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위험한 생각
대니얼 C. 데닛 지음, 신광복 옮김 / 바다출판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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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유전자 중심의 진화론'이 한창 자리를 잡아 가던 시기에 그에 반대되는 일군의 생물학자가 있었다. 스티븐 제이 굴드를 대표로 리처드 르원틴, 나일즈 엘드리지 등의 학자들이 대표적이었는데, 그들은 리처드 도킨스와 에드워드 윌슨 등의 생물학자를 '유전자 결정론'이라고 비판했다. 그에 맞서 도킨스의 편으로 싸워 준 학자 중 독특하게도 철학자인 대니얼 C. 데닛이 있었다. 그가 얼마나 충성스럽고 악독하게 싸웠는지, 리처드 르원틴은 데닛을 가리켜 '도킨스의 개'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점잖은 학자들에게 이정도면 쌍욕인데, 분위기는 정말 험악했었던 모양이다.


SNS도 발달하지 않은 시기였으니 그들의 전장은 아마 대부분 출판된 서적이나 논문의 지면이었을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뿐만 아니라 에드워드 윌슨, 스티븐 핑커, 매트 리들리 등 당시에 유전자 중심 진화론에 대해 쓰인 여러 책들을 읽다 보면, 굴드를 비판하기 위해 데닛의 책을 자주 인용하곤 했다. 『Consciousness Explained(이미 설명된 의식)』은 의식 얘기만 나왔다 하면 반드시 인용되는 책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한국어 번역본이 없었다. 의식 연구를 대학원 주제로 삼았던 나는 제목만으로도 극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책을 읽고 싶어 안달이었다. 이 책은 결국 연구를 그만두고 생업에 뛰어든 시절인 2013년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라는 제목으로 한국어 번역 출판되어서 실제로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Darwin's Dangerous Idea』도 너무 많이 보여서 외워버릴 지경인 제목이었다. 이 책이 바로 데닛의 책 중 마지막까지 번역되지 않고 있던 마지막 책이었을 것이다. 새삼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알고 있을지라도 그 제목 자체로 전율이 인다. 책의 내용에 대해 궁금하기 이를 데 없는 대단히 도발적인 제목이다. 2025년 지금, 데닛 책을 여러 권 번역한 바 있는 바다출판사에서 북펀딩을 통해 이 책의 번역을 기획하였고 드디어 『다윈의 위험한 생각』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 번역 출판되었다. 나 또한 펀딩에 참여해서 이름 석자를 이렇게 출판물에 남기게 되었다.


어떻게 생물학자가 아닌 철학자가 다위니즘을 연구하게 되었는가

우선 이 책을 읽기 전 이것부터 고민해 보아야 할 듯 싶다. 진화는 '철학적 연구 대상물'인가?


철학이 연구할 주제가 뭐 아무렴 어떤가? 과학이든, 수학이든, 생물학이든, 연구하고 싶으면 연구하면 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과학과 철학은 '실험'이라는 단계의 유무로 나눠지는 경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험실을 운영하지 않는 '철학과'의 소속 교수는 과학을 수행할 수 없고, 그렇다면 '실험 기반 진화학' 또한 수행할 수 없다. 하지만 과학의 한계 또한 명확하다. 과학자는 '실험실'을 운영하여 나온 결과 외에는 과감한 사고를 펼치기 곤란한 입장에 처한다. 이에 철학자는 과학자가 쉽게 언급하기 어려운, 논증의 끝없는 발전을 통한 사유의 결과를 과감히 말할 수 있다. 그게 설령 '과학적 주제'라 할 지라도, 그 사유와 논증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실험을 통해 도달 가능한 영역보다 넓다면 철학 주제가 된다. 그리고 때마침, '진화'라는 주제는 실험의 영역보다 사유의 영역이 '천많게 광대'함이 밝혀진다. 바로 이 책, 『다윈의 위험한 생각』을 통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 책에 대한 전체적인 감상은, 그 주제 자체가 어느 정도는 '철학과 과학의 중간 영역'에 걸쳐 있다는 생각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진화'를 철학의 영역으로 다루기 적절했느냐는 지점을 정확히 언급하기 좀 아리송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데닛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의식'의 경우, 그건 완벽히 철학적 주제이다. 과학이 의식을 다루는 방식은 거의 실패에 가까우며, 그리하여 철학은 이에 대해 언급하며 "언젠가는 과학이 제대로 의식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방금 "과학은 의식을 제대로 다룰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음에 주목하라) 이런 언급 자체가 철학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책이 진화에 대해 다루는 언급들은, 실제로 과학자도 실험 논문의 Discussion 섹션에 조금씩 추가해 언급할 수 있는 주제들이다. 물론 데닛 특유의 풍부하고 다양한 사고의 가지들, 그리고 명징한 개념의 정의를 통해 정확하고 세밀하게 찌르는 사유의 영역은 철학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런 세밀한 주제들을 하나하나 모으고 엮어도, 그렇게 모인 거대한 주제는 과학자 또한 할 수 있는 말들이다. '사유의 다차원 공간'에서 어떤 실험실 기반 과학자가 데닛이 했던 말들과 똑같은 말들을 하는 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걸 느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정도로 대단한 과학자는 아직 없었고, 철학자인 데닛이 그 일을 대신하였으므로 이 책은 결국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중간에서 시작하기, 만능산

