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빵파랑 - My Favorite Things
이우일 글.그림 / 마음산책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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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 고백하건대, 나는

이 책을 사지 않을 것이다. 오기로,

안 사련다. 별 쓸 데 없이 부리는 오기이긴 하지만,

배가 아프다. 마음도 좀 아프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이라고 작게 중얼거려 본다. 그리고 일초도 지나지 않아, 이 무슨 배부른 소리인가, 탄식한다. 그러나 , 사실 그 탄식은 잘못되었다. 배불러야 한다, 힘들수록, 배부른 생각으로 힘 얻어야 한다.

 

사실,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고 이내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단지 그 단순한 메커니즘대로 움직여줄만큼 내 마음에, 당신의 마음에 여유가 없어졌을 뿐이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면 이내 행복해질 수 있던 시절, 그러나 지금 세월은 그렇지 않다, 라고 탄식하는 나 자신의 마음의 늙음을 본다. 그래서, 이 책 보면서, 배가 아팠고 마음이 아팠다.  '좋아하는 것들'로 소통했던 시절, '좋아하는 것들'에서 힘을 얻었던 시절,은 이미 너무 과거가 되었지만, 과거가 되었지만, 정말 과거가 되어 버렸나, 지금은 안 되나? 쩜쩜쩜.

 

저자가 늘어놓는 '훼이버릿 싱즈'는 사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며 저자 개인에게나 의미있을 법한 것인데, 저자와 털끝만큼의 친분도 없는 나는 왜 그것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지 나 자신 멋적어진다. 그의 고양이와 딸과 아내와 함께 하는 일상, 지금의 시간들. 그리고 시간의 축적들, 축적된 시간들의 궤적들, 그 단면들이 하염없이 보기가 좋다, 사랑스럽다, 아무리 과거는 미화된다지만, 그래도, 그래도 참 '무독성'이라, 각종 인간관계의 공해에 찌든 마음에 새삼스럽게 울림을 남기는 것이다. 좋아한다는 것, 사람이 선해지는 순간.

 

좋아한다는 것,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것, 그건 참 순한 거다. 단순한 거고, 순수한 거다. 그것만으로 세상을 살 순 없지만, 그것을 잃고 산다면 삶이 너무 팍팍한거다, 독한 거다. 이 책을 읽고, 덮고, '옥수수빵파랑'의 탁월한 색과 판형과 질감의 커버를 만지며,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는 시간, 그게 사실 북극성처럼 인생의 올바른 방향을 말해준다는 것, 너무 단순한 사실인데, 그걸 참 잊고 산다, 우리는. 가끔씩 이렇게 누군가 상기시켜줘야 한다.

 

이 단순한 사실을 상기시켜준 저자에게, 그리고 이런 책을 만든 출판사에게 고맙다.

이 책을 곁에 두고 만지작거리고 싶다, 어쩌면 집에 가는 길에 사고야 말 것만 같다.

 

사족, 이우일의 만화컷의 재기발랄함이 단연 돋보이고, 또 시각적으로만 보아도 매우 감각적이다. 정말 이미지가 받쳐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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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6-21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눌렀습니다.^^

무심 2005-06-21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빠르시군요^^ 저만 빠른줄 알았더니^^;; 감사합니다

2005-06-22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심 2005-06-22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비밀리에남겨주시면 제가 어떻게 답글을 해야할지..아무튼 감사해주시니 감사합니다~쑥쓰럽네요. 아니 이건 제가 해야할 말이 아닌가요? ㅎㅎ)
 
박훈규 언더그라운드 여행기 - 젊은예술가의 세계기행 2
박훈규 지음 / 안그라픽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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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이다.

달리 사변적인 말을 덧붙이고 싶지 않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 원체 20대는 방황하는 시기인 것 같다. 문제는 제대로 방황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시행착오가 훗날 무엇이 되는지, 어쭙잖게 겉멋든 방황과 어떻게 다른지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저자 개인의 인생에 대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저자 역시 대단한 인생의 비밀을 밝히려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방황의 흔적들, 방향들, 그 지표들을 불연속적으로 보여줄 뿐이지만, 그 시간의 공백들은 방황의 진수를 보여주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불연속적인 지표들 속에 방황의 행적과 감성들이 모두 들어 있다. 읽는 이에게 손상없이 전달된다. 그의 멋드러진 크로키는 그 감성의 구체적 증명이다. 순간들이 들어 있는 소박한 그림들은 그것 자체로 살아 있는 것 같다.

