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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깊은 역사 - 지구의 기원을 찾아가는 장대한 모험
마틴 러드윅 지음, 김준수 옮김 / 동아시아 / 2021년 8월
평점 :
우리는 지구에 대해 많은 지식을 알고 있다. 지구의 나이는 45억 몇천만 년이고, 지구의 지각은 맨틀을 둥둥 떠 다니는 판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판들의 충돌로 산맥이 생기고 지진이 일어나고, 땅에는 퇴적이 일어나고, 지층이 쌓이는 순서에 따라 지구의 표면에 살았었던 과거의 생물들의 화석이 발견되고, 그 퇴적암의 방사선 연대측정을 통해 실제 지층이 퇴적된 연대를 측정하고, 지층에 녹아 있는 물질을 통해 기후와 온도와 이산화탄소 농도와 심지어 소행성의 충돌 연대까지 추정 가능하다.
누군가는 “우리는 아직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고 하겠지만, (이 수사는 과학자가 아닌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면, 종종 과학을 통한 앎의 보잘것 없음을 까내릴 때 사용되곤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얘기란, 종교와 영혼과 인간의 마음에 대한 한 줌의 주관적 성찰들 뿐이다), 이만하면 우리는 지구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된 셈이다. 21세기 초 현 시대 인류가 누적적으로 알게 된 성취다. 과학 혁명 이후의 폭발적인 ‘앎의 증가’를 현재 시점으로부터 역산해보았을 때, 이전의 인류는 지구에 대해 정말 아는 것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그들이 아는 것은 ‘지구는 7일 만에 창조’되었고, ‘대홍수로 인해 생명체가 거의 절멸할 뻔했’다는, 완전히 틀린 사실들 뿐이었다. 21세기 초에 사는 인류는, 비록 러시아와 중국의 패권 팽창과 지구온난화의 위협과 저출산과 국가소멸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은 인간들이지만, 적어도 지구의 역사에 대한 앎에 있어서 꽤 만족스러운 발전을 했다. 우리는 거만하게 과거인들에 대해 이런 관점을 가진다. “아니, 우리가 딛고 사는 보금자리, 지구에 대해 아는 게 그렇게 없었다고? 천지창조? 대홍수? 그런 신화적인 얘기를 진지하게 믿었다는 거야?”
이 책, 마틴 러드윅의 ’지구의 깊은 역사‘는 지구의 역사에 대한 역사책이다. 역사에 대한 역사?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지구 역사에 관한 인류의 관점 변화를 역사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기독교 성경의 창세기를 참조했던 오래 전 시절에 지구의 과거를 곧 인간의 역사와 동일한 관점과 방법론으로 조사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후로 지층과 화석을 연구해 지구가 사실은 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광대한 시간의 과거에 생성되었고, 그 충격적으로 길고 긴 역사에서 인간은 (창세기의 상상력보다도 훨씬 길고 삶이었지만 그것마저 전체 지구의 역사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역사임이 밝혀진다. 이후로도 인류는 방사능 연대측정, 빙하 코어 조사, 지자기 기록 조사 등의 물리학적 조사를 통해 지구의 역사는 더 상세히 밝혀지고, 또 그 근본 작동 원리마저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러한 지구사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대한 책이다.
우리는 당연하지만 지질학, 층서학, 화석학, 지구연대학, 지구물리학 등 지구과학이라고 부르는 모든 분야들을 과학의 한 분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시초는 현대의 과학의 태도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성경 창세기에 대한 재해석, 그리고 역사학적 방법론을 적용한 분야였다. 지구의 역사를 연구하려 하던 사람들은 역사학자였고, 그들은 성경에 언급된 4000년 전의 대홍수의 증거를 찾으러 다녔다. 아니, 사실은 발견된 증거를 대홍수의 정황에 (억지로) 끼워맞추는 방식에 대해 고민했다. 21세기 현대과학의 입장에서 이건 너무나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과학이란 모름지기 포퍼식 반증주의에 입각해, 가설을 세우고 증거를 조사해 입증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물리학과 천문학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성경의 증거에 입각해 천동설을 주장하던 성경학자들에 반대해, 코페르니쿠스는 사실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충격적인 인식의 전환을 일으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당시엔 코페르니쿠스의 증거들은 오히려 천동설보다도 잘 들어맞지도 않았다. 하지만 결국 지동설이 천동설을 이기고 천문학의 정설이 된다.
