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잡식동물의 딜레마

칭찬부터 하자면, 이 책 졸라꿀잼임. 글도 맛깔나게 잘 쓰고 이 사람이 떠나는 모험 이야기 잼나서 소설책 읽는 줄 알았음. 읽으면서 하 필력보소 이렇게 감탄사가 절로 나옴. 왜케 잼있나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필력도 필력이지만 책상머리에 앉아 있지 않고 진짜로 레알 모험을 떠나서 아닐까 함. 이 양반이 하는 일이 기사나 칼럼 같은 거 쓰는 본격 저널리스트인 모양인데, 아무래도 뭔가 글 쓰기 이전에 일단 하고 보자 하는 행동가이기도 한 모양인가봄. 여튼 오늘의 교훈은 책 고만 읽고 밖으로 나가서 해봐라

책은 음식과 그것에 따른 책임감에 대한 내용이다. 음식에 뭔 책임감이여? 이런 생각 가질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산업사회 이후로 우리가 먹는 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르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책임감이나 윤리 같은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먹는 차돌박이는 누가 죽인 소의 일부분이며, 그 소는 맑고 영롱한 눈을 가졌음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책임소재는 어디로 전가되지 않고 흐지부지 사라져 버렸으며, 그의 안티테제로 여러 사상들이 출현했다. 공리주의적 채식주의, 산업적 축산업을 반대하는 채식주의, 유기농 산업, 심지어 쓰레기만 주워 먹는 이상한 운동까지. 좋다. 나도 한 3개월간 채식주의 운동에 동참한 경험이 있다. (내가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딱히 책만 읽는 먹물은 아니란 말씀) 그때 느낀 것은 참을 수 없는 부자연스러움이었다. 자연주의의 오류라 하여, 아무리 자연스러운 게 윤리적인 건 아니라 하지만 무언가 다들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것은 거의 확실하다. 예를 들어, 채식주의자는 우리가 윤리적이 되기 위해서 비타민 B 알약을 매일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부자연스러운 것도 정도가 있지!

저자 역시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을 읽어 보고 고민한다. 싱어의 주장은 전적으로 옳고 나는 그의 말을 따라야 한다. 여기서 그가 하는 행동은? 진짜 채식주의자 되기다! 그와 동시에 그는 싱어한테 이메일을 보냈다. 난 공장식 축산업에서 나온 소고기를 안 먹고 직접 사냥해서 고기를 잡을 껀데(!) 이정도면 어때요? 여기서 싱어는 딱히 반대를 하지 않았고 (잘못된 것은 관행이지 원칙이 아니란 말씀) 저자는 그 즉시 사냥을 하러 떠났다.

책은 세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각 챕터는 음식 사슬을 이루는 최초의 기저 (먹이사슬에서 토끼의 먹이가 되는 그거)를 주제로 하고 있으며, 생각해볼 수 있는 음식사슬의 세 가지 패턴을 세 가지의 챕터로 만들었다. 1. '옥수수': 미국 콘벨트로부터 시작되는 산업적 음식사슬. 2. '풀': 유기농 산업과 진-유기농 재래식 대안농장의 음식사슬 3. '숲': 수렵채집적 음식사슬. 이 순서는 인간 진화와 문명 발달의 역사를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으며 (산업-농경-원시), 물론 저자는 이 세 가지의 음식사슬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달려갔다!

1. 옥수수
내가 시카고에서 아이오와까지 버스타고 가본 적 있는데, 한 서울에서 부산 갈 만큼의 거리가 온통 옥수수밭이었다더라. 여기의 농부들은 주구장창 옥수수만 기르고, 이 엄청난 옥수수는 엄청난 숫자의 소에게 먹이로 바쳐진다. 소는 광우병과 좁은 우리로 고통받고, 옥수수를 단백질과 동물성 지방으로 바꾸는 기계의 부품으로서 일생을 마친다. 피터 싱어를 위시한 미국의 채식주의자들은 이 끔찍한 매트릭스에 경악하여 극단적 채식주의를 주장하는데, 물론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 말이 맞다. 하지만 요 시스템은 인간 역사에서 매우 최근에 출현한 시스템이라, 이 시스템을 좀 배제하고 50억의 지구 사람들에게 (솔직히 너무 많긴 하다) 즐겁고 필수적인 동물성 단백질을 공급할 대안적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다면 채식주의의 대안으로 괜찮을 것이다.

2. 풀
한때 그 대안으로 유기농이 제안되었다. 진보적이고 깨인 농부들이 소도 즐겁고 사람도 즐거운 유기농 시스템 농장을 만들었는데, 인기가 치솟자 유기농 음식들을 또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급할 필요성이 되었고, 결국 유기농은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여기서 질문은 유기농이 산업이 되어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것이다. 유기농이 산업이 되면 더 이상 유기농이 아니지 않나? 유기농이 산업이 되면 안된다 하면, 그럼 또 거대한 50억의 지구 사람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

대안적 진-유기농 농장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 시스템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로컬푸드 시스템인데, 유기농이 산업화되면서 버려야 했던 것들을 되살리고 운송을 하지 않고 지역민들에게만 파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도살에 윤리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도살 과정을 공개한다. 즐겁게 살던 동물들은 소비자들이 보는 앞에서 신속하게 살해당하고, 소비자는 내가 먹는 고기가 저렇게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느 정도 자신에게 책임감을 부여한다. (물론 여기서 나의 걱정은 50억 인구다. 이 시스템으로 과연 괜찮을지 하는 것이다)

3. 숲
직접 잡은 돼지와 직접 채집한 버섯, 샐러드, 과일로 책을 마무리하는데, 여기서 저자는 돼지 도살 과정에서 느꼈던 책임과 고통, 번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한다. 고기가 우리 입에 들어가기 위해서 해야 했던 역겨운 과정들 (쏘고, 가르고, 파헤치고, 썰고)이야말로 경험의 소중함이며, 이 책의 진수다. 물론 수렵채집식 음식 시스템이 50억 인구를 먹여살리긴 무리라고 저자도 여기선 순순히 인정하고 있다. 그래도 여기서 느껴지는 거대한 결론은 누구든지 주둥이가 달려 있다면, 자기 주둥이로 들어가는 남의 살에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소 키우는 방식이 이렇진 않을 거라고, 저 고통과 지옥의 산업식 축산업이 미국만의 특수한 상황일 것이라 생각되긴 한다. 그렇다고 내가 이마트 차돌박이에 적힌 생산자 주소로 농장을 견학가서 "여기 소는 행복한 삶을 살았나요..."라고 물어보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 주위의 누구든지간에 삼겹살 좀 구워먹자고 농장 찾아가서 미주알 고주알 캐보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저널리즘이 중요해 지는 순간인데, 우리나라 인터넷 기레기들에게 이런 걸 기대한다는 것도 좀 바보같고... 내 주위의 사람들 대부분 한우라고 열광하는데 딱 봐도 고통과 애욕의 삶을 살다간 티가 역력한 '마블링 가득한' 소고기일 뿐인데... 시발 내가 언젠가 반차내고 농장 찾아간다! 이렇게 결심해도 나 스스로 이런 데 쓰는 연차 아까워하는 보잘것 없는 일개 군상일 뿐이니...결론은 책이라도 읽고 자위질 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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