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잠보의 사랑 ㅣ 달달북다 12
이미상 지음 / 북다 / 2025년 6월
평점 :
p. 9
내가 생각하기에 잠은 병이자 재능이다.
잠을 소(小) 죽음이라고 한다면
남들은 하루에 기껏해야 여덟 시간을 죽지만,
우리 잠보들은 최소 반나절은 죽고
그것이 정말로 죽어버리는 일을 막아준다.
그리하여 과수면의 은총을 받은 잠보들, …
- 첫 페이지는 옛날의 내 이야기를 써놔서 놀랐음 ..
진짜 12시간은 거뜬하게 잤는데 . .
이제 오전만 되면 눈이 떠지는 아이러니 ..
잠이 정말로 죽어버리는 일을 막아준다는 말이 와닿았음
p. 13
언젠가 나는 아버지가 주전부리로
모나카를 먹다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갑자기 울기에 이유를 물어보니
얇은 껍질이 입천장에 달라붙었다는 것이다.
텁텁한 느낌을 넘어서 그에게는 그 얇은 쌀 과자가
질식에 가까운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목 놓아 울었다.
- 모나카 먹고 모나카 껍질이 입천장에 붙어 울었다..
나도 껍질 붙은 느낌이 정말 싫은데
(울 정도는 아니지만..)
얼마나 민감하면 공포가 되는지 ,,
자신도 이해 못 하는 공포라 더 무서웠을 듯
p. 45
이따금 누나는 개가 우리의 친밀도를 의심하듯
물끄러미 보면 나에게 자기를 한 대 치라고 말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누나의 머리 위로 팔을 크게 휘둘렀다.
누나의 뺨을 때리는 줄 알고 놀란 개가 나에게 달려들려는 듯 짖었다.
한참을 으르렁대다가 누나가 괜찮다는 것을 느끼고는
안심하고 자기 방석으로 돌아갔다.
나중에는 아무리 때리는 척을 해도 본체만체했는데
우리보다 먼저 우리가 연인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 개의 이름 따위는 전혀 나오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 슬펐다.
주인공의 무심함에
p. 52-53
아버지는 갇힌 개들에게 수시로 갔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는 개들을 똑바로 본 일이 없었다.
개로부터 완강히 등을 돌린 채 앞만 노려보았다.
병원 관계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아버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짜증만 났다.
그러나 연인이 부여한 새로운 시각으로 보자,
아버지가 사람들의 침범으로부터
개들을 보호하려 했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 연인의 시선으로부터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어
스무 살보다 많은 나이 차이가 비슷해졌다는 건
연륜에 .. 사랑을 느낀 것인가
아버지가 최대로 낼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
눈물 나도록 슬픈 사랑이다 ,,
p. 60-61
개와 함께 있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잤다.
열두 시간 잤으면서 열두 시간 일하고 온 사람처럼 게걸스레 더 잤다.
잠이 덩치를 불려 집을 가득 메워
누나와 개를 현관 밖으로 밀어내길 바라며 신나게 잤다. ...
어느 날 설핏 잠에서 깨니 누나가 개의 매너벨트를 갈고 있었다.
적어도 네 시간에 한 번은 갈아줘.
처음 누나가 개를 맡기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루 종일 갈아준 기억이 없었다.
축축하고 무거운 기저귀를 벗기자 개가 몸을 발톱으로 긁었다.
누나가 개를 안아 배를 살펴보았다.
하루 종일 오줌에 짓물러 배가 빨개져 있었다.
습기에 차서 쪼글쪼글해진 여린 살이 가물거리는 눈으로도 보였다. ...
매너벨트가 없는 사이에 개가 오줌을 누려 하자 누나가 팔뚝으로 막았다.
누나의 팔에 흰색에 가까운 흐리고 따뜻한 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눈을 감았다.
내가 잔인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더없이 귀찮게 느껴졌다.
- 너무 화가 났다 .. 잠으로 무마하는 모든 게
주인공은 잔인한 게 아니라 책임감이 없는 것이다.
개를 도구로 보고 있는 시선이 바뀌지 않는구나
p. 62
그러니까 한마디로 나는 갓 성인이 된 어리숙한 남성이
지혜로운 연상 연인의 힘으로 회복하고 성장하는
통과의례 서사의 함의만큼, 딱 그만큼 행복하다.
- 그 함의보다 덜 행복할 듯
그냥 짜증 남 다 큰 어른 같나 봐요 지가 ..
지질지질 ..
이렇게 힘 빠지는 결말이라니 ,,
p.73
소설에 관한 글이 덧붙여진 지금,
제가 썼던 소설이 기억나시나요?
지금의 글이 소설을 방해하나요?
아니면 풍부하게 하나요?
아니면 무관하게 느껴지시나요?
- 소설 기억나고, 방해하지 않고, 풍부하게 합니다!!
작가의 말이 있는 책이 너무 좋아요
작가님의 의도나 생각을 엿볼 수 있고
작게나마 자신의 글에 대한 애정이나,,
혹은 글이 써지지 않을 때의 감정이나,,
그런 것들을 알 수 있게 돼서
한 번 더 읽을 때
더 내용을 이해하고 이입해서 읽을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