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에 출연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종종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라미 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찍는 일을 한다고 했다. 사진의 진정한 역할은 현시대를 기록해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신념이 인상깊었다. 그래서 그의 책이 나온다고 했을 때 정말 반가웠다. 힐끗 보았는데도 구성이나 내용이 예사롭지 않았다. 매우 공들인 책을 마주한 느낌이었던 때문이었는지 은연중에 조금씩 읽으려고 했으나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350여 페이지로 제법 두껍지만 사진이 많고, 무엇보다 짧은 이야기들의 묶음이라 쉽고 빠르게 읽혔다. 많은 사람들이 참전했던 사람들을 잊고 산다. 나 역시도 그랬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전쟁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사람들의 고통과 절망을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가까스로 살아돌아와도, 7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악몽을 꾸고, 힘들어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보며 슬픔이 올라왔다. (한국의 매서운 추위와 무더운 더위, 굶주림과 공포,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앞에서 볼 수 밖에 없는 동료의 죽음...)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지닌 어마어마한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었다. 자유를 수호했다는 자부심. 자신들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수천명에게 자유를 주고 숭고한 가치를 지켰다는 그 믿음에 사진 속 두 눈이 광채로 빛났다. 유퀴즈에서 다 담지 못했던 여러 이야기가 담겨있었고, 차근히 제대로 그 이야기들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잊혀져가는 그들의 노고에 감사와 존경을 보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