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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마음 -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4월
평점 :
예전에 크리스 무니의 "똑똑한 바보들"을 읽고 어안이 벙벙해진 적이 있다. 그 책은 말하자면 '보수주의자의 심리학'이라는 주제로 표현될 수 있는데, 보수주의자들은 각종 뇌과학, 심리학적 증거에 따라 이러이러한 바보짓들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어이없었던 것은 보수주의자가 심리학적이 이유로 바보짓을 한다면 진보주의자도 심리학적 이유로 인해 다를 바가 없을 텐데 (심리학은 인간을 연구하는 거지 보수주의자를 연구하는 게 아니다) 그러한 얘기는 전혀 없이 마치 진보주의자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는 점이며, 두 번째로 어이없었던 점은 많은 진보주의자가 이 책을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증거로 활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나 인간이다. 이말인즉슨,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차이는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에 비하면 아주 보잘것 없으며, 결국 어떻게 되든지간에 모든 인간은 코끼리의 등에 탄 기수로서 코끼리가 가자는 대로 바보짓을 일삼는 동물일 뿐이다. (코끼리와 기수의 비유는 '바른 마음' 1장의 비유이다) 정치를 과학적 방법론으로 연구하기 위해서 첫째로 중요한 점은 실험자가 편향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점인데, 크리스 무니는 이 대원칙을 위배했다. 이런 책이 진보주의자의 희망의 책으로 읽히고 있다니 같은 진보주의자로서 안타까울 뿐이다.
'바른 마음'은 오히려 역편향의 위험을 생각해 봐야할 지도 모른다. 조너선 하이트와 그의 이 책 '바른 마음'에 따르면, 인간에게 RGB 세 종류의 광수용체가 있는 것처럼 (하이트는 미각수용체 비유를 들었지만 여러 가지의 비유를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정치에도 여섯 가지의 도덕 수용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여섯 개의 수용체는 진화심리학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으며 그 중 몇 가지의 수용체는 호르몬 체계와도 관련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 중 세 개는 진보주의자들에게 매우 예민한 수용체이지만(피해에 대한 배려심, 압제에 대한 자유, 부정에 대한 공평성), 나머지 세개는 잘 느끼지 못한다(배신을 멀리하는 충성심, 전복을 억제하는 권위, 오염을 멀리하는 신성성). 진보주의자는 마치 색맹과도 같다. 그에 비해 보수주의자는 여섯 개의 수용체 모두에 대한 풍부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이 이론은 당대의 정치사회적 현상인, 가난한 사람이나 덜 배운 사람이 보수정당을 지지해 주는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다양성이 풍부한 사회나 계몽된 사회에서는 이상하게도 세 가지 수용체(충성심, 권위, 고귀함)를 마비시켜 버리는 것이다. 확실히 세 단어는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좀 꺼려지는 느낌이긴 하다. 다만 배움 이전의 소규모 사회에서 살았을 홍적세의 인간 마음에 있는 코끼리가 지시하는 바 여섯 가지 수용체의 감각은 전부 동등하고 소중한 것이라, 보수주의자들은 이 여섯 수용체를 전부 끌어안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서양 철학의 이성중심주의, 계몽주의가 오히려 본능적 감각을 교란시켰고 그 교란된 결과가 진보주의자들이란 건데, 솔직히 솔직히 말해서 나는 좀 반대다. 책 뒤쪽에 하이트가 밝혔듯이, 진보주의의 발달은 성격 5축 가운데 두 가지인('성격 5축'은 성격을 만드는, 또 다른 다섯 가지 수용체이다) 개방성 높음과 신경성 낮음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 개방성과 신경성 축은 인간 이성의 탄생을 알린 계몽주의 사조와는 전혀 관련 없는, 수억년 동물 진화 역사의 결과다. 하이트는 이 모순적인 결론을 어떻게든 정리할 필요가 있다.
여섯 가지 도덕 수용체 이론도 아름답지만은 않다. 성격 5축 이론을 앞서 언급했는데, 이 이론은 매우 아름다운 이론이다. 왜냐하면 다섯 개의 축은 서로 직교하여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즉 극단적인 성격만 쳐도 2^5=32가지의 성격이 나올 수 있다. 도덕 수용체는 세 수용체끼리 짝을 이뤄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말하자면 그 뒤쪽에 숨어 있는 두 개의 근본적인 직교하는 축이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그 두 개의 축도 부적 상관관계를 가지므로, 사람은 결국 하나의 도덕 축만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보수주의자가 모든 수용체를 중요시한다는 것도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프에서 보면, 보수적일 수록 (미세하지만) 배려심과 공평성이 낮아졌다. 즉. 진보주의자보다는 배려심과 공평성을 덜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보주의자에 대한 '역편향'의 가능성이다) 그러나 하이트는 이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스케일 보정이나 normalization을 다시 해야할 지도 모른다.
한 가지 비판이 더 있는데, 나는 진화심리학을 통해 그룹 진화론과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에 대한 비판을 꽤 많이 접해보았다. 말하자면 그룹 진화론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유전자-문화 공진화론도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하이트는 이 이론들이 맞음을 밝힌 과학자가 아니다. 단지 이 이론을 토대로 자신의 도덕심리학 이론을 전개했을 뿐이다. 하이트는 이 두 가지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해가고 있는 바, 이 두 개의 기둥이 빠져버린다면 하이트의 도덕심리학 (특히 충성심, 권위, 고귀함에 대한 수용체)는 위험에 처할 것이다.
비판을 건너뛰고 책의 감상을 얘기해 보자면, 역편향의 위험성은 있지만 여튼 중립적인 견지에서 정치를 도덕심리학적으로 매우 정교하게 (이론-실험으로 더블체크하면서) 이론화하였고, 그에 따라 우리의 사회가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 데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다는 점("진보주의자들은 돌아보지 못한 세 가지 수용체에 대해서도 좀 생각해 봅시다" 같은)은 매우 인상적이었다.물론 대한민국의 정치에도 적용할 여지가 많을 것이다. 진보주의 정당 사무실에 '자본론' 따위의 구시대적 유물이 아닌, '똑똑한 바보들'과 같은 개쓰레기 책은 더더욱 아닌, '바른 마음'이 꽂혀 있는 미래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