 

책은 왼쪽에 글, 오른쪽에 그림으로 구성되었다. 오른쪽에는 그가 그린 그림 및 사진들이 실려 있다. 호주, 영국의 풍경들, 특히 지하철 안 사람들 크로키들이 많다. 지하철에서 조는 사람을 그린 크로키 중에 이런 메모가 적힌 것이 있다. 살다 보면 미치게 졸리는 때가 있다. 그럴 땐 자야 된다. 그래야 깨어난다. 정확한 인용은 아니나 이런 내용이다. 대충 보면 못보고 지나가기 쉬운 흘려쓴 글씨의 메모. 내게는 이게 이 책의 컨셉트 같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라면 난 그렇게 말하겠다. 졸릴 땐 자야 한다. 그래야 깬다. 흔들릴 땐 방황해야 한다. 그래야 길을 찾는다. 문제는 열심히, 몸으로, 솔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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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아트 다빈치 art 13
장 뒤뷔페 지음, 장윤선 옮김 / 다빈치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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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은 아르브뤼 예술가들을 소개한다. 27명으로 간추려진 그들,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실려 있고, 때로 그들에 관한 기사 내지 리뷰 등이 덧붙여져 있으며, 그들에 대한 간략한 개인정보와 작품제목이 이 책 내용의 전부다. 아웃사이더 아트라는 것에 대한 개념설명이 부가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아웃사이더 아트에 대한 평가나 찬사나 기타 그런 것들을 위한 것은 아닌 듯하다. 아웃사이더 아트를  말 그대로 '소개'하는 데 충실한 책, 단순한 구성이 돋보이는 책이다.

 동시에 이 단순한 구성은 이 책의 미덕이다. 나는 이 책을 일부러 설명은 제쳐두고 그림만을 먼저 훑어 보았다. 몇살때 부모를 잃고, 몇살때부터 정신이상증세를 보였으며, 언제 병원에 감금되어...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비록 그것이 독자가 참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일지라도, 괜히 그런 관념에 사로잡혀 어떤 동정적인 시선, 혹은 환타지가 가미된 시선으로 보게 될까봐 말이다.

그림들은 그것 자체로 심미적 쾌감을 주었다. (물론 내 취향에 따라 싫고 좋은게 있으나.) 이미지들은 생생하고 자유로우며 어딘가 미친듯한 구석이 있다. (이건 '정신병원'에 상응하는 '미친'이라는 개념이 아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종전에는 이런 '작품'들을 본적이 없다. 이처럼 제멋대로이고 통제되지 않으면서도 솔직한 것들은 본적이 없다.

 2.

카발라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한다. '자신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재예의 씨앗을 발화해야 한다. 한 영혼이 한 생에 중에 이 같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 영혼은 하느님과 재회할 자격을 부여받지 못하고 제 2의, 제 3의 생애를 계속 살아야 한다.' 정확친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인데, 요지는 인간은 본래적으로 예술성을 갖고 태어나며, 그것을 발현해야 온전한 존재가 된다,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또 피카소는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인데, 문제는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느냐, 라고 했다 하고. 또 어떤 누군가는 병든 자만이 책을 읽는다 하고, 사회 부적응자와 예술의 연관성을 들추어내기도 한다.

이들은 왜 그렸을까?

이 독창적이고 철저히 개인적인 표현행위는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그들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너무 부정적인 표현인지 모르겠는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삶을 지탱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미치지 않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그냥,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그들에게 필요했던 최소한의, 최후의 행위가 아니었을까. 그냥, 살기 위해. 아르 브뤼 그림들이 보는 이의 마음에 묵직하게 남는 것은 그것이 사멸하지 않고 존재하기 위한 사투의 흔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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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림 좋아하세요? - 어느 불량 큐레이터의 고백
박파랑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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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건 도발적인 한 문장때문이었다.

