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딸들
랜디 수전 마이어스 지음, 홍성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두 자매 룰루와 메리는 가해자의 딸이자 피해자의 딸이다. 하지만 세상은 왜 두 사람을 가해자의 딸이라는 시선으로만 보았을까. 그리고 두 사람은 왜 피해자의 딸이 아닌 가해자의 딸로 인생을 살아야만 했을까. 이 작품의 제목부터가 그녀들이 겪어왔을 마음의 고통을 그대로 담아내는 듯해서 마음이 짠했다.

 

 

차라리 타인이었다면 평생 용서하지 않아도 용납될 일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용서를 강요받을 때가 있다. 가족이기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리는 일이 쉽지 않은 가정폭력. 《살인자의 딸들》에 등장하는 룰루와 메리는 가정폭력의 가장 큰 피해자임에도 온전히 피해자로 살아갈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을 아버지의 손에 어머니를 잃은 가여운 아이들이 아닌 살인자의 딸이라는 시선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열 살을 앞둔 룰루는 아버지를 집으로 들이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을 어기고 아버지에게 문을 열어 준다. 룰루의 악의 없는 그 판단이 그녀를 평생 동안 괴롭히게 될 사건의 시작이었다. 한순간의 분노로 어머니를 찌르고 다섯 살이던 동생 메리마저 죽이려 시도하다 실패한 아버지. 아버지를 말려줄 사람을 부르러 갔던 룰루는 가족들의 피로 난장판이 된 집 안과 맞닥뜨린다. 이 날을 경계로 아버지를 향한 두 사람의 태도는 극명하게 나뉜다. 하지만 상황에 반응하는 방식만 달랐을 뿐, 두 사람이 마음에 품고 있던 슬픔과 두려움은 같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늘 대립하고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서로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서로의 손을 놓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 후, 메리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을 낳아준 부모이기에 버릴 수 없다는 연민으로 아버지가 수감된 교도소를 꾸준히 방문하고, 룰루는 자신이 아버지에게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죄책감과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자신의 인생에 아버지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양 철저히 새로운 인생에 집중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두 사람의 생각의 차이로 인한 갈등은 심해지고, 그 갈등은 아버지의 출소가 결정되자 극으로 치닫게 된다.

 

 

《살인자의 딸들》은 두 자매의 시점에서 번갈아 서술하는 형식을 취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두 자매는 나이를 먹어갔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성장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마저 이 두 사람을 재촉하고 비난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를 용서하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드라마틱한 결말은 바라지도 않았다. 책을 덮을 때까지 이 두 사람이 그 사건에서 정신적으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해도 괜찮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담담하다. 두 사람의 감정이 폭발할 듯하면서도 절대 극으로 치닫지 않는 모습이 여느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었기에, 오히려 내가 사는 현실이 소설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결말 또한 조금은 희망을 주는 듯하면서도 또렷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답 없는 갈등이 계속 되리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확실히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가끔은 아침에 일어나 내가 두 딸의 엄마이자 남편이 있는 아내라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곤 한다. 장롱이나 방 안에 틀어박히려고 하는 고아가 아니라 아늑한 침실에서 잘 정돈된 지하실까지 돌아다닐 수 있는 엄마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집에서 엄마와 아내로 십 년을 넘게 살았지만 아직도 내 세상의 모든 모퉁이까지 성큼성큼 나아갈 방법을 알지 못했다.

덫에 갇혀 있으면서도 나는 메리가 바로 옆집에 산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내게 두 딸이 있다는 현실과 뉴욕 주 교도소에 숨겨진 아빠가 있다는 사실이 때때로 마음속에서 천둥이 치듯 충돌했다. 엄마는 내 어린 시절의 아름답지만 화를 내는 모습으로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나는 엄마와 나의 관계를 내 딸들에게 감추어야 했다. 그리고 더 서글픈 건, 좋은 엄마가 되는 방법을 생각해 보고 모성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 엄마와의 기억이 아무 소용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p283 마흔 무렵의 룰루

 

 

동생 메리의 시선에 언니 룰루는 그 일을 깨끗이 잊고 성공과 행복을 다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룰루는 여전히 그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현실과 과거가 분리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 결과 자신의 두 딸들에게 할아버지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메리와의 충돌은 더해갔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술김에 살해하고 교도소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딸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 현실을 받아들인다.

 

 

루비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오목한 그릇에 담긴 팝콘을 한 움큼 집으며 말했다. “그냥 게임하면 안 될까요?”

언니와 난 거짓말로 인해 생긴 혼란을 풀어내려고 함께 노력했지만, 아이들은 모든 거짓말을 다시 봉합하려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우리가 제안하는 모든 걸 거부했다. 오랫동안 자동차 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외할아버지가 외할머니를 살해한 죄로 교도소에 복역 중이라는 얘기가 해리 포터를 읽는 것보다 흥미로울 리 없었다. -p446 메리

 

 

이 장면에서 나는 제2의 룰루와 메리를 보는 것 같았고, 그 사건은 룰루와 메리의 고통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룰루의 두 어린 딸들은 앞으로 그 일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갈까. 엄마인 룰루가 했던 거짓말을 여전히 고집하며 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갔다고 스스로에게 세뇌시킬 수도 있을 것이며, 이모인 메리처럼 할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핏줄이라는 정에 이끌려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통의 농도는 그 순간에서 멀어져가는 시간만이 희석시켜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의 원인이 나의 가족이라면 고통의 농도가 옅어지는 일은 영원히 없다는 뜻일까. 피해자의 딸이자 가해자의 딸인 그 두 사람의 끝나지 않을 고통이 제목에서부터 느껴져서 나는 이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살인자의 딸들》이라는 제목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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