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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풀며 - 리처드 도킨스가 선사하는 세상 모든 과학의 경이로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최재천.김산하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에 '무지개를 풀며'를 출판하면서 출판사가 제공한 소갯말의 첫머리이다.
'<이기적 유전자>(1976)를 시작으로 펴내는 책마다 전 세계의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문제적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
리처드 도킨스가 왜 '문제적 과학자'일까? 논쟁적 과학자라던가(실제로 그의 책들은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키곤 했으니까), 파격적인 과학이론의 창시자라던가, 뭐 하여간 좀 좋은 말이 더 많았을 텐데.
도킨스의 과학은 '문제적 과학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비정상적이라거나 특이하거나 하지 않다. 오히려 그는 '과학이 가야할 정도'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 몇 안되는 과학자이고, 그가 과학자인 것은 그의 과학이 문제적이라던가 해서가 아니고, 과학의 역사에서 위대한 과학이론이 보여주던 전형성에 그대로 들어맞는 '전형적인 과학'이기 때문이다.
위 의 내 표현에 이상함을 느꼈는가? 잘 생각해 보자. 내가 도킨스를 '파격적인 과학이론의 창시자'라고 말하는 동시에 '전형적인 과학이론의 창시자'라고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일단 첫 번째, 위대한 과학이론은 그 위대함이 클수록 파격적이다. 인류의 역사에 오래도록 새겨진 과학이론들은 전부 인간의 이성과 인식의 한계를 '극단적으로' 넘어선 이야기들이었다는 것이다. 사과나 별이나 모두 같은 법칙을 공유한다는 뉴턴의 법칙과 공간과 시간의 틀을 뒤엎은 상대성이론, 양자라는 기상천외한 입자가 물질의 근원이라는 것을 밝힌 양자역학, 생명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옛날로부터 만들어지고 진화되어 왔다는 다윈의 진화론, 생명 또한 정보의 발현이라는 것을 밝힌 왓슨과 크릭의 DNA, 인간의 사고 자체도 정보처리의 구성물일 뿐이라는 인지과학까지, 모든 이론은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던 때의 인간이라면 상상조차 못할 만큼 기상천외하고 파격적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러한 파격성이 위대한 과학 이론의 전형적인 성질이라는 것이다. 파격성을 띠고 있지 않으면 과학이론은 위대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여 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파격적인 이론이라고 꼭 위대한 이론이라는 것은 아니다(당연하다.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가 가진 이성과 인식의 한계는 세계의 진실을 표상하기에 턱없이 모자라기에, 정말로 진실성을 담고 있는 과학 이론을 우리가 이해한다면 우리는 너무나 놀랄 수밖에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위대한 이론이 위대한 이유는 그 이론이 정말로 '진실'이기 때문이며, 그러한 진실은 때론 우리의 인식의 대혼란을 가져올 정도로 파격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리하자면, 과학이론에 따른 논쟁이 '문제적'일 수는 있지만 그 과학 이론 자체가 '문제적'일 수는 없다. 그에 따라서 과학자 자체도 '문제적'일리가 없다. 도킨스는 정말로 옳은 말만 하기 때문이다.
방 금 내가 한 말에서 또 발끈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리라고 생각한다. 먼 곳으로부터는 도킨스와 서로 극렬한 증오를 주고받고 있는 창조론자, 지적설계론자들로부터 비롯해, 도킨스 독설의 표적에 자주 잡히곤 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 환원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마치 나치의 망령이 되살아난것 처럼 치를 떠는 인문학자들, 같은 진화론자이면서도 이상하게 자꾸 도킨스와 투닥거리는 굴드파들, 그리고 도킨스의 비유법을 '비과학적'이라고 매도하는 안티-도킨스주의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미안하지만, 어떤 반대파들의 질문엔 대답할 가치가 없다. 특히 창조론자들의 주장이 그렇다. 창조론은 개똥이다. 또 다른 반대파들에게는 질문에 대답할 방도가 없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나 환원주의를 싫어하는 인문학자들에게 그렇다. 그들의 이론은 과학과 너무 괴리되어 있어서, 그들이 말하는 단어들을 과학적으로 반박하거나 논증할 어떤 방법도 없다. 예를 들어, 인문학자가 과학적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리비도'를 진화적 적응으로 설명할 수 있냐고 뻗댄다면, 과학자는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 책에서, 도킨스는 굴드의 이론을 '나쁜 시상'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극렬한 비판을 가했다. 나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굴드의 이론은 정말로 나쁜 시상을 가지고 있어서, 이것은 과학이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굴드의 이론은 인종의 평등함을 강조하기 위해 인간의 유전자 분포가 아주 좁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만약 도킨스가 이 과학적 사실을 먼저 발견했다면, 무리하게 인종의 평등함을 강조하는 언변을 삼갔을 것이다. 만약, 인간 유전자의 분포가 엄청나게 넓다면, 그래서 인종간의 차이도 심하게 난다면, 그 때엔 인종이 불평등하다고 주장할 셈인가?
