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11
제인 제이콥스 지음, 유강은 옮김 / 그린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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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산다’는 문제에 직면할 때 ‘언제’나 ‘어떻게’ 등등 보다 ‘어디’를 매우 중요시한다는 것은 사는 문제에 있어서 장소가 다른 무엇보다도 매우 문제가 된다는 점을 나타낸다. 우리는 남의 삶에 관심을 가질 때 ‘언제’, ‘어떻게’ 아니면 ‘왜’보다는 ‘어디서 사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며, (사실 ‘어떻게 사니?’ 혹은 ‘왜 사니’ 같은 질문은 매우 흥미롭고 철학적인 질문이 될 수는 있겠지만, 처음 만난 사람한테 던질 만한 질문은 아닌 것 같다) 어떤 나라의 어느 지역인지, 시골인지 도시인지, 주택인지 혹은 아파트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 자가인지에 대한 수많은 답변 목록들이 우리가 ‘어디서’ 사는 지의 질문에대한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삶의 방식들을 나타내 준다.


삶의 ‘위치’는 우리 삶의 방식을 크게 결정지어 준다. 때문에 우리는 삶의 위치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안할 래야 안할 수가 없으며, 20세기 이후로 이제 도시인이 시골 사람보다도 더 많아졌으므로 특히 ‘도시에서의 삶’이야말로 현대인의 삶의 방식에 대한 대표성을 띠게 되었다. ‘원래 호모 사피엔스는 구석기에 시골에 살았으니 시골의 삶이야말로 어쩌구 저쩌구’라는 식의 진화심리학적 접근이라든지, ‘고상한 야만인이 어쩌구 저쩌구’와 같은 나이브한 생각은 이젠 아무 의미도 없다. 우리는 도시에서의 삶이 시골에서의 삶보다 더 낫느냐 아니냐 하는 비교보단 도시에서의 삶 자체를 사랑하도록 만들기 위한 방식, 즉 과거보다 더 나은 현재를 만들어 가야 하며, 이 책의 출발점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실 인간이 도시 안에서 행복한지 안한지를 결정짓는 데 도시계획이 결정적인지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날씨가 인간의 행복에 결정적일 수도 있다. 유전자가 결정적일 수도 있으며(이건 뭐 내가 봐도 말이 안 되지만, 어쨌든 가능성의 하나로 열어둘 수는 있다), 도시계획보단 또 다른 사회 시스템인 공공교육이 결정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를 포함해 많은 도시학 전문가들이 도시가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고 범죄율을 줄일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지만, 어쩌면 도시계획에 대한 지분은 통계적으로 10%정도 혹은 5%정도로, 아예 영향이 없지는 않지만 미미한 정도라 그 효과를 도시전문가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여 과대평가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실험실에서 조건을 통제하여 실험해 보기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검증하기에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그래서 이 책을 포함하여 많은 도시 전문가의 어조는 과학적, 회의적이라기보단 인문학적인 냄새를 띤다. 저자도 21장에서 도시의 과학적 분석법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내가 볼 땐 과학에 대해 조금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저자는 누군가의 말을 인용해 과학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두-변수 문제(통계역학 전의 물리학), 두 번째는 비유기적인 복잡성 문제(통계역학), 세 번째는 유기적인 복잡성 문제(생명과학과 도시 문제)인데, 내가 볼 때는 두 번째와 세 번째 과학의 차이점은 없으며(유기성을 비유기성으로 환원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다. 내가 볼 때는…), 어쨌든 인간이 복잡하다고 느끼는 문제들은 그냥 인간이 아직 이해를 못했기 때문에 복잡한 것일 뿐이다.


