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월터 아이작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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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너드 서스킨드의 『물리의 정석』시리즈를 1권부터 읽어 나가다, 4권 일반 상대성 이론 편에 이르러 텐서 미적분학의 높은 벽 앞에서 결국 좌절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 뒤로도 나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향한 집념을 꺾지 않고 브라이언 콕스의 『블랙홀』, 야우싱퉁의 『수학의 중력』, 마커스 초운의 『중력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찾아 읽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깨달은 바, 수식을 통해 정면으로 돌파하는 데는 역시 『물리의 정석』만 한 책이 없었다. 결국 4권을 서너 번씩 거듭 탐독하며 수식 하나하나와 씨름한 끝에, 이제야 비로소 일반 상대성 이론이라는 거대한 봉우리의 자락을 어렴풋이 밟아본 듯한 기분을 느끼고야 말았다.


물론 다른 관측자가 보기엔 나의 이해를 온전한 이해라고 부르기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할 테다. 때로 물리학 이론은 그것이 태동한 역사적 발자취를 따라갈 때 한층 더 명쾌하게 다가온다.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기 직전, 당대 과학자들이 직면했던 사유의 한계와 고민을 온전히 공유할 때 비로소 그 발견의 필연성을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을 배울 때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에서 시작해 보어를 거쳐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으로 나아가는 흐름으로 배우는 게 자연스러운 것도 같은 이유다. 상대성 이론 역시 이런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을 텐데, 만약 그렇다면 (양자역학과는 다르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물은 오직 한 사람, 바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뿐이다. 그리하여 집어 들게 된 책이 월터 아이작슨의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였다.


앙자역학이 여러 물리학자들의 공평한 기여를 통해 이루어진 반면, 상대성 이론은 사실상 아인슈타인 한 사람의 지적 도약으로 일궈낸 성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상대성 이론을 배울 때는 그의 사고 과정을 따라 독창적인 공리와 사고실험의 의미를 헤아려보는 작업이 중요하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뿌리가 된 ‘상대성 원리’와 ‘광속 불변의 원리’, 그리고 일반 상대성 이론을 지탱하는 ‘등가 원리’를 왜 출발점으로 택했는지 추적하다 보면, 이론의 전개 과정이 한결 자연스럽게 읽히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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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과학 이론이 태동할 때는 여러 학자가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하거나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는 이른바 ‘다중 발견’이 과학사적으로 흔히 일어난다.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 다윈과 월리스의 진화론이 대표적인 예다. 양자역학 역시 수많은 물리학자의 동시적 연구 성과가 누적되어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다중 발견이라 볼 수 있다. 한 시대에 축적된 새로운 관측 결과와 공통의 문제의식이 무르익으면서 마침내 새로운 패러다임이 터져 나올 토양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만큼은 이러한 통상적인 과학사의 궤적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오직 아인슈타인만이 그 결정적인 순간에 홀로 그만의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남들은 모르는 비밀스러운 질문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맥스웰의 전자기학과 뉴턴 역학의 충돌처럼, 당대 물리학계 전체를 뒤흔들던 시대적 난제는 누구에게나 명백히 드러나 있었다. 다만 그 모순을 뼈아프게 절감하던 수많은 석학 중,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해답을 낚아챈 이는 오직 아인슈타인 한 사람뿐이었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초기 이론인 특수 상대성 이론만큼은 다중 발견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나 저술가도 있다. 1905년 무렵, 아인슈타인의 라이벌로 꼽히던 헨드릭 로렌츠와 앙리 푸앵카레의 존재 때문이다. 실제로 로렌츠는 특수 상대성 이론의 핵심 수식인 ‘로렌츠 변환’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만큼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푸앵카레 역시 ‘동시성의 상대성’ 같은 개념을 아인슈타인보다 앞서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렌츠는 자신의 변환식에 따른 길이 수축을 그저 ‘에테르 속을 통과할 때 전자기적 상호작용으로 물체가 압축되는 현상’ 정도로 해석하며, 고전 역학의 틀을 지키기 위한 임시방편(ad-hoc) 가설로 취급하는 데 그쳤다. 심지어 푸앵카레조차 끝내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의 근거를 완전히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고 월터 아이작슨은 지적한다.


