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게 바로 나야! 1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외 엮고지음, 김동광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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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뇌 이야기 : 아놀드 즈보프

옛날에 마음씨 좋은 젊은이가 있었다. 많은 친구들과 풍족한 재산으로 축복받은 그 젊은이는 신경계를 제외한 자신의 온몸이 무서운 병에 걸려서 점차 썩어들어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라운 능력을 가진 친구 과학자들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는 썩어들어 가는 자네의 불쌍한 몸뚱아리에서 뇌를 꺼내 특수한 배양조 안에 건강한 상태로 보존할 걸세. 그리고 신경 흥분의 모든 패턴을 뇌에 보내줄 수 있고, 또한 그에 따라 자네의 신경계 활동이 일으키는 경험, 또는 활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경험, 그런 경험을 모조리 그대로 자네가 체험할 수 있게 해줄 기계에 접속시킬 것이네.”

젊은이는 그 계획에 동의했고, 실행에 옮겨지기를 고대했다. 그가 최초로 그 이야기를 들은 지 불과 한 달이 지난 후, 그의 뇌는 따뜻한 배양조 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어느 날 밤, 술에 취한 수위가 배양조가 있는 방에 들어가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몸을 기울여 오른손을 배양조에 넣어 불쌍한 뇌를 좌우 양반구로 분리시킨 것이다.

다음날 아침, 그 뇌의 과학자 친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곧 뇌를 복구시킬 방법을 생각해 냈다. 한 친구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냅스에 적합한 말단을 가진 전기 화학적인 극소 전선을 만들어서 신경 충격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이러한 전선이면 양반구의 분리로 다른 쪽 반구로의 연결이 끊어진 뉴런에서 오는 충격을 연결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캐산더라는 이름의 신중론자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어떤 특수한 경우에 이런 식으로 근접성이 깨졌을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여러분이 전선을 이용하려 했듯이─뇌는 근접성이 깨지지 않았을 때와 동일한 경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분리된 뇌에서 전뇌적인 신경 패턴이 정확히 재현되었다고 해도, 반대로 그것이 전뇌적인 경험을 일으키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근접이라는 것이 특정한 전뇌적 경험을 낳는 데 없어도 무방한 무엇이 아니라, 전뇌적 경험을 체험하기 위한 어떤 절대적인 조건이나 원리일 가능성은 없을까?”

캐산더의 우려 섞인 발언은 다른 친구들에게 거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였고, 사람들은 전선을 이용한 연결을 계속해서 추진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전선 작업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양반구가 연결되어서 정상적으로 기능할 때, 한쪽 반구에서 다른 쪽으로 신경 충격이 전달되는 데에는 실제로 거의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런데 이런 충격이 전선을 통해 전달되는 데에는 미세하기는 하지만 약간의 시간 증가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 반론에 대해 다른 사람이 전선 대신 빛의 속도로 전달되는 전파 신호를 사용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것은 양반구의 각기 노출된 절단면에 충격 카트리지(impulse cartridge)를 달자는 제안이었다. 이 카트리지는 한 쪽 반구의 뉴런에서 오는 모든 충격 패턴을 다른 쪽 반구의 카트리지로 전달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는 훨씬 더 파격적인 구상까지 내놓았는데, 뇌의 두 반구를 각기 다른 배양조에 넣을 수 있으며, 그렇게 해도 그 뇌는 전체적으로 단일한 전뇌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충격 카트리지 계획도 약간이기는 하지만 시간 증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빛의 속도로 전달되는 전파도 시간 증가가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버트라는 과학자가 충격 카트리지를 발전시킨 제안을 내놓았다. “각각의 카트리지에 무선 송수신기 대신 ‘충격 프로그래머’를 달기만 하면 되는 걸세. 이 장치는 미리 입력시킨 충격 프로그램에 의해 마음대로 작동시킬 수 있네. 그러므로 다른 쪽 카트리지에서 오는 전파를 받을 필요가 없지. 프로그램된 카트리지들은 양반구가 하나로 결합되어 있을 때와 같은 타이밍으로 나머지 신경 패턴의 흥분이 일어나도록 조정할 수 있네. 그렇게 되면 한쪽 뇌를 멀리 떨어진 실험실에 놓아둘 수도 있지.”

캐산더가 또 다시 들고 일어섰다. “이번엔 근접성이라는 조건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인과적 연결이라는 조건을 폐기하려고 하고 있어. 이 조건을 제거함으로써 전뇌적 경험이 실제로 체험되기 위한 절대적인 원리, 나아가 그 본질적인 조건을 폐기시켜 버린 것은 아닐까?”

