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은 내게 가장 익숙한 인격이다. 자궁 속에 함께 잉태되었던 얼굴 없는 쌍생이 아닐까 고민했던 적도 있다. 깜깜한 밤이, 그 속을 멀쩡한 정신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새벽이, 어릴 때는 유령처럼 두려웠으나 지금은 오래된 친구처럼 친근하다. 두려움과 친근함의 힘에 의지해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생각을 하고 의자에 멍하게 앉아 타닥타닥 타이핑을 했다. 프린트된 원고를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불쑥 외롭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럴 때면 우편비행기를 타고 홀로 밤하늘을 날고 있는 우편배달부가 된 것 같았다. 외로웠으나 충만했고, 절망스러웠으나 슬프지 않았다. 어느새 밤이 나를 까맣게 물들였다. 이제 얼룩도 없고 흔적도 없다. 글이 준 선물이고, 글이 준 장애다. 모든 소설을 새벽에 썼다. 소설집 제목을 ‘야간비행’으로 짓고 싶었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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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정용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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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키노 > 영화에 쓰인 반전의 기법 & 실패한 반전들 [2]

반전영화의 법칙 셋. 다중반전보다는 간단명료한 반전을 노려라

<베이직>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이란 말은 다중반전의 탄생을 예고한 말이었을까? 연속적인 반전은 강하다. 사람들은 흔히 “한번 속지 두번 속나?” 한다. 진짜 그럴까? 영화에선 아니다. <와일드 씽>에서 주인공들이 돌아가면서 한번씩 범인 역을 맡았을 때 관객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 한 패거리라는 것이 드러났을 때는 “젠장, 또 짜고 치는 고스톱이군” 하고 말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시 똑같은 형식으로 진범이 수지임이 드러나면서 관객은 허를 완전히 찔리게 된다. ‘설마, 이걸 또 뒤집겠어?’란 상식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먹기 좋은 떡이라도 자꾸 먹으면 질리고 끝내는 체하고 만다. <베이직>이 다중반전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뒤집고 또 뒤집고 완전히 빈대떡 부치는 수준이다. 그렇게 관객을 완전히 지치게 만든 뒤 보여준 결말은 생존자와 수사관, 교관,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사람들까지 전부 한통속이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주제를 부각하기 위한 제대로 된 반전인지, 반전을 위한 반전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오히려 진정한 반전은 <식스 센스>처럼 간단명료해야 한다. 영화 종료 30분 전, 즉 결말의 초입에서 관객의 긴장감과 의문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뒤, 막판 5분을 남기고 간단히 시점을 뒤집어버린 것은 하나의 도박이었다. <식스 센스>는 딱 한번의 반전이 여러 번의 ‘삽질’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수작이다. <디 아더스> <더 로드> <아이 인사이드> 등 ‘유령’을 모티브로 한 아류작들이 있지만 <식스 센스>의 충격만큼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시점 조작은 의외로 간단하다.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1인칭 주인공이 느끼는 흥분을 똑같이 느끼게 하면 된다. 즉, 관객=주인공으로 완전히 감정이입하게 만들어 주인공의 신념, 의지 등을 관객이 믿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내 눈엔 귀신이 보여요!”라고 끊임없이 칭얼거려주는 소년이 옆에 있어주면 더욱 좋다. 원래 도박은 옆에서 거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성공률이 높은 법이니까.

