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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 바로쓰기 3 ㅣ 오늘의 사상신서 172
이오덕 / 한길사 / 199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오덕 선생님은 아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꾸밈없이 드러나는 글쓰기 교육에 앞장서셨고, 그렇게 모은 아이들의 보석같은 글들에 바로 문학성이 있음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거짓 삶과 억지 교훈으로 가득 찬 어린이 문학이 아니라, 꾸밈없는 삶과 생생한 교훈을 담아내는 일이 어린이 문학이 나아갈 방향이라 늘 주장하고 실천하셨다.
이오덕 선생님이 하신 일은 두루 값지고 어느 것이든 우리가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되겠지만, 그 중에서 특히 큰 가르침은 우리말과 글을 바르게 쓰는 일이다. 우리말과 글을 바로 쓰는 문제에 대한 선생의 연구와 주장은 <우리글 바로쓰기 1,2,3>,<우리 문장 쓰기>,<우리말 살려쓰기 하나,둘,셋>와 같은 여러 책으로 나와있다.
요즘 텔레비전에는 우리말 실력을 겨루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으고 있고, 우리말에 대한 책들이 활발히 출판되고 소개되는데, 이런 프로그램과 책들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뭔가 방향이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뎀뿌라’를 ‘튀김’으로 고치고, ‘천둥벌거숭이’, ‘두루뭉수리’, ‘깜냥’ 따위 잊혀져 가는 순 우리말 어휘를 다시 외우는 것이 우리말을 살리는 길일까?
선생은 우리말 바로 쓰는 일을 크게 벌이기 위해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모임을 만들고 여러 책자를 펴내셨는데, 모임을 만들기 위해 참여한 사람들과 운동의 방향을 놓고 많은 갈등과 논쟁을 겪었고 결국 모임을 스스로 포기하기에 이른다. 선생이 그토록 비판해서 깨뜨리려 했던 ‘잘못된 우리말 살리기 운동’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말을 쓰는 일을 또 하나의 실력으로 만드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었다. 사람의 삶과 떼놓을 수 없는 글쓰기와 노래를 실력이란 잣대로 줄을 세우고 팔아먹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글과 노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저 소비만 하듯이, 우리말을 쓰는 일을 공연히 어렵게 공부해야 하는 일로 만들어 버리면 과연 우리말을 살리는 운동이라 할 수 있을까.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생활에서 조금씩 실천해야 할 일들을 실력이라 포장해서 팔아먹는다면 결국 이것은 성공할 수 없음을 이오덕 선생은 아셨던 것이다.
우리말 어휘를 많이 맞춘답시고 ‘우리말 달인’이라는 칭호를 붙이는게 올바른가. 선생은 우리말 쓰는 일이 유식함을 자랑하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되는 일을 결코 바라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유식한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말을 망치고 있다며 소리높여 비판하셨다.
선생은 우리말과 글을 살리는 일은 농사꾼이 하는 말처럼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과 글을 나누면서 아무도 따돌림 당하지 않도록 말과 글을 쉽게 쓰는 일이고, 잘못된 글버릇들을 고치는 일이라고 하신다. ‘와리바시’를 ‘나무젓가락’으로 고치는 일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런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한다. 한 나라 말의 어휘가 어떤 역사 사건 때문이든 다른 나라 말체계에 퍼져서 쓰이는 일은 어찌보면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정기적으로’→‘때를 정해서’, ‘전자, 후자는’→‘앞의 것, 뒤의 것’, ‘매달, 매일’→‘달마다, 날마다’로 고쳐쓰는 일이 더 중요하고, 일본말과 영어가 망쳐놓은 우리말법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일이 바로 우리말을 올바르게 쓰는 일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김 선생은 그러나…’처럼 앞뒤가 바뀐 일본말법을 ‘그러나 김선생은’으로 , ‘엄마와의 말다툼’처럼 매김씨를 겹쳐 쓰는 일본말법을 ‘엄마와 말다툼 한 일’로 고쳐쓰는 것들이 되겠다.
우리말을 쉽게 쓰는 일, 꼬여버린 우리말법을 부드럽게 푸는 일인 만큼 ‘우리말 실력’이 필요한게 아니라, 꾸밈없이 솔직히 쓰는 태도, 소박한 우리말을 지키려는 ‘작지만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