(후략)

나는 어디에 있는가 : 대니얼 데닛

몇 년 전에 국무부 관리들이 나에게 찾아와 고도의 위험이 따르는 극비 임무에 자원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국무부는 수억 달러를 쏟아 부어 초음속 지하 굴착 장치 STUD를 개발하고 있었다. 국방부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STUD는 엄청난 속도로 지각을 뚫고 나가 특별히 설계된 핵탄두를 지하 약 1.6킬로미터까지 박아 넣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그 핵탄두를 회수해 주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 핵탄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방식으로 방사능을 띠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사에 따르면 그 기계는 대뇌의 특정 조직에 심각한 이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방사능을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사능은 신체의 다른 조직이나 기관에는 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 장치를 회수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은 <뇌를 두고>가기로 결정되었다. 뇌는 안전한 장소에 보관해 놓고, 정교한 무선 연결 방식으로 신체에 대한 정상적인 제어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어떤 정보도 유실되지 않으며 두뇌와 신체의 연결이 남김없이 유지되기 때문에 적출된 뇌와 두개골에 텅 빈 공간을 가진 육체는 수술 전과 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드디어 수술 날이 왔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안내인을 따라 긴 복도를 지나 생명 유지실로 갔다. 그 곳에 모여 있는 지원 팀 사람들 사이에 박수갈채가 터져 나와 나는 그들에게 인사를 했지만, 머리가 너무 가벼운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생명 유지 장치가 있는 곳으로 가서 유리관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 속에는 틀림없이 인간의 뇌 하나가 부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저 뇌인가, 이 육체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후략)

우주의 수수께끼와 그 해결 : 크리스토퍼 체르니악

수수께끼와 관련된 최초의 사례는 MIT에서 오토토미 그룹에 관계하고 있는 연구원 디저드의 사례이다. 디저드는 상업용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의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몇 개의 작은 회사에서 일한 후, 당시에는 1970년대에 이루어진 4색 정리의 증명 방법을 모형화해서 그 정리의 증명에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종사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디저드가 켜져 있는 단말기 앞에 앉아 있는 디저드를 발견했다. 디저드는 질문을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결국 디저드는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게 되었다. 디저드의 뇌파는 깊은 혼수 상태를 보여줄 뿐이었지만, 뇌에 대한 조직학 검사에서는 아무런 손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오토토미 그룹의 소장은 디저드가 담당했던 프로젝트의 향후 방침이 결정되자 디저드 연구실의 한 대학원 여학생에게 그 관리를 맡겼다. 한 달 동안 그 여학생은 그 자료들을 분류해서 전체적인 체계를 잡아 정리하느라 무척 바빴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그 여학생은 디저드의 방에서 컴퓨터 단말기를 향해 앉은 채 얼이 빠진 듯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의사는 이 여학생도 디저드와 마찬가지로 확실한 뇌 손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혼수상태를 나타낸다는 유사점이 있음을 인정했다.

조사결과 병원균의 전염이 원인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잘못된 것으로 결론지어졌으며,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동료 연구원이 프로젝트 관계 파일을 재조사하던 중 또 다시 같은 혼수상태에 빠져들었고, 이 고장의 신문은 <유행성 컴퓨터병>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을 보도했다.

건물 격리로 심각한 손해를 입은 오토토미 그룹은 건물 안 컴퓨터의 정보가 무엇보다도 소중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웠다. 우선 생물 재해 방지복을 착용한 연구자들이 격리 지역에 들어가 반출 금지 조치가 취해진 테이프를 녹화기에 녹음한다. 그리고 전화선을 통해 그 곳에서 오토토미 그룹이 옮긴 새로운 부지까지 정보를 전송한다.

프로그래머들이 이렇게 전송된 테이프의 재생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신참 프로그래머가 낮선 데이터를 발견했고, 문제의 데이터가 필요한지, 혹은 필요치 않아 버릴 것인지 작업 계획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은 그 데이터를 검토했고, 갑자기 감독의 말이 끊겼다. 그 감독의 증상은 이전의 사람과 같았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 병의 발병 원인은 바이러스나 독물과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닐 것이라는 견해에 도달하게 되었다. 범인은 테이프에 저장될 수도 있고, 전화선을 통해 전송할 수도 있고, 화면상에 표시될 수도 있는 추상적인 ‘정보’였다. 이 정보를 접한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가설이 가장 그럴 듯 했다.

이 ‘정보’가 무엇인가라는 핵심 문제는 신중히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보 자체를 검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라는 튜링머신에 대한 일종의 괴델 문장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뒤엉키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이의 증거로 컴퓨터와 전혀 연관되지 않고 또 오토토미 그룹이나 디저드와 만나지도 않은 어느 수학자가 자신이 쓴 논문에 의해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사건이 보고되었다.

