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알아, 뿌리는 다른 생명의 꽃인지도."


꽃이 뭐 대수라고. 


비 온 뒤 풀 뽑기 좋은 땅이라고


엉겁결에 엉거주춤 제초에 동원된 데 심통이 나서 중얼거린다.


꽃인 게 무슨 벼슬이냐.


색이라는 옷을 벗으면 너희도 별 거 아냐.



<긴 호흡>에서 메리 올리버는 에드나 밀레이의 여동생 노마 밀레이와 살았던 경험을 풀어놓는다. 


"거기서 나는 비서, 조수, 말벗이라는 안전하고 모호한 공적 이름을 갖게 되었다. 나는 언니의 문학적 재산의 집행자로서 맡게 된 임무들과 힘이 영광인 동시에 짐이기도 한 까다롭고 자기중심적인 여자와 함께 살게 된 것이다. 그때 나는 어렸고 시인의 유품들이 남아 있는 그 집에서 산다는 게 몹시도 감격스러웠다."


에드나 밀레이의 시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에드나 밀레이가 누군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에이미와 이저벨>에 등장하는 이름이 아닌가. 















망할 후레자식 로버트슨 선생이 키팅 선생 코스프레를 하며 에이미에게 "넌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었을 때, 순진하고 어린 에이미는 두피가 홧홧해질 정도로 당황해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대머리 족제비 같은 로버트슨 선생은 이렇게 대꾸한다. "나라면 배우라고 말했을 거야. 아니면 시인이나."


"그러자 에이미는 심장이 콩닥거렸다. 침대 밑 구두 상자에 넣어둔 시에 대해 그가 어떻게 알았을까? 몇 년 전에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의 시들을 외운 것을, '가을날 아침이면 오, 세상아, 아무리 너를 바짝 끌어안아도 부족하구나' 라고 읊조리며 희망에 부풀어 학교로 걸어갔다가 '그치지 않는 비처럼 슬픔이 내 가슴을 후려친다' 라는 시구에 실의에 빠져 지친 발을 끌며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던 것을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그걸 아는 게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걸 몰랐던 에이미는 이날 이후로 그만 로버트슨 선생에게 홀딱 빠져버리고 말지. 메리 올리버가 에드나 밀레이의 집에 살면서 느꼈던 감격도 끝까지 지속되지는 않았고 에이미가 로버트슨 선생에게 느꼈던 '특별한 인정의 짜릿함'도 끝이 좋지는 않았다. 끝이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살면서 이건 아니다 싶은 상황에서, 몇 번이나 뿌리칠 수 있었느냐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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