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꿈 그리고 사상 - C.G. Jung의
집문당 / 198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딱딱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매우 흥미진진하다. 마치 문학작품을 읽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읽는 속도가 붙는다. 일단은 융이라는 개인의 역사가 일반인이 보기에 워낙 특이한 체험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렇다, 적어도 나에겐.

하지만 그보다도 그 체험들이 융의 사상에 얼마나 오롯이 녹아들었는가를 발견하는 묘미 때문에 읽을수록 빠져든다. 논문이나 전공서적을 통해서 융을 접했다면 그 사상들이 어떠한 개인적 토대를 바탕으로 탄생한 것인가 확인하는 기회가 되겠다 싶다. “자서전은 내가 학문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는 관점에서 나의 생입니다. 이 양자는 하나입니다. (...) 내가 어떻게 존재하느냐와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이 바로 융의 학문과 삶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는 점이었다. 학문과 완전히 하나가 된 삶에서 나오는 에너지, 진실성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런 기가 느껴진다.

그 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학자로서 융이 갖고 있는 경험주의적 태도다. 흔히 융은 신비주의자로 알려져 있거나, 비과학적이어서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좀 특이한 학문을 한다고 비춰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차라리 그 반대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사상은 철저하게 그의 개인적, 구체적, 실제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일 뿐 아니라,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연구된 것이기도 하다. (물론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진실성 하나만으로 진리성을 주장할 수 있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그만큼 충분히 체계적인 뒷받침이 되어야 하겠다.) 각설하고, 요는 이 책을 통해 굉장히 경험주의적인 그의 학문적 태도, 그리고 삶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더불어 학자로서, 동시에 경험주의자로서 평생 비합리적인 주제로 작업해야 했던 그의‘고독함’도 마음에 남는다. 그가 고독함과 싸우며 평생을 들여 남겨놓은 학문적 궤적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그래서 더욱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의 학문적 진실성을 훼손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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