아인슈타인 외에 상대성 이론의 탄생에 결정적 족적을 남긴 인물을 꼽자면, 그의 대학 시절 은사이기도 했던 헤르만 민코프스키를 빼놓을 수 없다. 정작 재학 시절 민코프스키는 아인슈타인을 '게으른 학생'으로 여겨 추천서조차 써주지 않았을 만큼 두 사람의 사이는 냉랭했다. 민코프스키는 아인슈타인의 직관 중심적 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른 결의 독창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아인슈타인조차 미처 내다보지 못한 ‘4차원 시공간’과 ‘4-벡터’라는 우아한 수학적 체계를 창안해 냈다. 초기에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물리적 이론을 불필요하게 수학적으로 복잡하게 포장했다며 은사의 시도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민코프스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둘의 관계는 껄끄러운 채로 남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민코프스키 이론이야말로 특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는 데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접근법이라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이 처음 유도해 낸 길이 수축이나 시간 지연, 질량-에너지 등가성 수식들이 어딘가 지저분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던 반면, 민코프스키의 4-벡터 체계는 대칭적이면서도 극도로 명료하여 자연의 본질적 기하학을 훨씬 투명하게 드러내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아인슈타인 역시 민코프스키가 작고한 뒤에야 그의 통찰을 온전히 인정하고, 민코프스키의 4차원 시공간이라는 기하학적 토대로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정립했다. 그러나 민코프스키의 이러한 위대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그를 특수 상대성 이론의 다중 발견자로 분류할 수는 없다. 그의 이론은 명백히 아인슈타인의 1905년 논문의 발표 후에, 재해석하고 발전시킨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이러한 단독 발견의 성격은 한층 더 도드라진다. 1905년 특수 상대성 이론이 발표된 뒤 1915년 일반 상대성 이론이 완성되기까지는 장장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당대 물리학자라면 누구나 특수 상대성 이론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등속 운동에만 머물던 이론의 무대를 가속 좌표계로 확장해야 했고, 우주에 ‘빛보다 빠른 속도는 없다’는 전제가 확립된 이상 거리와 상관없이 즉각적으로 작용한다고 보았던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 역시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했다. 10년이란 다른 천재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열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군나르 노르드스트룀이나 막스 아브라함 같은 범상한 물리학자들은 중력을 전자기학처럼 장(field)의 개념으로 다루며 나름의 중력 이론을 제시하는 등 고투를 벌였다. 그러나 그들의 대안 이론은 시공간 자체가 휘어진다는 혁명적 기하학으로 중력의 본질을 꿰뚫은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해답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조차 10년이나 걸렸다는 건 역으로 말하면, 아인슈타인 스스로도 매 순간 지적 한계에 부딪혔을 만큼 그 과업이 극도로 험난했음을 뜻한다. 일반 상대성 이론을 완성하기까지 고뇌했던 10년의 세월 동안 아인슈타인은 수없이 이론의 방향을 틀고 가설을 수정해야 했다. 그 지난한 방황의 길목에서 그는 필연적으로 세상을 떠난 스승 민코프스키를 떠올렸을 것이다. 당시 아인슈타인의 사유 방식은 번뜩이는 물리적 직관에 깊이 기대어 있었을 뿐, 수학적 엄밀함을 온전히 신뢰하지는 못했다. 수학 실력이 부족했다기보다는, 민코프스키의 4-벡터처럼 대칭적이고 아름다운 형식화조차 물리의 본질을 흐리는 불필요한 추상화라며 외면할 만큼 직관주의에 갇혀 있었던 탓이다. 그런 그가 대학 동창이자 수학 교수가 된 마르셀 그로스만에게 손을 내밀어 본격적인 공동 연구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뼈아픈 시행착오 속에서 이루어낸 아인슈타인 내면의 지적 성장을 방증한다. 비로소 스승 민코프스키의 통찰을 겸허히 수용한 그는 기하학이라는 정교한 언어를 받아들여, 일반 상대성 이론을 지극히 수학적이면서도 우아한 체계로 다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격렬한 중간 과정에서 탄생한 결과물이 1913년 그로스만과 함께 발표한 초기 이론, 이른바 ‘엔트부르프(Entwurf, 초안) 이론’이었다. 미완의 실패작으로 판명된 이론이었지만, 바로 이 엔트부르프 이론을 강의하던 학술 강연장에 당대 최고의 수학 거두 다비드 힐베르트를 만나게 되었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의 대표적인 라이벌로 꼽히는 인물이 바로 대수학자 다비드 힐베르트다. 그 역시 일반 상대성 이론의 ‘다중 발견’ 사례로 종종 거론되기는 한다. (푸앵카레와 스승 민코프스키, 그리고 힐베르트까지, 아인슈타인은 유독 수학자들과 묘한 악연을 거듭했었다.) 힐베르트는 엔트부르프 이론을 접하자마자 단기간에 그 결함을 수정하고 보완할 길을 자신이 찾을 수 있겠다는 걸 간파해 냈다. 게다가 아인슈타인이 취한 방식과 달리, 그는 물리학의 근본 법칙인 ‘최소 작용 원리’를 활용해, 어쩌면 아인슈타인보다도 더 물리학다운 방식으로 아인슈타인보다 며칠 앞서 중력장 방정식을 유도해 내고야 만다.


