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정보라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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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글에서 누차 밝혔듯이, 내 스타니스와프 렘 빠심의 시작은 정식 소설집도 아닌, 두 과학자/철학자가 인공지능에 대해 논의하며 단편소설을 인용한 독특한 형식의 책, 『이런, 이게 바로 나야』라는 제목의 책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에 바로 「넌 세르비엄」이라는, 등장인물도 별로 없고 사건도 없는 이상한 단편소설이 하나 실려 있었다. (두 저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와 대니얼 데닛은 강인공지능과 기능주의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이 소설을 인용했다.) 참고로 이 책에는 저자들의 에세이인 「아인슈타인의 뇌와 나눈 대화」라는 글도 있는데, 이 글은 나의 소설인 「책이 된 남자」의 모티프가 된 결정적인 글이기도 하다. 거의 김필산의 성경과 같은 책이 아닐 수 없다.


2021년 『스타니스와프 렘 - 미래학 학회 외』가 출판되며 「아서 도브의 “논 세르위암”」—‘비’가 아닌 ‘위’ 발음으로 제목이 번역되었다—이 소개되었는데, 아마 문학 작품 소개의 형식으로는 여기가 훨씬 공식적인 자리였을 테다. 『솔라리스』의 렘만이 아닌 ‘온갖 이상한 이야기를 써내는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을 거의 처음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좋은 책이었다. 이후로 놀랍게도, 그리고 나에게는 아주 기쁘게도, 많은 렘의 책이 한국어 번역되기 시작했다. 2023년의 『로봇 동화』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의 모국어로 렘의 책을 여러 권 읽어볼 수 있게 되었고, 뒤늦은 스타니스와프 렘의 한국 침공은 이제 종료된 걸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올해, 렘의 책이 한 권 더 번역되어 나왔다. 이 책, 『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은 「아서 도브, “논 세르비암”」(여기서는 다시 ‘비’ 발음인데, 2021년 책과 이 책이 같은 번역자의 책이라는 점에서 어떤 연유인지가 좀 궁금하다.)이 포함된 단편소설의 모음집이지만, 우리는 이 모음집의 특별한 ‘컨셉트’, 즉 출판 서적 단위의 맥락 속에서 「아서 도브, “논 세르비암”」을 새롭게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동봉된 엽서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눈여겨 볼 만 한데, 책 표지의 그림과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 추상화된 형태의 그림으로 그 변주가 재미있다. 표지 디자이너의 입으로 이 그림의 취지를 밝힌 글은 없지만 내가 추측해 보건대 표지의 그림은 스타니스와프의 ‘S’와 렘의 ‘L’을 르네 마그리트적인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그린 그림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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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이라는 책은 가상의 책에 대한 서평과 서문의 모음으로 쓰인 책이다. 『절대 진공』(Doskonała próżnia)은 '서문'이고 『상상된 위대함』(Wielkość urojona)은 '서평'인데, 나의 둔감한 문학적 감수성에 의하면 서평인지 서문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 두 책들은 어떤 가상의 책이 있다는 것을 ‘상상한 후’, 그 상상의 책에 대한 서문이나 서평을 ‘가상’의 누군가가 썼다고 주장한다. 사실 본문에서 그들은 1인칭으로 서술되고는 있지만, 서평과 서문의 저자가 누구인지 본인의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그런데 각 글들의 말투나 스타일, 관심사 등에서 각자 다른 저자로 상정하고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실제’ 렘의 의도라면, 렘은 ‘가상의 저자’와 ‘가상의 책’, 그리고 그 책들을 각각 읽은 ‘가상의 비평가’들까지 꾸며내고 있다는 점이다.


책의 첫 챕터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 『절대 진공』에 대한 서평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가상의 서문 저자가 『절대 진공』의 저자 ‘스타니스와프 렘’을 논한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점이 계속해서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 가상의 저자가 읽은 『절대 진공』은 현실의 책인가, 가상의 책인가? 언급된 “스타니스와프 렘”은 가상인가, 실제인가? 이 책(우리가 읽고 있는 현실의 책)의 컨셉트를 충실히 반영하자면, 이 서문 또한 ‘가상의 저자’ 스타니스와프 렘이 쓴 ‘가상의 책’『절대 진공』의 서문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외삽에 의한 추정일 뿐이며 우리의 영가설과 대립 가설, ‘현실인가 가상인가’를 확정시킬 수 있는 말은 없다. 여기서 엄밀하게 따지자면, 가상과 현실이 조합적으로 엮어 들어가는 지점까지 따질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의 현실, 가상의 가상, 현실의 가상, 가상의 현실...저자, 책, 서평의 저자까지 엮으면 아마 2의 3승인 8가지 경우의 수가 나올 것이다. 어쩌면 그가 읽고 서평을 쓴 『절대 진공』이라는 책은 현실이면서 또 가상이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흐릿하고, 현실이라고 정의하면 가상이 되고 가상이라고 정의하면 현실이 되는 에피메니데스적 존재(“책에 쓰여진 이 문장은 가상이다”)일 지도 모른다. 이러한 메타적 장난은 바로 (현실의) 스타니스와프 렘의 장기이고, 우리가 렘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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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가상의 책을 설정하고 그에 대한 서평이나 서문을 쓴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등장인물이나 사건, 기승전결 등의 소설의 구조를 짜서 이야기를 만들어낼 거 아니라면, 상상력을 표현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그 가상의 책 자체를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위에서 말한 서문의 한 구절을 인용하자면, 이 책들은 스타니스와프 렘의 “이루어지지 못한 꿈들의 책”이다. 진지하게 책 한 권 또는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시키기엔 거창하면서도 비뚤고 어긋난 아이디어를, ‘가상의 책’으로 설정해 위트 있고 아이러니하게 그려내려는 목적이다. 다음과 같은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 논리적이라 상상의 인물을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내는 로빈슨 크루소에 대해 쓴 소설에 대한 이야기. 무인도에 정착한 로빈슨은 상상을 통해 하인들을 만들어 내는데, 상상은 실재이며 크루소는 상상해 낸 하인을 사랑하지만 건드리면 실재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그녀를 만지지 못한다. (마르셀 코스카, 『로빈슨 연대기』)


