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을 냄새로 아는 슈퍼파워의 소유자가 있다는 걸 아는가? 일흔두 살 영국 여성 조이 밀른의 이야기다.그녀는 남편에게서 어느 날부터 향수에 쓰이는 사향같은 묘한 냄새를 맡게 되었고 그녀 외에 누구도 그 냄새를 알지 못했다. 놀라운 것은 남편이 파킨슨병 진단을받고 병원에 입원하자 다른 파킨슨병 환자들도 똑같은 냄새가 난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조이 밀른은 이 사실을 파킨슨병 전문 연구자들에게 알렸고 연구자들은 그 보고를 놓치지 않았다.⠀⠀낯선 사람의 낯선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은 결과 오늘날 정확도 70%에 달하는 인공지능 후각 시스템이 만들어졌다.⠀⠀이 책은 어느 한 분야를 뒤흔들거나 균열을 내버린 낯선 사람을 소개한다. 스물여섯 명의 인물이 실려있는데 서너명 빼고 거의 모든 인물이 낯설었다🤧그래서일까? 책으로 읽는 알쓸신잡 느낌.처음부터 각잡을 필요없이 제목만 보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재미있다. 한 인물당 네장 정도라 부담도 적다.⠀⠀낯설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이슈의 중심에 서있던 사람들.그들의 용기와 소신 덕분에 오늘날의 우리가 누리면서 살고 있는건 아닐지..⠀⠀* 이 도서는 한겨레출판사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한 줄 평 📌왜 그런지 밝히고 싶지 않지만 위로는 받고 싶은 날! 읽으면 좋은 책⠀⠀별일은 없고요?안부를 묻는 인사가 다정하다.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일들이 마음에 따라 별일도 되고 사사로운 일도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당신의 안부가 궁금하다는 듯.⠀⠀작가 이주란은 안부를 물어올 때조차 적당한 거리를 아는 사람이다. 여덟 편의 단편 속에는 상실과 상처로 마음이 닫힌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소설 속에서 그들의 내밀한 사연은 모두 생략되어 있다.⠀첫 번째 단편 '별일은 없고요?'에서 이주란식 위로를 눈치채지 못했던 나는 사직서를 내고 5평짜리 엄마의 원룸으로 찾아든 주인공이 숨죽여 우는 밤을 공감하지 못했다.그러나 그녀의 엄마가 건넨 한마디.그 한마디가 나를 무장해제 시켜버렸다.⠀<그동안 고생했으니까 당분간은 좀 쉬어.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런 말도 해주었다. 엄마의 말에 나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P.13>⠀⠀엄마, 친구, 옛 연인, 이웃 등...쉼에 머물러 있는 주인공 곁에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고 기다려주는 주변인물이 있다.그들은 그저 곁에서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할뿐이고 이유를 묻는 사람은 없다.그들이 건네는 서정적 위로가 내 마음을 채운다.⠀⠀권여선작가님 이후로 오랜만에 마음에 들어오는 단편집을 만났다.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의 행동이나 감정 묘사를 잘게 쪼개어 나누는 표현법을 좋아하는데 이 소설이 딱 그랬다.다 읽고 나니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떠오르는건 왜일까?😄⠀⠀* 이 도서는 한겨레출판사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취약한 것은 잘못이 아니며, 취약한 사람도 강인할 수 있고, 어린 소녀들이 이 시기를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은 어른의 책임이다. - '옮긴이의 말'에서 -⠀⠀어린이 성범죄나 실종사건 등을 다룬 영화,소설,뉴스를 보는 일은 여전히 힘들다.아이를 키우는 부모이기도 하지만 안전에 취약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모종의 책임의식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언제쯤이면 아이들에게 미안하지 않는 사회가 올까?그루밍 성폭력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인종차별과 미성년자 문제까지 함께 어우러져 긴 여운의 메세지를 남긴다.⠀⠀노래와 수영을 좋아하는 꿈 많은 열일곱 살 소녀 인챈티드.소수의 흑인만 재학중인 백인학교에서 그녀는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이며 집에서도 일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어린 동생을 잘 보살피는 든든한 맏이다.어느 날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그 곳에서 전설적인 R&B 가수 코리 필즈의 눈에 띈다.인챈티드는 코리와 함께 투어를 떠나며 가수의 꿈에 한발짝 다가서는듯 보이지만 코리는 권력과 유명세를 앞세워 성적인 학대와 착취를 일삼는다.어느 날 코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한 상황에서도 대중은 인챈티드를 향한 마녀사냥을 멈추지 않는다.