반전영화의 법칙 넷. 반전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라

<지구를 지켜라!>

반전영화 붐이 일면서 반전영화들 사이에서도 유행이 돼버린 소재들이 있다. 다중인격, 유령, 외계인, 현실과 가상현실, 정신분열증, 최면 등이 그것이다. <아이덴티티> <프라이멀 피어> <파이트 클럽> 등에서 범인이나 영화 제작자는 다중인격을 트릭으로 사용했다. <포가튼> <싸인>처럼 범인이 외계인이라는 설정의 영화가 있는가 하면, <지구를 지켜라!>처럼 정신이상자인 주인공의 입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외계인의 존재를 허무맹랑한 것이라 믿게 만든 다음, 주인공이 싸우는 적이 진짜 외계인이라는 반전으로 뒤통수를 때린 영화도 있다. <오픈 유어 아이즈>나 <바닐라 스카이> <멀홀랜드 드라이브>처럼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범죄의 재구성>의 쌍둥이, <뷰티풀 마인드>의 정신분열증과 <모노폴리>의 키덜트 주인공의 공상, <올드보이>와 <H>의 최면 등 반전의 소재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나친 반전강박증은 영화를 보는 맛을 단순화시킨다. 영화의 전개야 어찌 됐든 반전만 탁월하면 뭐든 용서된다는 안일한 사고방식도 영화의 질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한다. 반전을 위한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반전은 영화의 재미를 배가하는 부차적인 장치일 뿐, 영화의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

<유주얼 서스펙트>가 ‘명품’이 된 것은 의외의 범인, 많은 힌트, 간단명료한 반전, 그리고 레고처럼 꽉 짜인 플롯 등이 골고루 섞인 덕분이다. 이 영화에서 속이기 위한 반전은 딱 한번뿐이다. 킨트가 쿠얀 형사 앞에서 5명의 용의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진술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 가운데 킨트가 구체적으로 진술했던 유일한 사람은 키튼이다. 쿠얀 형사가 키튼에게 집요한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눈치챈 킨트가 교묘하게 그에게 죄를 뒤집어씌운다. 쿠얀 형사의 심문에 수긍하듯 “키튼이 카이저 소제였다”고 시인하며 눈물까지 흘리는 장면에서 킨트가 연기하는 사실을 눈치챌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결국 킨트가 절던 다리을 펴면서 경찰서를 나올 때쯤에야, 관객은 킨트가 왜 진술 중간중간에 “스코키에서 4중창을 했을 때…” 하면서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였는지 눈치채게 된다. 관객은 처음부터 끝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재치와 두뇌로 혐의에서 벗어난 킨트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실패한 반전들_ 너희가 반전을 아느냐?

1. 주제를 헷갈리게 하는 반전 - <데이비드 게일>

기자인 빗시 블룸은 강간살해범으로 6년간 수감생활 끝에 사형집행을 앞둔 데이비드 게일을 구하려 애쓴다. 게일은 텍사스 오스틴대학의 철학과 교수이자 사형제도 폐지운동 단체인 데스워치(Death Watch)의 회원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제자 벨린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되고 모든 지위와 명예를 하루아침에 박탈당한다. 그에게 남은 친구는 데스워치의 회원이자 동료 교수인 콘스탄스뿐. 하지만 백혈병을 앓던 그녀는 성폭행당한 뒤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부검 결과 콘스탄스의 몸에서 게일의 정액이 검출되자 게일은 살해범으로 구속된다. 사형집행까지 3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빗시는 그의 무죄를 입증해내려 애쓴다. 콘스탄스의 최후가 찍힌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 빗시는 콘스탄스가 살해된 것이 아니라 자살한 것임을 알고 언론에 알리려 하지만, 게일은 결국 사형되고 만다. 여기까지는 ‘사형제도 반대’를 위해 애쓴 주인공의 좌절담처럼 보인다. 하지만 맨 끝에 반전이 있다. 사형집행 뒤, 그녀에게 배달돼온 한 비디오테이프에는 콘스탄스의 자살현장에 함께 있던 게일의 모습이 찍혀 있었던 것. 내용은 이렇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던 콘스탄스와 게일이 사형제도 비판을 위해 각본을 짠 것이다. ‘무고한 사람도 죽을 수 있는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일념하에 살신성인한 셈. 그러나 타인의 자살을 방조해 사형제도의 폐지론을 주장한다는 것은 모순처럼 보인다.

