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꿈속처럼 황량한 분위기 때문에 두려움은 약해진 것 같았다. 그래도 죽음의 이미지가 다가왔다. 도로에 말라붙은 개구리, 쓰레기통에 버린 아빠의 망가진 시계, 죽은 사람이 묻혀 있는 무덤의 비석, 전신주 옆에 죽어 있던 까마귀. 엄마가 접시에서 긁어내어 쓰레기통 입구에 버린 식은 음식.
하지만 이 단순한 상징을 어머니라는 복잡한 현실과 동일시할 수는 없었다. 대니가 없었을 때도 어머니는 있었다. 대니가 다시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어머니는 계속 존재할 것이다. 대니는 자신의 죽음은 납득할 수 있었다. 217호 실에 들어갔을 때부터 그것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죽음은 아니었다.
아빠의 죽음도 아니었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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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지금 당장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까, 웬디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장부와 조그만 종이 놓인 어두운 접수 데스크 뒤에서 잭이 튀어나온다면, 용수철 인형처럼 한 손에는 도끼를 들고 눈에는 광기를 번득이며 튀어나온다면, 웬디는 두려움에 얼어붙어 버릴 것인가, 아니면 원초적인 모성애를 발휘하여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아들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인가? 대답을 알 수 없었다. 그 생각만 해도 매스꺼웠다. 여태껏 살아온 삶 전체가 악몽으로 귀결되는, 길고 덧없는 꿈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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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가다 정상 상태를 벗어나다 돌다 상태가 안 좋다 이상해졌다’
전부 같은 뜻이었다. 정신 이상이 된다는.
"아냐." 잭은 훌쩍였다. 자신이 어린아이처럼 눈을 감고 훌쩍이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오 아냐, 하느님. 제발, 하느님, 제발."
하지만 뒤죽박죽이 된 사고 아래서, 맹렬하게 뛰는 심장 아래서, 잭은 갇혀 있는 무엇, 그를 만나고 싶어하는 무엇, 밖에서는 폭풍이 불고 밝은 햇빛이 새카만 밤으로 변하는 동안 그의 가족과 인사를 나누고 싶어하는 그 무엇이 문 손잡이를 앞뒤로 돌리면서 나지막하도 공허한 소리를 내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눈을 뜨고 손잡이가 돌아가는 것을 본다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눈을 감고 있었고, 얼마가 지났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르자 정적만 남았다.
잭은 억지로 눈을 떴다. 눈을 뜨면 그녀가 앞에 서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복도는 비어있었다.
그는 누군가가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문 한가운데 구멍이 보이자 거기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누구와 눈알을 맞대고 있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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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는 어둠 속 어딘가에 있었다.
‘이 비인간적인 장소는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 이 비인간적인 장소는’
알 수 없는 말을 자꾸만자꾸만 반복하면서.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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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은 다시 주방을 나와 전등을 껐다. 그는 잠시 어둠 속에 서서 술 생각을 했다. 갑자기 호텔에는 수천 가지 소리가 숨어있는 것 같았다. 끽끽거리는 소리, 신음소리, 말벌집이 말라붙은 과일처럼 매달려있는 처마 밑에 바람이 부딪치는 소리.
놈들이 돌아왔다.
그러자 갑자기 오버룩이 전처럼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들을 쏘고, 살충제를 썼는데도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말벌이 아니라 호텔 자체가 문제인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잭이 아내와 아들이 있는 위충으로 올라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 생각은 단호하고 확실하고 분명했다.
‘앞으로는 이성을 잃지 말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잭은 그들을 향해 복도를 걸어가다가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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