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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방랑
등원신야 / 한양출판 / 1993년 10월
평점 :
품절
정말 오랜만에 책을 한권 읽었다. 후지와라 산야가 쓴 인도방랑.
1년 반 전쯤 일이다. 친구가 책 한권을 권했다. 인도음악여행을 읽고난 뒤 떠오른 책이라며 권했던 책이 바로 후지와라 산야의 인도방랑이었다(사실 그책과 비교할 수 없는 책이다). 빌리기는 했는데 대충 머리말만 훑어보고 읽지 않았다. 1년이 지난 지금 그 책을 읽었다. 바로 내가 원하던 책이었다. 읽는 동안 인도에서의 이런저런 추억들이 떠올라 행복했다.
인도방랑은 일본사람 후지와라 산야가 스물 다섯 살 청년 때인 1969년 두 번째 인도여행을 하며 듣고 보고 느꼈던 것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 낸 기행서다. 단언컨대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인도기행문보다 꾸밈없고 재미있고 게다가 깊이까지 있는 책이다. 목숨을 걸었다고 할 정도로 치열한 책이다. 사실 그렇다. 목숨 걸 정도의 절박함이 있어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에 비하면 그곳에서 나는 얼마나 편안하게 지냈으며 리얼리티 속으로 좀더 다가가길 싫어했던가.
후지와라 산야만큼의 내공이 쌓일 때 다시 한번 도전하리라.
아무튼 인도든 어디든 진정한 여행을 꿈꾼다면 이 책을 텍스트로 삼을 것을 권한다. 안타깝게도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하기 힘드므로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가시길. 기대했던 것보다 더 놀라운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정말 재미있던 건 후지와라 산야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방랑하고 다녔던 1969년이나 내가 룰루랄라 태평하게 지냈던 2004년이나 인도는 똑같다는 것이다. Incredible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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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라고 해서 성인이나 좋은 사람, 소박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에요. 악인, 속인이 마구 뒤섞인 인간 박람회장 같아요. 일본은 그 폭이 평균적이지만 인도의 경우는 성과 속의 폭이 놀라울 만큼 벌어져 있습니다. 카스트가 백 가지 정도 단계가 있다고 하면, 그만큼의 인간의 격=성과 속의 베어리에이션이 있어요. 어떤 베어리에이션의 격으로 만나는가에 따라 자신의 격이 보이는 것이지요. 류(類) 는 류를 부른다고 말하지요. 여행은 정말 그래요. 보잘 것 없는 여행을 하고 있을 때는 보잘 것 없는 사람과 만나요. 툭 터지고 좋은 여행을 하고 있을 때는 백 명 중 팔십이나 구십은 높은 격의 인간과 만나게 됩니다. 나는 최고의 인간과는 만나지 못했는지 몰라요. 그러나 높은 인격의 인간과 만나는 여행이 꼭 좋은 여행은 아니죠. 중요한 점은 한없이 비천한 사람에서 차원 높은 인간까지, 오히려 얼마만큼의 베어리에이션이 여행중에 전개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행의 풍요로움이라고 생각해요.
31쪽, 버리기 그리고 준비하지 않기, 인도방랑, 후지와라 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