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le 2006-04-19  

B시에서.
밤마다 술을 마셔요. 해질녘이 되면 취하지 않고서는 어쩐지 견딜 수가 없어지거든요. 물론 견뎌야 할 그 무엇이 있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면서 해가 지면 도무지 밤을 맨 정신으로 맞이하는 것이 불온하고 불경스럽게만 느껴져서요. 그래 이제는 삼백밀리짜리 산사춘을 두 병쯤 마시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잘도 잔답니다. 바다는 통 보지를 못했어요. 집에서 바다가 보이지는 않아요. 그래서 매일매일 비를 기다려요. 빗소리는 파도소리를 닮았으니까. 새삼 그걸 배워요. 사물이 거울로 보이는 것보다 멀리 있습니다, 였던가요, 아무튼. 라이프 스케쥴을 좀 바꿔도 좋으련만 오전에 저는 또 춤교실에 등록하려고 생각중이에요. 그러니까 저는 참 춤을 좋아해요. 장르로 말하자면 막춤이고 스트립이고 안가리고. 춤출 때 내가 얼마나 행복해 하는 지 알거든요. 어렸을 때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고 느꼈는데 그게 정말이었나 봐요. 하긴 가장 좋았던 전기가 이사도라 던컨이었으니. 제가 아줌마가 되면 춤바람이 기어코 나고야 말겠죠. :) 조금 재수없는 이야기 하나 할까요. 노동을 떠나니 노동의 소중함을 알겠더라구요. 노동이 그립기도 하고. 식사조차도 귀찮아 어쩌다 보니 저의 식탁은 싱크대 위가 돼버렸어요. 싱크대에 서서 대충 허기나 때우는 것이 가장 저답고 편하더라구요. 몇 번은 우아하게 작은 접시에 김치도 아기자기하게 담아놓고 그랬는데 그 모든 게 어느 순간 군더더기가 되어 버린거예요. 잘 지내세요. 사실 저는 이렇게 편지의 마직막에 으례히 따라붙는 인사말을 끔찍하리만치 싫어한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를 보러 와줄 때까지 안녕히 잘 계시라는 말을 오늘은 왠일인지 하고 싶어서요.
 
 
chaire 2006-04-19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좀 재수없는 얘기를 하자면요. 밥은 그렇게 먹어선 안 돼요. 싱크대 위라니! 고양이조차 그런 식탁은 싫어해요. 제대로 넓은 곳에 안짱다리 상이나마 펴놓고 넓은 접시에 밥과 서너 가지 반찬을 얹어서, 꼭꼭 냠냠 씹어서 먹어야 해요. 봐요. 노동을 떠나니, 노동이 그리워지잖아요. 사는 게 대체로 그런 셈이니, 아직 건강할 때 건강은 지켜야 하는 거예요. 허니, 알코홀릭이 되지 않도록 술도 하루 정도는 쉬어줘야 하구요. 이런, 멀리 떠나가 혼자 사는 사람을 앞에 두니 할머니처럼 잔소리를 하게 되는군요. 하지만 잔소리가 아니라 굵은소리입니다. 정말로, 밥은, 그렇게 먹는 게 아니에요. 밥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춤은 아주 좋은 계획이지만, 스트립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는...(역시 또 잔소리...:) 우짰든 쥴 님이 춤 추면 예쁠 거라는 판단...

노동 현장에서, 저는 실제로는 노동을 하고 있지 못해서 괴로워요. 목표를 몰라 우왕좌왕, 이렇게 사느니 노동을 안 하느니만 못한가 싶다가도 목구녘이 포도청이라 그냥 출근도장 찍고 있어요. 이보다는, 쥴 님의 생활이 훨씬 생산적인 거예요. 분명한 목표를 두고 '쉬고' 있는 것이며, 쉬는 동시에 공부하고 있

chaire 2006-04-19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잖아요. 그래서 부럽답니다. 그 생활을 충분히 하고 나면, 아마 또 충분히 미친 듯 일하게 될 테고, 그러면 참 즐겁겠죠. 그날을 기다립니다. 므흣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