“그렇다면 도킨스는?” 도킨스의 언어습관이 '비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도킨스의 과학은 나쁜 시상이 아닌가? '이기적 유전자'라는 이론은 우리의 인간의 정신을 이토록 황폐화시키지 않았는가? 도킨스의 말에 따르면 유전자가 이기적이기 때문에 인간이 이기적으로 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전 혀 그렇지 않다. 도킨스의 말은 그것과 정반대이기 때문에 좋은 시상이다. 사실 '이기적'이라는 단어의 뜻에 사람들이 오해할 법한 '가치적 의미'가 진하게 배어있기 때문에 도킨스 스스로도 나중엔 그 단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 약간은 후회했다고 말했었다. 중요한 것은 '이기적'이라는 단어의 뜻이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그 단어의 뜻과 전혀 다른 단어라는 점이다. 유전자가 이기적인 것과 우리가 이기적인 것과는 어떠한 상관관계가 없으며, 도킨스의 '이기적'은 어떠한 가치적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은, 순수하게 과학적인 용어이다. 도킨스는 이러한 생각을 <이기적 유전자>에 몇쪽에 걸쳐서 분명히 밝혀놓고 있으며, 결국 도킨스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사람은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을(또는, 읽긴 읽었는데 이해하기에는 나의 머리가 딸린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다.
아직까지 미심쩍어 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과학적 이론에서 '시상'이라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닌가? 과학은 완전히 엄밀한 과학적 용어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기적'이라는 말은, 그 말 자체에 중립적인 성격을 부여했다 할 지라도 결국 시적 비유이기 때문에 나쁜 것 아닌가?
그렇게 따진다면, 시상이 아닌 과학은 '물리학'밖에 남지 못한다. DNA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염기들, 그리고 염기를 이루는 분자들, 그리고 분자를 이루는 원자들이 전자기적인 성질로 서로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복제와 돌연변이와 정보교환이라는 개념은 결국 시상 아닌가? 진화는 개념은? DNA의 염기 배열이 바뀌고 전자기력으로 인한 분자 생성이 어쩌구 하면서 단백질이 복제되고 하는 물리학적으로 복잡한 현상을 단순히 '진화'라는 단어 하나로, 진화적 적응으로 어쩌구 표현형이 저쩌구하는 말로 대체해 버리는 시상 아닌가?
아니, 물리학 마저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 현대 물리학의 핵심인 양자역학은 물질의 '파동성'을 중요한 컨셉으로 취급하고 있는데, 사실 어떠한 과학자도 이 파동의 정체를 모른다. 그러니까 결국 파동이라는 것도 시상이다. 그것 뿐인가? 힘이라는 개념도 사실은 입자간의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시상이다. 빛도 사실은 '가시광선'이라는 우리의 인식에서 출발한 개념이기 때문에 시상이다(그러므로 빛은 전자기파로 환원되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과학의 본질이다. 과학은 정말로 시적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본질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사실 저번에 <만들어진 신>을 읽었을 때처럼 이 책에서도 도킨스가 하는 말에 완전히 동의하진 못했으나(과학을 이해 못하고 배척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난 회의적이다.) 이것 하나만은 완벽하게 동의할 수 있다. 그 표현이 진부하게 들릴 지라도 어쩔 수 없다. 이 세상에 진짜로 아름다운 비유법이 있다면 그것은 과학이다. 진짜로 감동적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