2. 모든 게 짜여진 각본이다 - <더 게임>

니콜라스 밴 오튼은 성공적인 사업가다. 그는 돈과 자신의 사업에만 전념하는 냉철한 사람으로 이혼한 뒤 회사와 자신의 대저택만을 오가는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형 니콜라스의 생일에, 한참 동안 소식이 없었던 동생 콘래드가 갑자기 나타나 무료한 형에게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할 것을 권유하며 CRS(소비자 오락 서비스)라는 이상한 게임의 안내장을 주고 사라진다. 니콜라스는 자신에게 터지는 이상한 사건들에 당황하며 자신이 게임의 틀에 걸려들었음을 알아챈다.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게임의 전모에 대해 호기심을 자아내지만, 이 모든 게 동생이 형의 생일을 위해 짜놓은 각본이라는 결론을 알고 나면 허무해진다.

3. 씨만 뿌리고 거두지 않는 경우 - <스위밍 풀>

범죄 미스터리 작가 사라 모튼은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편집장의 별장을 찾는다. 수영장까지 딸려 있는 분위기 좋은 별장에서 글쓰기에 돌입하던 그녀. 그런데 어느 날 밤 편집장의 딸이라는 줄리가 별장에 나타난다. 선탠과 섹스를 즐기는 자유분방함에, 예쁘고 늘씬한 줄리를 보며 사라는 몹시 심란해진다. 하지만 곧 줄리에게 호기심이 생긴 그녀는 줄리의 일기장까지 훔쳐보며 줄리에 관한 글을 쓴다. 어느 날 밤 줄리는 별장으로 사라가 내심 좋아했던 프랭크란 남자를 데려온다. 그런데 다음날, 수영장에는 핏자국만 남아 있고 프랭크는 사라진다. 사라는 프랭크의 행적을 추적한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서 사라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줄리를 보게 되는데, 그녀는 치아교정기를 끼고 주근깨 가득한 모습이다. 결국 예쁘고 몸매 착한 줄리는 모두 사라의 환상임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영화는 무책임하게도 여기서 끝을 낸다. 왜 수영장에 핏자국이 있었는지, 줄리가 프랭크를 죽인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는 끝내 나오지 않는다.

4. 보인다 보여, 뻔한 반전 - <블랙아웃>

샌프란시스코 강력반계 최초로 여자경관이 된 제시카. 그녀는 뛰어난 실력을 지녔지만 여자란 이유로 남자 경찰들의 시샘을 산다. 사실 그녀는 어렸을 적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다. 경찰관이었던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것. 당시 6살이었던 제시카는 아버지의 경찰 파트너였던 부장 존 밀스의 도움으로 경찰로 성장한 것. 존과 함께 그녀를 격려해주는 또 한 사람은 파트너인 마이크다. 어느 날 해변가에서 몸이 난도질당한 시체가 발견되자, 직감적으로 연쇄살인임을 알아챈 제시카. 그러나 피해자들은 모두 제시카가 하룻밤을 보낸 남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그녀는 큰 혼란에 빠진다. 네 번째 희생자가 시체로 발견된 날 제시카는 알리바이를 댈 수 없어 용의자로 지목된다. 결론적으로 범인은 친아버지 같았던 부장 존 밀스다. 제시카 주변에 있으면서 마이크를 범인으로 몰려고 했으며, 제시카의 과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 특히 제시카가 술 마실 때 오버랩되는 흑백장면을 보면 어린 시절 제시카의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이자 연쇄살인마가 밀스임을 알아채기는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글: 권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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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키노 > 영화에 쓰인 반전의 기법 & 실패한 반전들 [1]

최근 <모노폴리> <럭키 넘버 슬레븐> 등 반전을 꽁꽁 감춘 영화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른바 ‘반전영화’는 장르로 인정받는 명칭이 아닌데도 인터넷상에서 꾸준히 인기 검색어에 오르고 있다. 사실 반전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기법이 아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은 물론이고, 스릴러나 공포·범죄영화 등의 장르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관객의 예상을 뒤집는 결말을 위해 반전 기법이 흔히 쓰이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반전이 마치 유행성출혈열처럼 퍼지게 된 이유는 뭘까?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 센스> 이후, 반전 강박증처럼 ‘반전, 반전’을 고집하게 된 여러분에게 반전의 비밀을 ‘노골적으로’ 공개하려 한다. 반전영화들이 마지막 반전을 위해 영화 내에 배치한 요소들을 거꾸로 짚어보면서 반전영화 만드는 법을 알아본다.