(후략)

어느 불행한 이원론자 : 레이먼드 스밀리언

옛날에 한 이원론자가 있었다. 그는 마음과 물질이 독립된 실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견딜 수없이 고통스러운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남은 생에에도 그러한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자살을 포기했다. (1)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누군가가 상처받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2) 그는 자살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두려워했고 (3) 사후의 삶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영원한 벌을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불쌍한 이원론자는 그저 절망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마법의 묘약이 발견되었다! 그 약을 먹으면 그 사람의 영혼이나 마음은 완전히 소멸하지만 신체는 그 이전과 똑같이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약을 먹은 사람의 몸에는 아무런 관찰 가능한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몸은 여전히 영혼을 갖고 있는 것처럼 활동을 계속한다. 가장 친한 친구나 관찰자도 복용 사실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원론자는 매우 기뻐했다. 그는 앞에 언급한 어떤 문제도 없이 자신의 영혼을 소멸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 날 약국에서 약을 사기로 작정하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 이원론자의 불행을 잘 알고 있던 친구가 이원론자가 잠에 빠져든 후, 집에 몰래 숨어들어가 정맥에 먼저 그 약을 주사했다! 그 친구는 이원론자를 비참한 처지에서 구해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튿날 아침, 영혼이 없는 이원론자의 몸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 몸은 약국에 가서 약을 산 후, 집에 와서 약을 마셨다. 그리고 그는 화가 나서 이렇게 외쳤다. “빌어먹을, 이 약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 나는 여전히 영혼을 갖고 있고, 이전과 똑같이 고통당하고 있어!”

아인슈타인의 뇌와 나눈 대화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그리고,
이런, 이게 바로 나야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ㆍ대니얼 데닛

‘괴델ㆍ에셔ㆍ바하’라는 위대한 인지과학 책을 쓴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와 인지과학의 철학적 연구로 유명한 대니얼 데닛이 함께 쓴 책이 <이런, 이게 바로 나야!> 입니다. (한국어판 제목이 좀 구린데, 원서의 제목은 <The Mind's I> 입니다. 이게 훨씬 낫죠?)

위에서 보시듯 유명한 철학자와 과학자와 SF 소설가들의 글을 통해 인지과학이 연구하는 여러 가지 주제들을 생각해 보자는 취지로 쓴 책입니다. 스타니슬레브 렘이나 레이먼드 스밀리언 같은 사람들의 SF소설을 읽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스타니슬레프 렘은 동구의 SF소설인데,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는 책이 하나밖에 없더군요. 씁쓸...그의 소설은 내용을 줄이기 어려운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싣지 않았는데, 저는 지금 이 책 <이런, 이게 바로 나야>를 통해서라도 이 사람의 소설을 접하게 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와 대니얼 데닛은 강인공지능주의자입니다. 강인공지능주의이란 마음을 프로그램으로 보고, 또한 거꾸로 프로그램이 실제로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하는, 환원주의적 관점을 통해 마음을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이제는 전설이 된 앨런 튜링 같은 학자가 바로 강인공지능주의자이고, 강인공지능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으로는 <중국어 방> 이론으로 유명한 존 설과 <황제의 새 마음>이라는 책을 쓴 수리물리학자 로저 펜로즈가 있습니다.

호프스태터의 글인 <아인슈타인의 뇌와 나눈 대화>에서 호프스태터와 데닛이 말해주는 ‘마음’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인슈타인의 뇌를 철저히 조사하여, 개개의 뉴런의 문턱 전류값이나 다른 뉴런과의 연결 등의 수치를 적어서 책을 만듭니다. 책은 적어도 1000억 쪽은 넘어가는 형태로 만들어질 테고,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사고실험이라는 편리한 방법이 있으니까 그걸 쓰도록 합시다.

누구든지 아인슈타인에게 묻고 싶은 게 있으면 질문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 질문은 소리의 형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책을 열심히 뒤적이며 뉴런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우리는 살아있는 아인슈타인이 대답하는 것과 똑같은 답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 아인슈타인은 생각할 수 없을 것만 같이 느리게 생각하는 아인슈타인이지만, 실제의 아인슈타인이 듣고 느끼고 말하기 때문에 이 책이 바로 아인슈타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누구나 생각해 보신 일이 있겠지만, 그 질문에 대답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고, 실제로도 정확한 과학적 정의 같은 것이 내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책이 그 질문에 대신 대답을 해주지는 않지만 어떤 도움을 줄 수는 있겠죠. 일단 이 두 사람의 대답은 아직은 흐리멍텅하지만 방향만큼은 확실히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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