힉스 입자 그리고 그 너머
리언 레더먼 외 지음, 곽영직 옮김 / Gbrain(지브레인)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이야기 중엔 대단히 신빙성 있는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특히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혼잣말 했다는 일화는 과연 누가 들은 것일까? 혼잣말은 혼자 해야 정상이지 누구한테 들으라고 하는 소린 아니었을텐데. 피사의 사탑에서 무게가 다른 두 공을 갈릴레이가 직접 떨어뜨려 실험을 했다는것도 뻥이고 말이야. 다만 이 '피사의 사탑 일화'에는 (일화 자체가 사실이든 아니든간에) 이 시대의 물리학이 대중들의 지식에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는 듯 하다. 마치 이런 것이다. 구름처럼 몰려든 대중들이 지상에서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사탑의 꼭대기에 갈릴레이가 나타나서 두 개의 공을 떨어뜨릴 준비를 한다. 이윽고 갈릴레이는 손에서 공을 (동시에) 놓고, 몇 초 후에 두 공은 동시에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당연히 다른 시간에 떨어질 줄 알았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갈릴레이를 쳐다보고, 갈릴레이는 사탑 꼭대기에서 '내가 그리 얘기했잖지 않았습니까?' 하는 의미의 미소를 지어보인다......

뉴턴의 시절에, 뉴턴은 자신의 과학적 성과를 'Principia'라는 제목의 책으로 냈는데, 내용이 어려울 뿐더러 라틴어로 쓰여져서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뉴턴을 길에서 보자 이렇데 소리쳤다고 한다. "
저기 저 자신을 포함해 누구도 이해 못할 책을 쓴 녀석이 간다!"(번역체 말투다...) 사실상 뉴턴의 3법칙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내용은 아니다. 다만 뉴턴의 이론은 이제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 포함되어 (이상적으로는) 고등학교 졸업만 하면 누구든지 알고 있는 이론이 되었으므로, 이제 대중은 비가 묻어 있는 우산을 돌려 빗방울이 바깥으로 떨어지면 돌아가는 방향으로 튀어나가는지 돌아가는 반대 방향으로 튀어나가는지를 맞추는 퀴즈에서 잘못된 답을 내도, 자신이 솔직하게 뉴턴물리학을 공부하기 싫어해서 성적이 안좋았었다고 고백할 정도는 된다.

어쨌거나 인간은 Naive Physics에 대한 감각을 이용하여 직관적으로 그렇다 아니다 얘기할 정도의 실력은 있다. 이 Naive Physics는 말하자면 생물체가 감각을 가지게 된 후로 몇억 년 진화의 길에서 습득한 지식의 총체라서, '갈릴레오의 두 물체'나 '우산 빗방울 문제' 처럼 특수한 사례들은 잘 맞추진 못하지만 예를 를면 물체 둘이 부딪치면 서로 통과할 수 없다거나 물체가 떨어지는 현상을 예측한다거나 (컵이 떨어지겠어!) 하는 건 꽤 잘 맞춘다.

다음은 뉴턴 이후의 이야기이다. 맥스웰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기장' 얘기는 사실상 예고편이고, 이후에 아인슈타인의 '빛의 속도로 달리면'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두 시계가 다르게 흘러간다거나, 두 사건을 두 사람이 각각 다른 동시성을 가지고 관측한다는 얘기들은 Naive physics가 예측하는 '맞다/틀리다'를 떠나 그냥 이해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양자역학은? 이쪽은 과학자 세계에서도 '이 이론은 우리가 이해하기를 포기함 ㅇㅇ. 그냥 계산을 통한 예측이 잘 맞아서 쓰는 거임' 이런 얘기가 나올 정도니 말 다하지 않았나? 대중이 생각하는 '고양이 중첩'과 실제 이론적 예측인 '고양이 중첩'은 거의 다른 의미임이 틀림없다. 대중의 상상은 그냥 이해를 못한 채로 글만 읽는 수준일 테니까.

몇년 전, 힉스가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포탈이나 신문에 오르내릴 때, 이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대중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아니, 과연 이 뉴스가 기사화될 만한 가치는 있는 것이었을까? 물리학은 이제 대중과 너무나도 멀리 유리되어서, 사실상 가치있는 대중인문학의 범위에 몇억 광년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다. 갈릴레이의 '지구는 돈다'는 교회가 지배하는 사상과 사회를 쳐부수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힉스 입자의 발견이 현대 사회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가는 정말로 의문이다. 당대의 대중인문학에서 과학이 해야 할 역할은 생물학과 심리학이 가져가 버린 듯하다.

물론 나는 물리학의 이런 위대하고 아름다운 발견을 대중들도 마땅히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질의 근본에 대한 물음(물질을 계속해서 쪼개면 어떻게 될까?)은 데모크리토스 이후로 서양에서 몇천 년이나 지속되어 왔던, 너무나도 궁금증을 돋게 하는 의문이다. 우리는 돌턴에서부터 시작하며, 몇 단계나 물질의 근본에 대한 새로운 이론(원자→원자핵/전자→양성자/중성자 →쿼크) 을 받아들였고, 그 때마다 환호를 질렀다. 그 머나먼 여정의 모델이이 이제야 완성되었는데, 그 최종 이론은 숨막힐 만한 대칭성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이제야말로 마지막이란 느낌이 든다. 너무나도 신비로워 죽을 지경이었다. 이 아름다움에 대한 지식은 마땅히 공유되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 어려운 물리학 이론이 이 기쁨을 나눌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 수학에 능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양자역학 스터디를 열어 보는 것은 어떨까? 나중에 몇십 년이 흐르면, 힉스 이론이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 포함될 수 있을까? 힉스 입자가 대중에게 충분히 이해되고 나면,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변하고 결국 포퍼의 열린 사회에 한걸음 다가가게 될까? 힉스 입자가 지구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를 우주로 보내서 새로운 땅을 개척할 수 있게 해 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책은 힉스 입자가 발견된 이후, 리사 랜들의 '이것이 힉스다' 이후 힉스 이론에 대해 쓰여진 두 번째 책이다. 리사 랜들의 책보다 이 책이 (비교적) 더 이해하기 쉬운 느낌이었지만, 사실 내가 양자역학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소리를 하는 지도 모른다. 책의 내용엔 LHC라는 입자가속기의 역사나 실적, 당면 과제 등의 얘기들이 좀 있어서 산만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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