책의 구성은 세 섹션으로 되어 있다. 1부는 앞으로 펼칠 철학적 사유의 기초를 구성하기 위해 여러 개념을 정의하고 이름을 붙인다. 특히 1부의 제목은 '중간에서 시작하기'라고 되어 있는데, 이건 꽤 의미심장하다.


진화론 이전 사람들이 모든 것들 설명할 때 있어서 '마음이 최초' 관점이 있었다. 그 마음(MIND)이란 곧 지성적 신(GOD)이 모든 것을, 특히 생물을 '설계(DESIGN)'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연쇄를 이루어, 모든 "왜"에 대한 궁극적 대답으로 지성적 신까지 연계되는 사다리가 구성된다. 맨 위에 GOD이 있고, 그 아래엔 MIND이 있다, 맨 아래에는 무NOTHING, 또는 혼돈CHAOS이 있다. 중간엔 신이 만든 설계DESIGN와 질서ORDER가 위치했다. 즉 신으로부터 마음, 설계, 질서가 내려오고, 그것은 혼돈과 무에 이른다.


다윈은 '중간에서 시작하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인다. 마음이 없는 알고리즘으로부터 설계가 출현한다. 그리고 어떤 설계는 마음을 만든다. 마음은 신을 만들까? 그렇다. 우리의 마음은 없는 신을 창조해 낸다. 진화론은 알고리즘이며, 우리가 생각한 대로 알고리즘엔 마음이 없다. 알고리즘은 무마음적이고 무목적적이고 기계적인 과정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설계'라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할 과정에 대해 어떻게 자연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지 궁금해진다. 모든 것을 '알고리즘'이라는 무마음적적인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이 바로 다윈의 '위험한 생각'이다.


'만능산'이란 모든 것을 녹여 버리는 가상의 물질이다. 그것은 그것을 담는 플라스크, 플라스크를 올려 놓은 테이블, 바닥, 건물, 땅까지 녹여 버린다. 다윈의 아이디어 한 방울은 다윈 이전 인류의 세계관 모든 것을 녹여 버린다. 전통적인 개념은 부식되고, 그 자리엔 옛날의 주요 지형지물은 알아볼 수 있지만 그 근본은 완전히 변형된다.


생물학에서의 만능산

2부와 3부에서는 1부에서 정리된 다윈주의의 개념, 즉 만능산을 통해 뒤바뀐 경관들을 살펴본다. 2부는 '생물학' 자체의 내용이다. 앞서 나는 이 책이 '고도로 발전된 과학자라면 할 만한 말들'이라는 개인적인 비평을 말했는데, 바로 2부에서 적용될 만한 비판이었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예전에 도킨스 vs 굴드 싸움에서 겪었던 여러 주제들(스팬드럴, 적응주의 등)에 대한 세부적인 주제에 천착하고 있어서, 특히 나의 비평에 있어서 잘 들어맞는 부분이다.


- 생물학은 공학이다: 역설계, 또는 역공학이라는 공학자들의 전략은 생물학에도 적용할 수 있다. 다윈의 아이디어는 '자연선택 그 자체'가 어떤 이유나 합리적 근거를 통해 이런식으로 생물을 설계했는지를 궁금해할 수 있다고 허락해 주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연선택은, 공학자들과는 다르게, 선견지명이 전혀 없다. 그것은 미래를 예측하지도 못하고, 비효율적인 수많은 설계를 다양하게 생산하는 낭비적 과정으로 진행된다.


- 적응주의: '적응주의'란 생명체의 특징들(기관, 행동, 심리구조 등)이 강력하게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관점이다. 데닛은 '적응주의적 추론'야말로 진화론의 심장이자 영혼이라고 말하지만,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은 과도한 적응주의에 반대한다. 그들은 '스팬드럴'이라는 개념을 통해 적응주의의 논리를 파쇄하려고 한다. (그 유명한 도킨스 & 데닛 vs, 굴드 & 르원틴 논쟁이다.)


