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품격 - 맛의 원리와 개념으로 쓰는 본격 한식 비평
이용재 지음 / 반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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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도 이정도면 떠오르는 와중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물론 날생선에 거부감을 보이는 서양인들의 인식 제고를 위해 고급 마케팅을 펼쳤다는 에피소드가 있는 일식, 애초에 넘사벽이었던 중식, 그리고 최근 ‘샵(#)맛스타그램’의 성지로 각광받게 되었지만 나름 유구한 식민지 시절 유럽과의 관계가 있었던 동남아시아 요리 등의 다른 아시안 퀴진에 비하면 한참 늦었고, 또 불과 몇 년 전 국가 주도의 ‘두 유 노우 김치/비빔밥/불고기’ 마케팅의 민망한 흑역사를 생각하면 치가 떨리긴 하지만 말이다. 국가가 밀었고 사람들이 당연히 '한식이라면 이래야지’라고 생각하는 김치, 비빔밥, 불고기 보다는 오히려 한식이라고 봐줄 건덕지가 있는지조차 애매한 양념치킨, 만득이핫도그, (토핑 잔뜩 올린) 피자 등이 오히려 외국인들에게 인기 있어서 잘 나가는 시대다. 매우 어리둥절하고, 김치를 손수 무쳐다 고무장갑 낀 손으로 들어서 입에 쑤셔 넣어 주면서 츄라이 츄라이 하고 싶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지는 않는 법이다. 어쨌든 우리가 맛있게 먹는 양념치킨이 외국인들에게 흥미로우면서도 코리안 특유의 독특한 문화로 받아들여진다면 기꺼히 코리아를 알릴 자랑스러운 문화로 그것들을 홍보할 준비는 되었다. K-pop를 보고 싶어 입국한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한정식집의 비빔밥 보다는 한강에서 치맥을 배달시켜 주는 게 오히려 좋은 경험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아니, 마음 같아선 만득이 핫도그는 음식물쓰레기 봉지에 처박고, 심지어 김치, 비빔밥, 불고기 처럼 어중간하게 전통적이고 어중간하게 인기 있는 음식도 다 뒤로 숨긴 채, 외국인들에게 ‘진정한 한국의 맛’을 보여주고 싶은 것 아닌가? 홍어, 청국장찌개 같은 것 말이다. 이런 음식 부류를 잘 먹는 사람은 이것들을 ‘맛있다’, ‘맛없다’를 떠나 ‘매니악’ 하다고 칭하고, 행여라도 외국인이 이런 ‘매니악’한 음식을 좋아한다고 인터뷰 기사라도 나면 ‘한국사람 다 됐네’ 하며 칭찬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댓글이 달린다.

그러니까, 음식에 우열이란 없고, 취향과 문화 상대주의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일단 잘 팔리는 것이라면 어쨌든 그 문화에 있어서 가장 맛있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김치, 각종 찌개, 부침개 등이야 말로 문화 상대주의적으로 최고의 완성도를 지닌 음식이고, 홍어삼합, 청국장 등도 ‘문화 상대주의적으로’ 보자면 소수의 ‘매니아’들이 열광하기 때문에 역시 최고의 음식이라는 말이다.

문화 상대주의를 열심히 설파하는 와중에 이상하게도 전체 음식 카테고리에 대해 논하자면 문화 우월주의적인 관점도 툭 튀어나오는 게 신기하다. 한식이 영양학적으로 균형잡혀 있고, 또 채식 위주이기 때문에 건강식이라는 이야기 말이다. (어떤 문화의 퀴진에 비해 건강식이란 말인가?) 김치가 마늘과 고추가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전염병 예방에 특효라는 이야기에서 그 부끄러움은 절정에 달한다. 이어서, 왜 한식은 일식, 중식, 동남아식만큼 서양인(그렇다, 꼭 서양인이어야 한다)들에게 인기가 없을까에 대한 변명 같은 해답은 꼭 달린다. 그 이유로는 발효식이라 ‘건강식’이지만, 또 발효식품의 그 ‘매니악한’ 향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총체적인 논리없음에 칼을 들이댄 사람이 바로 ‘음식평론가’ 이용재다. 우리가 막연히 문화 상대주의라는 잣대에 의해 넘어갔던, 심지어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한식의 거의 모든 요소들이 저자의 논리에 의해 철저히 박살난다. 100도 가까이 되는 온도의 국물을 들이키며 ‘시원하다’고 감탄사를 내뱉는 것은 맛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뜨거움으로 인해 감각이 마비되었을 뿐이다. (매운맛 또한 마찬가지다.) 한식이 발효식품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발효식품이 없는 문화는 거의 없다. 한식의 ‘쫄깃함’에 대한 추구는 비상식적이며, 특히 활어회의 쫄깃함은 숙성회의 맛있음을 배척하기 때문에 더 해롭다. 한정식 같은 공간전개형 상차림은 요리라고 보기 힘든 ‘잉여’ 반찬을 생산하기 때문에 좋지 않다. 등등. 전반적으로 한식의 문제점이란 ‘과학’ 또는 ‘실증’의 영역을 무시하고 ‘전통’이란 이름의 관습(또는 구태)에 너무 얽매여 있다는 것이다. 전통이라 해서 김치라는 만능 반찬에 얽매이니, 김치찌개가 메인인 상에 김치가 추가로 나온다.

실증이라는 기준 없이 전통이냐 구태냐 시달리다 보니,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극단으로 치닫는다. 한식이 짜다는 논쟁 때문에 소금을 아예 넣지 않는 식이다. 화학조미료의 근거 없는 불신으로 아예 0의 감칠맛이 되어 버린 고기국물의 맛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적절히만’ 넣으면 된다. 건강에 해롭지도 않고,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나는 사실 저자만큼 진보적인 사람이 아니다. 나는 김치나 국물 없이 밥도 잘 먹는 것으로 보아, 아니 거의 배척하다시피 식단을 짜는 것으로 보아 식생활 자체는 이미 전통의 한국식 식문화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문화의 상대주의적인 기준 또한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즉,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면 그것이 기준’이라는 특별한 언명 말이다. 언어학에 이런 이슈가 있다. 우리가 규정문법에 따라 ‘외않되?’라는 말이 틀린 문법이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인구의 과반수 이상이 그렇게 말을 하면 그것이 맞는 것이 된다. 언어학에서, 문법은 지극히 상대적이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문법 이야기가 아니다. 엄연히 대학원 이상의 언어학 얘기다)

그러므로 언어학자는 문법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도록 언중을 ‘계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언중의 문법을 ‘관찰하고’ 그것의 숨은 법칙을 ‘찾아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맞다. 언어학 뿐만 아니다. 한국인 오천만이 100도 가까이 펄펄 끓는 찌개를 좋아하고 디저트 없이 달디단 메인을 즐긴다면, 그 안에 내재한 법칙이 있는지 한 번쯤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음식문화가 언어문법처럼 상대적일 것인가, 혹은 저자의 말처럼 과학과 실증으로 증명된 맛의 원리가 어느 정도는 존재하는가 — 펄펄 끓는 국밥이 만인이 좋아한다면 그것을 좋은 문화로 인정할 수 있는가, 혹은 과학적인 맛의 원리에 따라 배격해야 하는가 — 는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될 것이다. (저자만의 과제라 하기엔 너무 가혹하고,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문화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구름에서 끌어내려, 정말로 실증의 영역에서 증명하는 것이다. 식당을 개업해 매출을 통해 그 가설을 증명하고 문화를 이끌어 나간다. 그 맛이 의미있고 대중이 인정해 준다면, 나는 반 정도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현 상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책을 진정으로 인정하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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