스포일러 경고: 다음 영화 가운데 한 작품이라도 보지 못한 게 있다면 이 글을 읽지 마시라. 반드시 후회한다.

<모노폴리> <식스 센스> <유주얼 서스펙트> <올드보이> <리크루트> <왓 라이즈 비니스> <텔미썸딩> <메멘토> <공공의 적> <마인드 헌터> <프라이멀 피어> <비독> <아이덴티티> <와일드 씽> <자카르타> <수어싸이드 킹> <데이비드 게일> <베이직> <쏘우> <디 아더스> <더 로드> <아이 인사이드> <파이트 클럽> <포가튼> <싸인> <지구를 지켜라!> <오픈 유어 아이즈> <바닐라 스카이> <멀홀랜드 드라이브> <범죄의 재구성> <뷰티풀 마인드> <H> <데이비드 게일> <더 게임> <스위밍 풀> <블랙아웃>

반전영화의 법칙 하나. 범인에서 시작하라

모든 영화는 인물에서 시작한다. 어떤 인물을 설정할지 결정하고 나면 그 이후의 플롯은 인물이 알아서 만들어간다는 것, 이것이 캐릭터 중심의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들의 굳건한 믿음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물은 당연히 플롯의 ‘열쇠를 쥔 자’다. 열쇠를 쥔 자? <매트릭스>의 키 메이커를 말하냐고? 천만에. 흔히 반전영화에서 열쇠를 쥔 자란 ‘범인’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범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얼굴에 칼자국, 불룩 솟은 양팔에는 ‘一心’ 따위의 문신 등 한복판에는 철길처럼 길게 뻗은 수술 자국이 있는 사람일까? 관객은 순진하지 않다. “내가 범인이야” 할 바에야 광고를 하지, 왜 영화를 만들겠는가. 게다가 <식스 센스> 이후 눈이 부쩍 높아진 관객이라면? 지능적인 관객과의 두뇌 플레이에서 지기 싫다면 미리 아인슈타인 우유라도 마셔두자.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어떤 범인을 어떻게 지능적으로 숨길 것인가?

<왓 라이즈 비니스>

첫째, 범인들은 인륜을 따지지 않는다.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를 만든 직후, 한 인터뷰에서 “금지된 것을 시도하는 것은 예술가의 특권”이라고 말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예술가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반전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예술가 편에 설 필요가 있다. 바로 ‘범인’이란 예술가다. 범인들로 하여금 금기에 도전하도록 만들자. 아내든 남편이든 상관없다. 관객이 범인 추론 과정에서 첫째로 배제하는 사람은 주인공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날 배신할 리가 없다고 믿을 테니까. 하지만 반전영화에서 한번쯤은 나오는 대사를 상기해보자. “가장 가까운 사람을 믿지 말라” 혹은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어익후! 뻔하다 못해 뻔뻔스러운 말이지만, <리크루트>의 형과 <왓 라이즈 비니스>의 남편, <텔미썸딩>에서 희생자의 애인, <메멘토>에서 아내를 죽인 남편 등이 범인으로 밝혀지면서 이 대사들은 신빙성을 갖추게 된다. 또 만일 <공공의 적>을 반전이 있는 스릴러영화로 만들었다고 생각해보자. 살해당한 어머니가 범인의 손톱을 삼킨 부분이 앞에 나왔을 테고, 나중에 친아들이 살인자로 밝혀졌다면 관객은 당혹감에 몸서리쳤을 것이다. 어쨌든 결론은 범인과 인륜은 천적 관계란 사실이다. 범인과 피해자의 관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반전의 영향력은 커진다.

