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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ㅣ 사이언스 클래식 24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8월
평점 :
길게 쓰기로 소문난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다섯 번째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번역되어 나왔다. 이 사람을 아는 사람들은 책을 보자마자 "어휴 이자식 또 이지랄이네"라고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쉴 정도로 두꺼운데, 이 사람 책 중에서는 아마 끝판왕 <<빈 서판>>보다 더 두꺼울 정도로 사상 최대를 자랑할 것이다. 집이나 도서관에서 읽지 않고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들고 다니느라 전완근에 크나큰 고통을 안겨줄 것이며, 아울러 핑크핑크한 겉표지와 두께의 언밸런스함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바, 최대한 빨리 읽어버리는 게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이로울 수 있다.
책의 내용을 결론적으로 요약하자면, '인류는 전체 폭력과 고통의 양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사회를 발전시켰고, 결국엔 사회는 더욱 더 평화로와젔다'이다. 이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으로 온갖 반론이 떠돌아 입이 근질근질해 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푸른 별의 온갖 산유국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테러와 함께, 선진국마저 무사할 수 없는 아동성폭행과 살인, 점점 증가하는 것만 같은 한국 사회 내의 싸이코패스와 정신병자들, 게다가 종말의 날이 가까이 오는 것과 같은 동성애자들과 변태 성행위자들까지...심지어 우리의 아이가 게임과 만화로 인해 점점 물들어가 이 사회는 더 이상 사람이 살 만한 사회가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와중에, 나름 유명하다고 이름난 심리학자가 '아름다운 세상' 운운하고 있으니, 심리학(과학)은 역시 쓰레기인가? 아니면 헛똑똑이의 '세상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병'으로 인해 잘못 쓰여진 1400페이지짜기 불쏘시개?사실 이런 문제는 심리학이 전문이다. 실제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거의 모든 것은 '편향'되었으며, 우리는 그 편향에 의해 실제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가까운 주위의 몇 가지 케이스만 가지고 결론을 내리고, 또한 과거보다는 현재의 삶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신석기 전쟁도, 고대 전쟁도, 중세 전쟁도, 양차 세계대전도 겪어 보지 않고 단지 멀리서 들려오는 중동의 전쟁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신문방송)만 가지고 현재의 세계에 대해 끔찍한 이야기만 한다. 이 편향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는 절대적으로 수치와 통계에 입각한 연구를 해야 하는데, 이 결론이 우리의 직관과 반할지라도 우리는 다른 통계를 가져오지 않는 한은 그 결론을 어쨌든 믿을 수밖에 없다.자, 결론에 따르자면 역사는 이런 것이다. - 구석기 시대에, 사람들은 맨날 싸웠다. 그들은 엄청 많이 죽었다. 2차 세계 대전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물론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인구가 엄청 적었으므로 조금만 전쟁에서 죽여도 금새 인구의 절반을 죽일 수 있다. 이차 세계대전의 사상자는 인구 비율의 5%도 안된다. 내가 절반의 확률로 죽을 수 있는 것과, 비록 천만 명의 사망자 소식이 들려 와도 내가 5%의 확률로 죽을 수 있는 것 중 무엇이 더 끔찍한 사회일까?) 가히 홉스의 예측대로였다. 보다 못한 사람들이 국가를 만들어 중재를 했다. (스티븐 핑커는, 이 과정을 '평화화 과정'이라 불렀다. 이 책의 챕터 제목이기도 하다.) - 중세 시대에, 사람들은 맨날 다른 사람들을 종교의 이름으로 태워 죽였다. 그리고, 그것들을 유흥의 일부로 구경했다. 이것을 보다 못한 사람들이 강력한 중앙 집권화 왕국으로 리바이어던을 좀 더 강화했다. (문명화 과정) - 근대 시대에, 사람들은 왕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였다. 철학자들은 이성의 이름으로 이것들이 아무 소용없는 짓이라 밝히고 사람들을 계몽의 길로 이끌었다. (인도주의 혁명) - 양차 세계대전의 시대에, 사람들은 끔찍할 정도로 많이 전쟁하고 또 심지어 민간인들을 학살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 그 정도의 큰 전쟁은 이상하게도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것은 민주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된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긴 평화) - 20세기와 21세기에도, 사람들은 테러와 지역적 전쟁을 계속해서 일삼았지만, 어쩐지 그것들은 감소 추세다. 믿을 수 없는가? 통계를 보라! (새로운 평화)역사는 여기까지이다. 시간순 배열인 것도 있지만, 어느 혁명들은 좀 더 서서히 일어나는 것도 있고, 다른 혁명과 같이 섞여서 뒤죽박죽인 것도 있다. 핑커는 마지막으로 한 챕터를 할애해 미시적 변화도 소개한다. 그것은 권리 혁명으로, 근대 이후에 사람들의 여성권, 아동권, 성소수자의 권리, 동물의 권리 등에 대한 의식이 계속해서 증가했다는 것이다. 결국은 인류는 진보한다. 우리는 매일매일 정부가 어쩌고 범죄율이 어쩌고 역사가 퇴보한다느니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느니 불평을 일삼지만, 우리는 과거의 삶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상상하지도 못할 것이다. 물론 이 결론이 현재 사회에 대한 완전한 만족으로 끝맺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항상 진보와 발전의 상태에 있어야 한다. 과거에 비교해 왜 퇴보하고 있느냐고 따지지 말고 (왜냐하면, 사실이 아니니까) 미래에 더 좋은 삶을 위해 왜 노력하지 않는가를 가지고 꾸짖어야 한다.우리나라에 적용해 볼까? 우리는 일제와 한국전쟁의 커다란 폭력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 (이것은 핑커가 말한 세계사의 일부이기도 했다) 하나씩 민주화와 경제적 번영을 달성해 나가는 중이다. 현재 우리의 정치 상황과 인권 상황은 (진보주의와 야당 지지자들에겐 미안하게도) 매우매우 좋아졌으며, 이걸 가지고 나빠졌다고 불평하는 것은 결국 집권층이나 보수층에 씨알도 안 먹히는 일인 셈이다. (왜냐하면, 사실이 아니니까) 심지어, "이건 나라도 아니다"라고 불평하는 것은 정말 이상한 불평인데, "원래" 나라란 것은 시민들을 학대하고 자원을 갈취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불평점은 '왜 진보하지 않느냐'가 되어야 하지 '왜 후퇴하느냐'가 되어선 안 된다. 북한이나 특수한 국지적 문제에 봉착한 실패국가가 아닌 이상, 역사는 후퇴하지 않는다. 다만 빨리 진보하느냐, 천천히 진보하느냐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