그래서 일반 상대성 이론의 최종적인 발견자는 누구인가? 이 상황이야말로 과학사의 전형적인 ‘다중 발견’ 사례에 해당할까? 역사적으로 누가 먼저 방정식을 만들어 냈는지에 대해 여러 말들이 많다. 월터 아이작슨에 따르면, 우선 힐베르트가 “거의 맞는” 답을 발표했고, 아인슈타인이 며칠 차이로 “최종적인 해답”을 내놨으며, 힐베르트는 그 후에 논문을 “약간” 수정했다고 한다. 힐베르트가 발표한 “거의 맞는” 답은, 월터 아이작슨에 따르면 리치 스칼라를 방정식에 포함시키는 단계를 빠뜨린(p274) 틀린 답이다.


힐베르트의 “거의 맞는” 답: R_μν = 8πT_μν

아인슈타인의 “최종적인” 답: R_μν - ½g_μνR = 8πT_μν

이에 따르면 최종 승자는 아인슈타인이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대로.


물론 이 상황을 “누가 더 결승선을 먼저 통과했나”로 따지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건 없다. 아인슈타인은 장장 10년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론을 정답의 궤도에 올려놓았다. 아인슈타인보다 수학적 감각만은 뛰어났던 힐베르트는 거의 정답에 근접한 그의 중간 결과물을 보고 순식간에 해답을 포착했을 뿐이다. 설령 힐베르트가 며칠 앞섰다 한들, 아인슈타인이 10년간 쌓아 올린 ‘정답으로 향하는 탑’에 무임승차해 마지막 벽돌만 얹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만약 그런 가정이 현실이 되었다면 우선권을 둘러싼 지리멸렬한 논쟁과 싸움이 벌어졌을 테니, 아인슈타인이 며칠이라도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것은 과학사적로서도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아가 아인슈타인의 사유에 빚진 힐베르트의 사례를 들어 이 순간을 온전한 '다중 발견'으로 포장하는 것 역시 온당치 못하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시작부터 마침표까지, 현대 물리학의 거대한 두 기둥 중 하나인 상대성 이론을 홀로 자신의 힘만으로 완성해 낸 것이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없었다면?”이라는 흥미로운 가정을 던지며 상대성 이론의 등장 시점을 가늠해 본 석학들도 적지 않다. 스티븐 와인버그, 막스 보른, C. P. 스노우 같은 인물들은 입을 모아 특수 상대성 이론만큼은 푸앵카레나 로렌츠를 통해 기껏해야 몇 년 늦게라도 등장했을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와인버그는 최소 수십 년은 지체되었을 것이라 내다보았고, 스노우는 20세기 내내 아무도 생각해 내지 못했을 것이라 단언했으며, 보른은 아예 발견되지조차 못했을지 모른다고 평했다. 즉, 특수 상대성 이론은 다중 발견의 기준을 넓히면 사례로써 가까스로 걸칠 수 있을지 몰라도, 일반 상대성 이론만큼은 일반적인 과학사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굉장히 특수한 사례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 낸 아인슈타인이야말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희귀한 수준에 오른 독보적인 천재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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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까지의 여정을 살펴볼 때 도출되는 흥미로운 지점이라면, 그의 개인적 신념과 철학적 지향점이 이론에 일관되게 투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 인간의 지극히 주관적인 믿음이 어떻게 객관적인 우주의 물리 법칙과 이토록 완벽하게 맞물릴 수 있는지 경이로울 따름이다. 그리고 바로 이 기적 같은 일치가,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는 길목에서 아인슈타인의 생애를 추적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그의 사유를 관통하는 확고한 신념은 바로 ‘통합’이었다. 겉보기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자연의 현상들이 사실은 하나의 단순하고 우아한 근원 원리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혀내는 일이다. 물론 이러한 통합의 열망은 아인슈타인 이전부터 물리학이라는 학문이 품어온 본질적인 지향점이기도 했다. 뉴턴은 천상과 지상의 운동 법칙을 하나로 묶었고,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를 전자기학이라는 단일 체계로 통합했다. 그러나 과학사를 통틀어 가장 파격적이고 방대한 통합을 이뤄낸 인물을 꼽자면 단연 아인슈타인이다. 그가 상대성 이론을 통해 한데 엮어낸 물리적 실체들은, 대중이 막연히 알고 있는 것들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다.