어쨌든 이 책은 초판이 1961년에 쓰여진, 50년도 더 된 책이기 때문에 과학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과학의 관점이 빠지게 되면 누구나 자기 생각대로 이러쿵 저러쿵 말을 놓아도 되는 사이비 전문가(소위 ‘좆문가’)들의 세계가 펼쳐질 위험이 있으며, 이에 대해 일단은 진짜 전문가들의 말 먼저 경청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공원을 좋아하기 때문에 도시에 공원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공원을 많이 짓는 것이 도시계획의 올바른 길이라고 말하지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이런 것들의 목록은 끝이 없다. 공원보다는 거리, 대규모 실내 쇼핑몰보다는 야외 상업거리, 큰 블록(이른바 슈퍼블록)보다는 작고 복잡한 블록들, 새 건물들을 왕창 짓는 대규모 재개발 보다는 다양한 연령의 건물이 다양하게 모여 있는 보존 중심의 도시계획, 넓은 도로보다는 좁은 도로, 격자형 보다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우리는 도시가 우리의 생각대로 만들어졌으면 좋겠지만, 사실상 우리가 도시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얘기하는 도시 계획 목록들은 그냥 개인적인 욕망의 목록일 뿐이다. 실질적으로 도시는 한명 한명의 욕망대로 움직이면 다 되는 심플한 무언가가 아니라 도시의 인구수만큼의 욕망을 챙겨야 하는 엄청나게 복잡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우리의 도시에서의 삶이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무언가를 양보하고 좀 불편한 점을 참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다시 한 번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리스트를 점검해 보자.


공원보다는 거리: 공원은 도시를 텅 비게 만들고 범죄율을 증가시킨다. 건물들 사이의 넓고 탁 트인 공원은 그 유명한 ‘르 코르뷔지에’의 사상이었으나, 미국 도시의 사례를 보건대 넓은 공원은 도시의 황량함을 가중시키고 범죄가 일어나는 장소만 제공해줄 뿐이다. 상업 거리는 상점의 주인이 가게의 앞을 항상 감시하고 쇼핑객이 북적이기 때문에 도시의 활기를 더해 준다.


대규모 실내 쇼핑몰보다는 야외 상업거리: 실내에 처박힌 쇼핑객은 도시를 텅 비게 만들고 진짜 도시의 활기를 감소시킨다. (역시, 텅 빈 도시는 범죄율이 늘어난다) 


큰 블록(이른바 슈퍼블록)보다는 작고 복잡한 블록들: 큰 블록에 접한 거리는 목적지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무도 다니기 싫은 거리만을 만들 뿐이다. 도시는 거리가 다양하고 활기차야 행복하다. 


새 건물들을 왕창 짓는 대규모 재개발 보다는 다양한 연령의 건물이 다양하게 모여 있는 보존 중심의 도시계획: 오래된 건물의 단점은 오래되었다는 점 하나밖에 없다. 오래된 건물은 임대료가 싸기 때문에 싼 식료품점도 입점할 수 있고 도시의 다양성을 증가시켜 삶을 풍요롭게 한다. 콜라 한 캔을 마시고 싶은데 대형 쇼핑몰에 갈 수는 없다.


넓은 도로보다는 좁은 도로: 넓은 도로는 포지티브 피드백을 발생시켜 차를 더욱 더 증가시킨다. 좁은 도로는 자가용 운전자가 운전을 포기하게 만들어 거리의 활기를 증가시킨다. (재미있게도, 이에 대해선 '브라에스의 역설'이라는 과학적 연구가 있는 것 같다.)


격자형 보다는 구불구불한 골목길: 격자형의 시각적 지루함은 역시 걷는 사람의 지루함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좋지 않다.


제목대로 이 많은 주장들이 미국 대도시에만 적용되는 지역적인 법칙일 수는 있다.실제로 슈퍼블록과 대규모 아파트 재개발이 판치는 대한민국에서 이 때문에 범죄율이 치솟았다는 증거가 없으니 말이다. 아까 언급한 것처럼 도시계획이 범죄율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해서일 수도 있으며, 저자의 이론이 아예 틀렸을 수도 있다.다만 50년도 더 된 이 책이 개개인의 욕망이 심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대한민국의 도시개발계획에 조금이라도 더 '진짜 행복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도시에서의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들 던지는 데에 대한민국의 시민들에게 약간이라도 기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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