<마인드 헌터>

둘째, 범인은 언제나 의외의 인물이다. 관객은 뒤통수를 맞아야 쾌감을 느끼는 이상한 동물이다. 오해가 있을 듯하니 부연설명해보겠다. 세인들이 보호해주고 싶어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약한 사람, 예쁜 사람, 불쌍한 사람들이다.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의 소외계층,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 혹은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가 바로 범인의 첫째 조건이다. 너무 가혹한 기준 아니냐고? 착각 마시라. 소외된 사람들은 ‘현실’에서 반드시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하지만 영화는 현실이 아니다. 관객이 영화에서 바라는 것은 현실에서는 다 풀어낼 수 없는 욕망과 쾌감, 자유 등일 것이다. 관객은 이중 잣대를 갖고 있다. 그들은 영화가 현실적이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이기를 바란다.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자. 우리는 ‘현실’의 눈으로 로저 버밸 킨트(케빈 스페이시)의 다리를 본다. 온전하지 못한 다리와 수동적이고 약한 이미지 탓에 우리는 ‘당연히도’ 용의선상에서 그를 제외한다(물론 장애인은 범인이 아닐 거라는 예상이 맞을 때도 있다. <마인드 헌터>에서 시종일관 음울한 모습을 보이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빈스는 관객이 범인 0순위로 착각하게 만드는 일종의 ‘낚시꾼’이다). <프라이멀 피어>는 어떤가? 말더듬이에 언뜻 보면 미소년 같기도 한 19살의 애런(에드워드 노튼)의 착하고 소심해 보이는 성격만 보면 그는 ‘절대로’ 대주교의 손가락을 자르고 생식기와 눈알을 파낸 범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비독>에서 살인사건을 해결하려는 미소년(?) 기자 역시 관객의 눈썰미를 피해간다. 하지만 이들은 <아이덴티티>의 범인에 비하면 약과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연상하게 하는 이 영화에서 모텔의 인물들을 죽여나간 범인은 놀랍게도 다중인격자 속에 존재하는 천사 같은 외모의 어린 소년이란 인격이다.

셋째, 범인은 혼자가 아닐 수도 있다.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수법이다. <와일드 씽> <자카르타> <수어싸이드 킹> <데이비드 게일> <베이직>이 이에 해당한다. 범인의 존재가 양파껍질처럼 하나하나 벗겨지면서 그들이 모두 한 패거리란 점을 알게 되는 경우다.

넷째, 범인은 죽었을 수도 있다. <식스 센스>를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쏘우>를 예로 들어보자. 영화 초반부터 죽어 지하실에 있었던 시체가 마지막에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고 무릎을 탁 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반전영화의 법칙 둘. 최대한 헛다리를 많이 짚게 하라

반전(反轉)이란 뭔가? 부시의 이라크전을 반대하는 것? 농담이다. 반전이란 뒤통수치기다. 관객은 왜 반전영화에 뒤통수를 맞을까? 시체나 어린이, 사랑하는 가족이 범인이라서? 단지 범인의 숨겨진 정체 때문만은 아니다. 황당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황당함조차 인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황당한 범인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것이 바로 힌트다. 반전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페어플레이다. 힌트, 즉 관객에게 보이는 것이 많을수록 관객은 게임이 흥미롭다고 느끼게 된다. 힌트를 많이 주어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추리, 다시 말해 다양한 헛다리를 짚게 하는 것이 반전영화를 만드는 자의 의무(?)다.

<쏘우>

그럼 어떻게 헛다리를 짚게 할 것인가? <쏘우>에서 왜 관객은 시체를 용의선상에서 배제할 수밖에 없는가? 그들이 범인이라고 의심하던 사람, 즉 병원 직원 제프가 딸과 어머니를 묶어놓고, 마치 범행을 즐기는 듯한 과정 등이 보여지면서 관객은 점점 영화 속 주인공들과 더불어 제프를 범인으로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그 역시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고든 박사의 가족을 납치하고 죽여야 하는 제프의 미션임이 드러나면서 관객은 ‘제대로 헛다리 짚었군’ 하고 깨닫게 된다. <아이덴티티>는 어떤가? 영화는 애초부터 에드(존 쿠색)가 수사관들 앞에서 진술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폭풍우 치는 밤, 외딴 모텔에서 10명의 사람들이 하나둘 살해된다. 사람들의 생일이 전부 같고, 이름에 도시 이름이 들어간다는 공통점, 여기에 밀실 같은 현장에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열쇠가 남는다는 점 등이 힌트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힌트들은 영화 중간에 에드가 죽어버리면서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수사관들 앞에 앉아서 사건을 진술하는 에드는 누구란 말인가? 하는 의문을 품을 때에야 비로소 영화는 진실을 조금 내비친다. 바로 범인이 다중인격자란 사실 말이다. 범인의 체포로 영화가 별 반전 없이 끝날 것 같은 두려움이 들 때야 비로소 영화는 속내를 드러낸다.