아~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의 전환이구나! 그러니까, 그걸 말하는 거 맞지? 성경의 대홍수에 증거들을 끼워 맞추던 성경학자들에 반대해, 코페르니쿠스 같은 위대한 대 지질학자가 나타나 4000년 전의 대홍수란 없었고 지구의 역사는 성경이 말하던 것보다 몇만 몇억 배 더 오래되었다는 걸 설파하게 되었다는,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의 전환과 과학 혁명의 구조 말이지. 게다가 우리는 여기서도, 현대까지 여전히 끈덕지게 설파되고 있는 창조론 대 과학의 대립의 역사까지 논할 수 있을 거야. 결국 비이성적인 성경에 입각한 창조론은 이성의 끝판왕 과학에 의해 대체되어 간다는 거지.
글쎄, 이 책의 저자 마틴 러드윅에 따르면, 지구의 역사 연구에 있어서는 그런 스토리가 아니다. 지구 역사의 연구에 있어서, 성경의 대홍수와 역사에 대한 연구는 적어도 ‘문제제기는 했다’는 점에 있어서 큰 족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대홍수의 증거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천지창조까지 소급해 지구의 연대가 ‘몇 년도’였는지를 어느 정도 추정하려고 노력했다. 그게 완전히 틀린 결과였지만, 적어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즉, '문제제기'는 했다. 책에 나오지 않는 얘기지만, 동양(유학)에서 지구의 연대기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던 건 아마도 성경에서처럼 지구의 역사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추정해 본다. 서양에서는 학자들이 대홍수의 연대를 입증하기 위해 증거를 찾아 헤맸다고는 하지만, 증거가 어느 정도 쌓이면 또 대충은 중립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여유도 생기는 법이다. “어? 이 증거는 대홍수의 증거로 보기엔 좀 어려워 보이는데?”라는 관점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지구의 역사에 대한 과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의 절차와는 달리 좀 이질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지구의 역사에 대한 과학은 다른 과학분야가 가지지 않은 연대기에 대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실상 역사학과 다를 바가 없다. 역사적 기록물을 증거로서 채택하는 역사학자들과 ‘거의 비슷한 절차로’ 지구역사학자들은 화석의 기록과 지층의 쌓인 순서의 기록을 연구하며, 그 절차는 가설 검증과 반증주의에 입각한 다른 과학 분야와는 다르다. 물론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해석과도 결이 잘 맞지 않다. (굳이 무리하게 거기에 끼워 맞추면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단적인 예로, 나는 지금까지 지구과학의 ‘판 구조론’이라는 잘 발전된 이론에 대해 뉴턴 역학과 같은 지위를 부여하였었다. 판 구조론이 나오자마자 과학자들은 기존의 패러다임 (대륙 간 다리가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가설)을 폐기하고 지금까지 나왔던 모든 증거들을 판 구조론에 입각해 다시 해석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판 구조론은 뉴턴 역학처럼 한 명의 위대한 과학자에 의해 짜잔 하고 나타나지 않았다. 특정할 수 없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서서히 판 구조론에 대한 가설과 이론을 세웠고, 그게 그냥 서서히 정설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정도의 패러다임의 전환은 지구 역사 연구에 있어서 꽤 많은 부분 일어났다. (예를 들어, 대홍수 가설의 폐기, 화석의 발견, 격변설, 진화론의 정립, 방사능 연대 측정법 등)
최신 지구물리학적 방법론이 발전된 현재의 지질학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기록물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연대기를 확립하는 역사책과 동일한 태도로, 현대의 지구물리학은 방사능 연대 측정과 빙하 내부의 산소 농도와 지층의 이리듐 비율을 살펴본다. 그것은 언어로 되어있지 않을 뿐,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지구에 대한 역사 연구는 성경의 창세기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거기에 종사하고 있는 과학자 마틴 러드윅은 자신의 학문이 태초엔 종교적 기록물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그리고 그 전통이 여전히 자신의 학문에 이어져 있다는 점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책이 창조설을 찬성한다든가 동의한다던가 하는 건 아니다. 자신의 사적인 믿음에 입각하지 않고, 증거를 토대로 진실된 역사를 추정한다는 점에서, 지구에 대한 역사 연구는 과학이라고 불러줄 만하다. 고로 이 분야는 창조설을 당연히 거부할 수밖에 없다. 거짓됨 없는 진실에 대한 추구라는 점에서, '지구의 진실된 역사'를 사실에 가깝게 밝혀 낸 이 위대한 분야에 대한 존경심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