 '나는 그림을 모른다.'

 큐레이터라는 사람이 (그게 뭔진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 쪽 업계 종사자 아닌가?) '나는 그림을 모른다'라고 말한다는 것 자체도 참 도발적이고, '나는 그림을 모른다? 그럼 나는 아나? 다른 누군가는 아나? 그림을 안다는 건 뭔가? 그림을 꼭 알아야 되나?' 등등 여러가지 가치론적인 물음들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또한 꽤 자극적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그림을 모른다고 운을 띄웠겠다? 그러면 그림을 안다는 게 뭔지에 대해 말해주겠군' 이라는 속물스러운 기대가 있었다. 그림에 관심은 있지만 그림이 무한히 신비로운 대상으로만 느껴지는 일반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안다' 쪽에 조금이라도 접근할 수 있다면 유익한 기회가 아닐 수 없으니까. 그러나 책을 펼치자마자  저자는 말한다.

 다음의 독자들은 읽지 말 것. 1. '그림을 알고자 하는 사람'.  2.…. 

 자, 나의 은근한 기대는 일언지하에 좌절되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뭔가 있겠지 겸연쩍게 웃으며 나는 책장을 넘겼다.

 

초반에 저자의 문제제기와 고백은 사뭇 전투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매우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뭐가 좋은 그림인가, 그림을 좋아한다는 건 뭔가, 그림을 왜 보나 등등 근본적인 물음들이 나온다.) 그 중 특히, 도대체 전시의 소개글은 왜 그렇게 현란한 철학적, 미학적 개념들로 가득차 있는가? 정말 그것들은 그 전시를 소개하는 최선의 장치인 걸까? 와 같은 저자의 물음은 개인적으로 열화와 같은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그 통렬한 문체에 있어서는 비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사뭇 고백적이고 근본적인 물음들에 이어서는 아마도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일반대중에게는 생소할, 미술이라는 것을 둘러싼 매우 유익한 정보들이 소개되어 있다.  

 가령 전시를 본다고 하면 작품과 나, 작가와 나만을 생각하지만(나는 그렇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에 덧붙여 이 둘을 중개하는 그 공간과 중개자들의 존재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작가라는 것, 정확히 말하면 전업작가이겠는데, 아무튼 그것에 대한 나의 나이브함에 대해서도 목격하게 되었다. 나는 전업작가, 특히 그린다는 것은 말도 못하게 순수하고 정신적이며 고행에 가까운 작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사실 '예술가'라는 개념에 대해 사회가 부여한 일종의 환상에 가까운 지도 모르겠다. 그림이건 글이건 음악이건 번역이건,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인지도를 갖고 있지 않은 이상, 나의 작업을 대중에게 알리고, 나의 작업에 적합한 금전적인 거래를 성사시키고, 보다 효과적인 거래를 도와줄 중개자와 접촉하고, 그 외 여러가지 '작가'로서의 생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사교적인 '작업'이 또 필요하고. 그렇디는 것. 이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말하자면 '작가'의 현실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현실적인 상상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림을 어떻게 볼까, 그림을 왜 볼까, 작가들은 어떻게 먹고 살고, 전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며,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어떤 거고, 화랑들은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고, 작품을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며, 미술비평이라는 게 어떤 거고, 현재 한국의 비평이라는 것의 돌아가는 상황이 어떠며 등등등. 저자가 큐레이터인만큼 그림의 '유통'에 대한 비중이 큰 편인데, 그 역시 일반 대중도 알아둘만한 유익한 이야기들이다. 물론 그림을 보고, 또 (장차) 사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으며 든 생각은, 독자로서의 얻은 이득도 이득이지만, 이 책이 어쩌면 저자 자신에게는 아직까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회고록 같은 게 아닐까 라는 것이었다. 예술학과를 다니던 대학시절의 고민지점부터 시작해 그 이후 화랑의 큐레이터로 시작한 이 쪽 업계에서의 직장생활까지, 자신이 어떤 고민을 했고, 무엇을 배웠으며, 무엇에 넌덜머리가 나는지, 또 어떠한 희망이나 전망을 갖고 이 시점이 있는지 등에 대한 반추. 어쩌면 책 한 권 자체가 치열한 자기반성의 과정으로도 보인다.