1. 질량-에너지의 통합 (특수 상대성 이론, 1905): 질량과 에너지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변환될 수 있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임을 알려 준 공식이 바로 E=mc^2이다.


2. 시간과 공간의 통합 (특수 상대성 이론, 1905): 뉴턴 물리학에서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시간과 공간을 '시공간(Spacetime)'이라는 4차원의 단일 구조로 엮어냈다.


3. 에너지-운동량의 통합: 시공간의 통합에 따라, 각기 다뤄지던 에너지와 운동량이 통합된다. 에너지는 시간에 관한, 운동량은 공간에 관한 보존량었으나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이르자 에너지와 운동량은 하나의 에너지-운동량 텐서 안의 하나의 텐서 보존량으로 다뤄지게 된다. (사실 시공간 통합과 이 업적을 최초로 이뤄 낸 주창자를 엄밀히 따지자면 민코프스키이다.)


4. 운동법칙와 중력의 통합 (일반상대성이론, 1915): "가속하는 우주선 안의 관찰자와 중력장 안에 있는 관찰자는 물리적으로 구별할 수 없다"는 등가 원리를 바탕으로, 가속도를 포함한 운동 법칙과 중력의 법칙은 하나의 현상임을 증명했다. 이는 운동 3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따로 발견한 뉴턴의 업적 자체를 통합한 것이다.


5. 전기력과 자기력의 진정한 통합 (특수 상대성 이론, 1905): 일반인이 잘 알지 못하는 아인슈타인의 숨겨진 업적은 바로 자기력은 단지 전기력의 상대적인 효과일 뿐임을 증명했다는 점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을 세상에 알린 1905년의 그 유명한 논문 제목이 다름 아닌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동역학에 관하여(On the Electrodynamics of Moving Bodies)」였는데,  이 논문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특수 상대성 이론의 시간 지연, 길이 수축 현상에 추가적으로 전자기력에 대한 챕터를 실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독립적인 힘으로 느끼는 자기력이 사실은 움직이는 관찰자(혹은 전하)의 입장에서 시공간의 길이 수축 때문에 전하 밀도가 달라져서 발생하는 전기력의 상대론적 효과라는 결론이다. 맥스웰의 방정식은 전기력과 자기력이 대칭적인 방정식을 통해 엮여 있다는 정도에 그쳤다면, 아인슈타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전기력과 자기력이 하나의 현상일 수밖에 없는지” 그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원리적으로 꿰뚫었다고 할 수 있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전자기력을 일종의 운동 법칙으로 다뤄 본 경험이 있는 아인슈타인에게, 전자기력 또한 운동법칙와 중력의 통합인 일반 상대성 이론 내부로 한 번 더 통합할 수 있을 만한 주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라 중력은 전자기장처럼 일종의 장(Field)으로 다뤄질 수 있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아래처럼 중력과 전자기력의 특징들을 나열해 보면 그 대응 관계가 밀접하게 드러난다.


특징                    전자기력 (맥스웰 방정식)    중력 (일반 상대성 이론)