<마인드 헌터>에서 범인은 멈춘 시계로 살인을 예고하고 피해자들은 각자의 특성대로 죽어간다. 늘 맨 앞에 섰던 제이디는 헬륨통의 액화질소가스에 몸이 부식돼 죽고, 커피 귀신인 바비는 커피를 마시고 죽고, 손재주가 좋았던 레이프는 물탱크의 손잡이를 돌리다가 죽는 식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바로 범인이 훈련생들을 잘 아는 내부인이란 사실일 것이다. 영화는 휠체어에 타고 다니며 늘 총기를 소지하는 빈스나 시뮬레이션을 기획한 해리스, 법무성 조사원인 게이브 등을 범인으로 몰고 가면서 반전을 꾀한다. 하지만 여러 번 헛다리를 짚은 뒤에야 루카스가 진범이란 것을 깨달을 계기가 올 것이다. 되짚어보면 루카스와 사라는 보트 폭발로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을 뿐이다. 이는 다른 훈련생들이 한방에 죽어버린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범인은 자신이 범인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언제나 피해자인 척 가장한다. 사라에게 연정을 품은 것처럼 행동하면서 루카스가 지나치게 사라를 감싸는 점, 레이프에게 물탱크 손잡이를 돌리라고 명령한 점, 총에 맞고도 방탄조끼를 입고 살아난 점 등은 분명 루카스가 범인임을 암시한 힌트들이다. 평소 공부 안 하는 것처럼 보이던 학생이 수능시험에서 ‘운 좋게도’ 대박 맞은 것을 종종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런 우연은 없다. 복선이 있고 암시가 있어야 마지막 반전에서 관객은 허를 찔리면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이다. 학생이 수능 대박을 맞은 것은 남들이 안 보는 틈틈이 집에서 열심히 공부한 것 외에는 별다른 비결이 없다는 얘기다. 흔히 놓치기 쉬운 작은 힌트들을 영화 곳곳에 얼마나 꼼꼼하게 배치하느냐가 반전영화 성공 여부를 가름하는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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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크라잉넛 - 밤이 깊었네


밤이 깊었네 방황하며 춤을 추는 불빛들 이 밤에 취해
흔들리고 있네요 
벌써 새벽인데 아직도 혼자네요 이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요
항상 당신곁에 머물고 싶지만 이 밤에 취해 
떠나고만 싶네요

이 슬픔을 알랑가 모르것어요 나의 구두여 너만은 떠나지 마오

하나 둘 피워 오는 어린시절 동화같은 별을 보면서
오늘 밤 술에 취한 마차타고 지친 달을 따러가야지

밤이 깊었네 방황하며 노래 하는 불빛들 이 밤에 취해
흔들리고 있네요

가지마라 가지마라 나를 두고 떠나지 마라
오늘밤 새빨간 꽃잎처럼 그대 발에 머물고 싶어

딱 한번만이라도 날 위해 웃어준다면
거짓말이었는데도 저 별을 따다 줄텐데
아침이 밝아오면 저 별이 사라질텐데
나는 나는 어쩌나 차라리 떠나가주오

하나 둘 피워오는 어린시절 동화같은 별을 보면서
오늘 밤 술에 취한 마차 타고 지친 달을 따러가야지
가지마라 가지마라 나를 두고 떠나지 마라
오늘밤 새빨간 꽃잎처럼 그대 발에 머물고 싶어(날 안아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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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 흥얼거리는 노래...

이 슬픔을 알랑가 모르겠어요~

그러다가

너는 누구의 슬픔을 아느냐고...

그래서 더 구슬프게 웅얼거리는...

노래... 삶... 지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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