- 스팬드럴: '스팬드럴'이란 건축에서, 아치 위에 생기는 '구조적인 필요성'이 없는 부산물이다. 굴드와 르원틴의 주장에 따르면, 생물의 특징들 중 상당수는 이 스팬드럴처럼, 적응주의적일 필요 없는 부산물들이라는 것이다. 강력한 적응주의자로서 데닛은 스팬드럴 논점을 강하게 비판하고 반증한다.


마음, 의미, 수학, 도덕에서의 만능산

데닛의 주장은 다위니즘의 위험한 사상이 생물학의 장벽을 넘어 인류의 사상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므로, 2부에서 3부로 넘어가는 순간이 바로 이 책의 가장 의미심장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섹션에서는 '밈'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도킨스의 충실한 '강아지'인 철학자 데닛이 도킨스로부터 가장 영향을 받은 부분은 바로 생물학이 아닌 밈이었을 것이다.


인간 문화의 모든 성취들 - 언어, 예술, 종교, 윤리, 과학 - 또한 그 자체로 생명의 나무와 근본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예술에도 종교에도 글자 그대로 '신성한 영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밈도 섬이 아니며, 그것은 생명의 나무와 같이 모두 연결된 것이다. 문화는 밈의 형태로 인간의 뇌에 침입했으며, 인간의 마음은 밈에 의해 만들어졌다. 특히 우리가 이기적 유전자의 명령을 초월할 자율성이 주어진 이유는 바로 이 밈 때문이다.


밈을 구성하는 것들 중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무언가는 바로 '언어'일 것인데, 언어는 실제로 과학과 인문학을 가르는 중심 주제이기도 하다. 인문학이 언어'만'을 토대로 커뮤니케이션한다는 점에 있어서(과학은 수학이나 실험 결과 등의 수단도 따로 있다) 언어는 중요하다. 하지만 노암 촘스키의 언어 이론이 등장했을 때, 우리는 언어조차 과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직감했다.


그럼에도 촘스키가 언어학을 자신의 손에서 쥐고 과학의 영역으로 쉽게 보내려 하지 않는 고집이 감지된다. 촘스키가 우려하고 거부하는 게 바로 '다윈의 위험한 생각', 즉 진화론이다. 촘스키의 주장에 따르면, 언어는 진화하지 않았다고 한다. 글쎄, 초강력 만능산 앞에서 이런 나이브한 주장이 어떻게 먹힐 수 있을까? 언어가 진화하지 않았다면, 언어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단 말인가? 저절로? 스팬드럴로써? 당연히 언어는 진화해서 만들어졌을 수밖에 없다. 촘스키의 주장은 틀렸다.


언어가 진화했다면, 이제 언어와 엮인 여러 철학적 주제들, 의미, 지능, 도덕마저 그 만능산에 의해 부식될 것이다. 의미가 어떻게 '무의미', 즉 알고리즘에 의해 생길 수 있을까? '의식'이 있어야만 의미가 생기는 것 아닐까? 앗, 이 사고방식은, 결국 생물의 '설계'란 뜻이 있는 신에 의해 생겨야만 한다는 주장과 논리적으로 다를 바 없다. 의미 또한 무의미로부터 창출될 수 있다.


의식 또한 마찬가지이다. 괴델의 정리에 때문에 '인공지능의 구현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다. 바로 유명한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의 주장인데, 물론 다윈의 만능산은 이것조차 녹인다. 로저 펜로즈의 주장을 따라가자면, 대체 의식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로저 펜로즈의 주장은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의 중력 이론, 그리고 그 둘의 결합을 통해 만들어지는 '슈퍼 물리학'이 있어야만 의식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이건 입증 책임을 뒤로, 인류가 발딛지 못한 영역으로 무한정 미루는 행위에 불과하다. 결국 의식조차 '무의식'적 설계에 의해 만들어진다.


만능산의 해악, 또는 축복

그래서 만능산인 다윈의 생각은 해악인가? 그것은 모든 것을 녹이고 무엇을 남겼는가? 데닛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이 모든 것을 통과하고 나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들의 더 강력하고 더 건전한 버전들이 남겨진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해 왔다. 전통적 세부 사항들 중 일부는 소멸되고, 또 일부에는 유감스러운 손실이 있겠지만, 그 나머지를 위해서는 오히려 속 시원한 이별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아름답고 경이로운 관점을 얻는다. 초창기에 신이 없어도, 의식이 없어도, 의미가 없어도 이 아름다운 복잡성이 풍만한 세계가 구축될 수 있다는 관점. 무의미로부터 의미가, 알고리즘으로부터 의식이, 진화로부터 언어가 탄생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지성, 그게 바로 우리다. 무지능으로부터 탄생해 다윈의 알고리즘을 이해하게 된 우리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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