 - 병사가 교수형을 받는 단순한 이야기에서 인류 모든 지식에 대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율리시스나 피네간의 경야와도 같은 작품을 만들어 낸 소설 (패트릭 해너핸, 『기가메시』)


 -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한 소설, 즉 ‘그 남자는 도착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모든 내용이 부정 명제로 이어지는 소설 (솔랑주 마리오트, 『아무 것도 아닌, 혹은 원인에 따른 결과』)


 - 자신의 부모님들이 서로 만날 확률, 그 조상이 만날 확률, ... 매머드가 물을 마실 확률 등을 소급해 계산해, 결국 자신이 태어난 일은 확률적 불가능에 가까운 사건이라는 걸 서술한 책 (체자르 코우스카, 『생명의 불가능성에 관하여』; 『예언의 불가능성에 관하여』)


이런 이야기들은 논리적 모순 그 자체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완전히 채워서 설명할 수는 없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그런 이야기가 있다더라’하는 식의 간접적인 방식으로 서술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쓰여진 이 작품들은 있지도 않은 원작의 아이러니함을 진지하면서도 코믹하게 그려낸다.


그렇다 해도 그의 작품들이 가벼운 코믹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의 사고는 인류학, 진화론, 인공지능의 상상력에까지 뻗어 있는데, 가끔 너무 진지해서 가끔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확장하는 전문 칼럼,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의 맹점을 파고드는 이야기, 테드 창의 「숨」 단편의 프로토타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적응으로서의 진화에서 벗어난, 오류로서의 문화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문화는 오류이며, 인간은 진화에서 벗어난 존재이다. (빌헬름 클로퍼, 『오류로서의 문화』) - 진화론과 문화에 대한 설명이 너무도 진지한 나머지, 이 작품에선 심지어 아이러니함이 거의 느껴지지조차 않는다.


 - 책의 저자는 이 세상에 작품이 너무 많은 나머지, 명작을 선별하는 데 힘듬을 느껴 차라리 작품을 쓰는 사람에게 비용을 물리는 펀드를 제안한다. (요아힘 페르젠겔트, 『페리칼립스』) - 문자의 조합을 통해 이세상 모든 가능한 책을 보유한다는 「바벨의 도서관」을 반박하는 결정적 논리. 너무나 많은 작품은 되레 좋은 작품을 찾는 데 엔트로피적으로 엄청난 시간이 들기 마련이다.


 - 이 책의 지은이는 자신의 스승의 책을 언급한다. 스승은 우주가 게임을 하는 인격들의 싸움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밝힌다. 우주는 점점 엔트로피가 감소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우주의 물리학 법칙은 변해간다. (앨프리드 테스타, 『새로운 우주생성론』) - 「숨」의 결말과 비슷함을 느꼈다. 개인적 감상이다.


가장 놀라운 작품은 인공지능의 시대 이후, 인공지능이 창작하는 문학의 발전 가능성을 논하는 글이다. 「후안 람벨레 외, “비트 문학의 역사”」에서 떠드는 인공지능의 문학의 갈래는 장황하고 시니컬하고 아이러니하지만, 그 가능성은 진지한 투로 아무렇게나 떠드는 현실의 얼치기 미래학자의 말보다 훨씬 냉철하다. 어차피 어떤 미래학자도 제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꼴을 본 적 없었고, 미래란 항상 예상보다 더 기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렘이 이 작품을 통해 예측한 이 시대, 즉 인공지능이 문학을 창작하는 시대를 맞이하는 과정에 있는데, 그의 말도 안되는 과장적 수사법으로 그려진 AI문학의 면모가 현재 우리의 일상에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한다는 걸 느낀다.


결국 『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은 단순히 기이한 아이디어의 나열이 아니라, 스타니스와프 렘이라는 작가가 자신의 사유 실험실에서 상상력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창조한 문학적 메타장치다. 가상의 책과 저자, 그에 대한 서평이라는 삼중 구조 속에서 렘은 독자에게 묻는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픽션인가? 어느 지점에서 비평은 창작이 되고, 언제 상상은 철학이 되는가? 이 책은 그런 경계를 유쾌하게 넘나드는 렘식 유희이자, 문학과 철학, 과학과 농담의 경계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그의 고유한 작업의 결정판이다. 그가 이 책에서 던지는 농담은 우스우면서도 깊고, 가볍게 읽히지만 읽을수록 무겁다. 이 책을 덮는 순간 우리는 결국 이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렘은 미래에서 왔다. 다만 우리와 무척 다른 평행우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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