('나는 그림을 모른다'. 역시 무엇인가를 '모른다'라고 솔직히, 그리고 당당히 고백할 수 있는 자는 그만큼 자신이 있는 자다. 그림을 모른다라고 말하는 그 현재까지 이르기까지 자신은 부끄럽지 않은, 적어도 최선을 다하는 시간을 보냈음에 자신이 있는 자다. 그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요 신뢰가는 점이다. )

 

한 사람의 인생에 그림이 무엇일 수 있을까? 가난한 일개 관객에게 그림을 본다는 것, 전시에 간다는 것, 어떤 그림을 '좋다'고 말한다는 건 뭘까? 글쎄 그건 그냥 잘 모르겠다. 나는 아직까지 해 왔듯이 괜시리 눈길이 가는 그림들을 쳐다볼 것이고, 그 작가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정보를 찾아 기웃거릴 것이다, 취미삼아. 그리고 여전히 그림을 안다는 게 뭔지, 이 책을 읽기 전과 마찬가지로 전혀, 전혀 모르겠다.

다만 미술이라는 것에 대해서 관객의 입장, 작가의 입장, 전시 기획자의 입장, 컬렉터의 입장…  미술이라는 것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한 명의 관객으로서, 발상의 전환이라고 불러도 좋은 만큼 새롭고 유익한 정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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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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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장르는 무엇인가? 어쩌면 무용할지도 모르는 이 물음이 책장을 덮으며 밀려왔다. 물론 반드시 대답을 찾으려고 묻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해괴하리만치 독특한 발상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처음에 이 책을 살  때는 이 책의 자세한 사정에 대해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냥 여느때와 같이 재미있는, 이번에는 좀 독특한 미학에세이려니 하고 집어들었을 뿐이다.

글쎄, 이 책을 뭐라해야 할까? 이 책에 담긴 글들을 한 데 모아 장르적 특성을 뽑아본다면, 그것은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에 관한 글"이라고 밖에 할수 없을 것 같다. 일찍이 이런 책이 있었나? 이것은  "잘 노는(=놀이에 뛰어난)" 한 어른의 "놀이의 궤적에 관한" 글들인 것이다.

나같이 아날로그적인 인간은 책을 재밌게 읽으면서도 "선형적으로", 텍스트적으로, '앞에서 뒤'라는 한 방향으로만 쭉 읽어내려갔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각 챕터에 번호가 매겨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그렇게 의미심장하다는 것을 몰랐다. 이 책에는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의 이미지적 구획이 있을 뿐이다. 또한 목차의 챕터별 번호는 원형으로 매겨져 있지 않은가!  이 책은 저자가 말하듯이 비선형적이며 파편적이다. 어디서부터 읽어도 맞물릴 수 있는 순환적 구조. 

또한 매우 이미지적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양 손으로 책을 잡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책장을 휘리릭 넘겨보라. 순간적으로 눈에 포착되는 그림들은 제 각기 강렬하면서도 적확하여 책의 내용과 흐름을 정확히 환기시킨다. 일찍이 이렇게 '이미지'만으로도 이야기가 성립되는 이런 책이 있었던가?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이 책의 장르는 무엇인가? 이 책은 무엇에 관한 책인가? 이 책은 무엇을 위한 책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도 이 책은 역시, 놀이, "잘 노는" 한 어른의 유쾌한 놀이, 진귀한 장난감들에 대한 이야기라고할까? 그리고 묘하게도 그 안에는 미학적이고 윤리적이고 또 존재론적인 지형이 모두 들어 있다. 저자는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과 놀이의 일치에 대해 언급했는데, 어쩌면 저자는 노동과 놀이가 일치되는 예를 이 책 자체로서 보여주고 있지 않나 한다. 저자는 머리말의 끝에서 enjoy this book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너무나도 경쾌하다. SO ENJOY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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