로 되어 있는데, 이야기 중간에 911을 언급하는 장면이 잠시 나온다. 내가 뭘 헷갈려서 그런건지, 아니면 한국어판 전에 손을 봐서 그런건지? 그리고 루디 캐릭터는 좀 아쉬웠다. 그의 행동들이 한 인격으로 잘 연결되지 않는달까. 뭐 불평은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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