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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센셜리즘 - 본질에 집중하는 힘
그렉 맥커운 지음, 김원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9월
평점 :
20대의 끝자락을 악착같이 붙들고 있던 무렵, 꿈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결국 꿈이 없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았던 나의 20대, 누구보다 꿈이 많으니 서른이 되기 전에 뭐든 하나는 되어 있겠지 하고 내심 생각했지만, 수많은 꿈들이 내 인생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든 결과,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서른을 맞이해야 했다. 그리고 꿈과 세상에 실연당한 기분으로 홧김에 내 꿈들을 내다버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모시고만(?) 있던 꿈들을 과감히 벗어던지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본질적인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며, 잡음을 걸러내고 본질을 찾아내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게 그의 평소 신념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비본질적인 것들을 제거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p16
지금 생각해 보면 벼랑 끝에 몰리자 무의식적으로 나온 이 행동이 에센셜리즘에 가까웠던 듯하다. 나는 비본질적인 것들을 걸러내기 위해 ‘용기’가 아닌 ‘분노’를 발휘했다는 점에서 살짝(?) 어긋났지만 말이다.
분노로 인해 일시적 에센셜리스트가 되었던 나는 비본질적인 꿈들을 덜어내고 진짜 내 꿈을 찾게 되자 다시 비에센셜리스트였던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관심 분야가 폴더 두세 개로는 정리할 수 없을 만큼 다양했기에, 내 욕구를 충족시키다 보면 하루라는 한정된 시간으로는 부족해서 늘 시간에 허덕여야 했고 내일이라는 시간을 자꾸 끌어 쓰게 되었다. 그러자 내 시간의 부채는 늘어갔고, 시간은 나를 마구 독촉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에게 《에센셜리즘》의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서술어는 서평의 분위기에 어울리게끔 수정했습니다.)
때로는 뭔가를 하지 않는 것이 뭔가를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p61
경쟁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에게는 열심히 일을 하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입니다. 그들에게 진짜 어려운 일은 일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p122
에센셜리스트는 내일 더 큰 성취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라면 오늘 한 가지의 일을 더 적게 하는 편을 선택합니다. 이것이 바로 현명한 선택과 포기이지요. -p124
이 말을 들은 나는 저자가 건넨 말 가운데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내 인생은 늘 물 한 모금 마실 틈도 없이 숨 가빴다. 노력과 대가는 정비례라고 멋대로 믿어왔고, 그 기대를 보답 받지 못하면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은 그림으로 치면 여백에 해당하지 않을까. 그림에 있어서 여백을 남기는 행위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만큼이나 중요하다. 화가가 크기가 한정된 캔버스 안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여백을 간과하면 그 그림은 정체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나에게 에센셜리스트가 되려면 모든 것을 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비본질적인 것을 덜어내라고 했지만, 일시적 에센셜리스트였던 나는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방법과 비본질적인 것을 덜어내는 방법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자 저자는 이렇게 답했다.
6장에서 에센셜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언론기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이는 다수의 비본질적인 것들로부터 극소수의 본질적인 것들을 가려내기 위해 질문을 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결론을 유추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에센셜리스트가 되기 위해 우리는 삶의 편집인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우리의 인생에서 비본질적인 것들을 전부 삭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p203
편집인의 임무는 잘라내고 요약하는 것 외에 교정하는 것도 있습니다. 작게는 어법의 오류를 바로잡기도 하고, 좀 더 크게는 저자의 주장 가운데 논리적 오류를 바로잡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교정 작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편집의 대상이 되는 작품의 본질적인 주제, 혹은 궁극적인 목적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일과 삶에서도 우리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그러한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지요. -p209
우리는 오직 현재에만 존재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뿐이지요. 물론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우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 뿐입니다.
비에센셜리스트는 과거의 성공이나 실패, 미래의 도전이나 기회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정작 현재의 순간을 자주 놓칩니다. 과거나 미래의 일 때문에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비에센셜리스트는 온전하게 현재를 살지 못합니다.
반면에 에센셜리스트는 현재에 집중합니다.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에센셜리스트는-과거나 미래가 아닌-현재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합니다. -p285
나는 인생의 편집자로서 어떤 사람일까? 카메라에 많은 장면을 담으려 하고 일단 찍은 필름은 어떻게든 활용하고 싶어 하는 편집자가 아닐까. 그리고 나의 인생이라는 영화를 보는 관객조차 정신없고 숨 가쁘게 만드는 편집자가 아닐까. 그렇다면 내 관객들은 이미 모두 자리를 떴을지도 모른다. 한두 명 정도 아직 자리에 남아 있다면 그들은 아마 졸다가 영화관을 뛰쳐나갈 타이밍을 놓친 것이라 생각한다. 몇 년 전에 본 영화가 그랬다. 작품명을 밝힐 수 없는 그 영화는 미술감독이 만든 영화답게 영상미는 최고였지만, 쉴 틈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현란한 영상에 눈이 피곤할 지경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내 감상평은 ‘감독이 너무 많은 것을 작품에 담으려고 한 게 역력하다’는 것이었다. 실제 영화도 그러하거니와 인생이란 영화에서도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뿐만 아니라 그 영화를 함께 보던 감독인 나조차 욕을 하며 뛰쳐나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에센셜리스트에 대한 정의와 본질적인 소수를 구분해내는 방법과 비본질적인 것을 어떻게 버릴 것인지를 차례대로 말한다. 책을 읽다 떠오른 궁금증을,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저자가 기다렸다는 듯 바로 해소해 줄 만큼 그가 읽는 이의 생각의 흐름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즉, 저자는 궁극의 에센셜리스트다운 면모를 이 책에서 확실히 드러낸 것이다.
사실, 나는 자계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머리로는 십분 이해하지만 행동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이른바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내 현실이 책에 확인사살당하는 듯한 느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에센셜리스트》는 마치 나를 위한 맞춤형 자계서처럼 나조차 이해할 수 없었던 내 행동의 이유를 정확하게 꼬집어주는 듯해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정신없이 밑줄을 그어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책을 덮을 쯤에는 수십 개의 플래그잇이 붙어 있기도 했다(실제로 책을 읽는 동안, 이러다 처음부터 끝까지 밑줄을 긋고 플래그잇을 붙이는 게 아닌가 하고 살짝 걱정했다). 그만큼 인생에 도움이 되는 알찬 문장들로 구성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수많은 문장이 내가 에센셜리스트로서 한 발자국 내딛는데 혼란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 나를 위해 저자는 짧은 문장으로 내 염려를 말끔히 해소해 주었다.
“나는 선택할 수 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모든 것을 다 해낼 수는 없다.” 이 세 가지 단순한 진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정말로 중요한 것들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