⠀⠀벌을 세운다며 화장실과 에어컨도 없는 방에 하루 종일 가두고 곧바로 디즈니랜드에 데려가 달콤한 말을 속삭이는 코리의 광기를 보며 인챈티드는 사랑과 두려움을 느낀다.그러나 그루밍 성범죄가 그렇듯 인챈티드는 가족과 친구들과도 단절된 채 코리에게 서서히 정신적.육체적 지배를 당하는 중이었다.⠀⠀청소년기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아이와 함께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자신의 꿈이 너무 간절하면 자칫 그 과정의 중요성을 놓칠 수 있는 청소년기 취약점에 대해서도 잘 나타나있어 함께 이야기할 부분이 많다.무엇보다 모두가 외면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성장하고 자신을 지켜내는 인챈티드의 몸부림을 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남는다.우리는 아이들의 무엇을 지켜주고 싶은 것일까?⠀⠀* 이 도서는 한겨레출판사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삶에 단단히 박음질된 것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소매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단추처럼 삶과의 연결이 위태로운 사람도 있다" - 작가의 말에서 -소설은 희영이 '블랙홀'이라는 의문의 쪽지를 받으면서 시작된다.블랙홀은 희영이 학창시절부터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고 실수로라도 꺼내지 않던 사건이었고 희영을 필두로 시작된 이야기는 주변 인물들로 화자를 바꿔가며 각자가 품고 있던 마음속의 구멍을 풀어놓는 방식이다.여기까지만 들어보면 추리장르 같지만 그보다 이 소설은 내면의 상처와 상실의 구멍을 메꾸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경남 은수리 마을,날마다 붙어다니던 삼총사 희영, 은정, 필희는 필희의 엄마와 은정의 아버지가 눈이 맞아 사라진뒤 바로 해체되었다. 희영에게 할말이 있다며 저수지로 불러낸 필희는 마음속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희영이 무심코 던진 돌은 공중에서 부서지며 까만 구멍으로 먼지처럼 빨려들어간다.정체불명 미확인 홀,그리고 다음 날 필희가 사라졌다.이 날 이후 희영은 사라지지 않는 자책감으로 평생을 살아간다.이 소설은 한 사람의 시선으로만 단정하지 않는다.저마다 처한 상황과 어린 시절 상처 등 누구나 자신만의 구멍을 품고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자신의 블랙홀에 매몰되어 버린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독자인 나의 상처를 돌아보게 되고 그렇게 정체불명 미확인 홀은 알 수 없는 공간에 연결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안부를 전하며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살다보면 누구나 깊은 수렁에 빠진 듯한 절망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 또 아주 가벼운 사건 하나로 블랙홀에서 빠져나오는 경험을 하기도 하지 않나.이와 동일한 시선으로 풀어낸 소설은 쉽게 잃히면서도 등장인물의 연결고리를 찾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다.자신만의 블랙홀에 함몰되지 말고 이 소설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갖기를.3월. 새 잎도 돋아나고 꽃도 피우는 계절😊* 이 도서는 한겨레출판사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 독자가 잠자리에서 철학자 김진영을 만난다. 숨고르기 하듯 여백이 가득한 그의 사유를 따라가면서 마음이 점차 차오르는걸 느낀다. 두께가 있는 책이지만 짧은 토막글이고 깊은 사유가 담겨있어 잠자리에서 하루를 정리하며 읽기에 좋다.2월 한달은 정신없이 바빠서 활자가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 긴 호흡의 책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 책을 만날 수 있어 얼마나 행복했던지.⠀⠀어느 피드에서 '아침의 피아노'에 대한 인상적인 서평을 보았던 터라 작가님을 기억하고 있었다.더이상 작가님의 새로운 글을 만날 수 없다는 서글픔과 안타까운 감정은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불쑥 불쑥 찾아왔는데, 자신의 미래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는듯한 글귀을 만날때면 그 마음을 헤아려보려 잠시 책을 덮고 눈을 감는다.⠀⠀바쁜 일상에도 여러 감정은 찾아온다.그 감정들로 인해 수시로 중심을 잃기도 한다.그러나 철학자 김진영을 옆에 둔다면 오늘도 사랑하는 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나는 늘 조금 울적하고 슬프다. 하지만 그 슬픔 안에 모종의 기쁨이 또한 들어 있음을 난 안다. 아마도 그 슬픔과 기쁨이 나에게는 사랑이고 조용한 날들이리라. 부끄러운 건 이 사랑의 마음을 어느 사이 많이 잃어버린 듯 싶기 때문이다. (P.450)⠀⠀* 이 도서는 한겨레출판사에서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