힘의 근원              전하                               질량/에너지

정지 상태의 장       전기장                            중력장

움직이는 상태의 장 자기장                            중력자기장

파동                    전자기파 (빛)                    중력파

파동의 전파 속도    빛의 속도                        빛의 속도

파동 발생 조건       전하의 가속 운동               질량의 가속 운동


일반 상대성 이론이라는 독보적인 업적을 이뤄 낸 아인슈타인의 나이는 고작 서른 여섯에 불과했다. 물리학의 정점에 섰더라도 그는 스스로 아직도 무언가 더 이룰 것들이 남았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의 시선은 그에게 남은 단 하나의 숙원, 물리학에서 마지막으로 남겨진 미통합된 미지의 근원, 전자기력을 중력과 하나로 엮는 일로 향했다. 그 위대한 통합의 과업이라면, 남은 생 전체를 온전히 쏟아붓더라도 결코 아깝지 않으리라 확신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인슈타인의 생애에서 가장 쓸쓸하고 때로는 안타깝게 폄하되기도 하는, 그의 말년 수십 년의 인생과 천재성마저 소진시켜 버린 통일장 이론으로의 여정이 시작된다. 월터 아이작슨에 따르면, 통일장 이론으로의 여정은 특수 상대성 이론의 ‘상대성 원리’나 일반 상대성 이론의 ‘등가 원리’처럼, 아인슈타인을 스스로 번뜩이는 직관을 붙들어 줄 물리적 원리가 부재했다는 점에서 아인슈타인 답지 않은 길이었다. 명확한 물리적 원리 대신 복잡한 수학적 형식에만 매달렸던 그 사투는, 결국 나침반을 잃은 채로 미로 속을 헤매는 거인의 여정과 같았다.


말년의 통일장 이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구실 삼아 아인슈타인의 위업 전체를 폄하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어리석은 환상에 평생을 허비한 것을 보면 그를 세기의 천재라 추켜세우기엔 과장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는 일반 상대성 이론에 도달한 것만으로도 인류사 최고의 천재라 불리기에 한 치의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나는 전자기력과 중력이 공유하는 수많은 기묘한 유사성을 마주했을 때, 그를 거인으로 만들었던 천재적 직관이 한 번 더 과감하게 작동했던 결과라고 해석하고 싶다. 당시로서는 그 가느다란 가설의 성패를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으며, 만약 우주가 정말로 그의 직관대로 짜여 있었다면 아인슈타인은 생애 세 번째 물리학 혁명마저 일궈냈을지 모른다. 그의 유일한 오류가 있다면, 그것은 우주가 그의 원대한 신념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뿐이었다.


당시에 유진 위그너나 오펜하이머 등의 학자들은 세기의 천재라고 불리는 존 폰 노이만과 아인슈타인을 비교하는 언사를 남겼다. 존 폰 노이만은 복잡한 미분방정식이나 수식 문제를 암산으로 몇 초만에 계산해 내는 수학의 화신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천재를 마주하며 우러러 보긴 하지만, 과학사 전체를 조망해 보면 가우스나 오일러, 라마누잔처럼 믿기지 않는 연산력과 수학적 직관을 뿜어낸 괴물들은 드물게나마 계보를 이어왔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결코 그런 결의 천재가 아니었다. 기교로서의 수학적 재능만 놓고 보면 힐베르트는커녕 동창 마르셀 그로스만이나 은사 민코프스키에게조차 미치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의 독보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었다. 인간의 고착된 상식과 선입견을 단숨에 부수고, 우주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 자체를 재창조해 낸 극한의 상상력과 물리적 직관. 그 재능이야말로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희귀한 것이었으며, 과학사 전체를 통틀어도 오직 아이작 뉴턴 정도만이 비견될 수 있는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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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병상에서의 마지막까지 그는 종이에 어떤 계산을 끄적대곤 했는데, 월터 아이작슨은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마지막 장에 그 계산 내용을 담았다.




그 분수 계산의 흔적은 결코 아름답지도, 직관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거대한 비선형 방정식 속에서 계수의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분수의 덧셈과 뺄셈을 묵묵히 손으로 검산해 내려간 처절한 씨름의 자국일 뿐이다. 대물리학자가 삶의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병상에서 붙들고 있었던 것은 우주를 관통하는 완벽하고 우아한 최종 방정식이 아니라, 이 고독하고 지난한 산술 계산이었다. 우리는 통일장 이론을 향한 그의 마지막 사투가 물리학사에 끝내 유의미한 기여를 남기지 못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병상의 침묵 속에 남겨진 그의 마지막 수식들은 그 어떤 미완의 공식보다도 한층 더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를 쓴 월터 아이작슨은 전기 전문 작가로, 2011년 『스티브 잡스』를 발표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최근작인 『일론 머스크』 역시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의 경우, 전기의 마지막 장이 덮인 뒤에도 그는 여전히 현실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숱한 사건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우리는 미디어가 쏟아내는 정제되지 않은 문장들을 통해 그의 자극적인 행보를 실시간으로 목도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론 머스크』는 아직 온전한 완결성을 지닌 전기라 부르기 어렵다는 인상을 준다. 우리가 전기를 읽는 진정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의 마지막 장에 남겨진 쓸쓸한 수식의 흔적을 나름대로 해석해 보며, 한때 세계를 뒤흔든 영웅이자 독보적인 천재였던 한 인간이 생의 종착지에서 마주한 고독하고 담담한 황혼을 비로소 온전히 응시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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