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하고, - 김민정 산문
김민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회사 다닐 때 지치고 피곤할 때 날 구제했던 것은 다름아닌 '커피'였다. 출근하자마자 동료들에게 웃으면 인사를 하고 커피포트에 전기를 불어넣고 인스턴트 커피를 준비한다. 모닝 커피 한잔, 어쩌면 그 커피 한잔 때문에 회사에 나오는 건가, 착각할 정도로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모닝 커피, 출퇴근 전철에서 졸면서 읽던 책, 퇴근 후 마시는 맥주. 소소하지만 돈과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순간들이다.

 

 

짧지만, 그런 소소한 행복을 책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각설하고,>의 김민정 작가님은 시인이자 편집자이기도 하다. 이 책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아이셔' 같은 책이라고. 사탕 '아이셔'를 아는 사람은 벌써 입에 침이 웅덩이처럼 고였을 것이다. 짧은 산문이라 금방 읽고 다음 페이지를 넘길 때 '궁금증'이 흐른다. 다음은 무슨 내용일까? 쌍욕이 나올까? 아니면 못된 놈에게 똥을 퍼부은 이야기가 나올까? 아니면 쇼킹한 일이 나올까? 하고 말이다. 시인이라 해서 예쁜 단어만 쓰고 매일 안녕하게 사는 건 아닐테다. 솔직함으로 무장한 단어들은 가끔은 자지러지게 웃기기도 하고 몽둥이를 뒷통수에 맞은 듯 얼얼하게 눈물 쏙 빼게도 만든다. 특히 '소주'가 그렇게 생각나게 만드는데 이건 뭐 하와이에서 글 쓰고 있는 하루키 뺨을 찰싹찰싹 때릴 정도다. 꼼장어에 소주 한잔, 짱뽐 국물에 소주 한잔......소주 한 병에 1,100원인데도 왠지 작가님이 말하는 소주는 더 맛있어 보이고 더 폼나 보인다. 글이란 참 뱀장어 같다. 어떤 모습으로 만나는가에 따라 이렇게 달리 보이니 말이다. <각설하고,> 글에서 나오는 고뇌하고 방황하는 소주 한잔이 그렇게 탐날 수가 없었다. 각설하고,

 

 

 

'각설'이란 단어는 잘 쓰지 않는다. 왠지 냉정하고 차가운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근데 이 책을 보니 조금은 달리 보인다. 무턱대고 각목과 각설탕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둘의 공통점이 '각'자가 들어가는 거라서? 설마 내가 물고기도 아니고+_+; 딱딱한 각목과 달달한 각설탕의 만남이랄까? 그 둘이 만나 혼합하면 어떨까? 변태가 아니라면 각목과 각설탕을 한자리에서 보진 못할 것이다. 암튼 엉뚱하게도 이 책을 읽으니 쌩뚱맞게 이 둘이 내 머릿속에서 만났다.

 

 

<각설하고,>은 죽지도 팔딱거리지도 않은 회처럼 섹시하다. 뭔가 보여주는 것 같지만 숨기고, 숨기는 것 같지만 보여준다. 세상이 보는 눈, 시인이자 편집자의 굴레를 벗고 인간 '김민정'이 쓰는 글이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환경과 나이는 달라도 공감이 가는 건 비단 나만일까 싶다. 시인으로 살면서 힘들면 욕하고 좋으면 웃는, 불합리한 일에 대해 당당히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고, 길을 걷는 달팽이들을 보고 가슴을 졸이기도 하고, 아픈 친구가 있으면 같이 아파해 주는, 마치 무슨 일이 있을 때 날아오는 원더우먼 같다.

 

 

<각설하고,>를 읽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삶은 이런거였는데..'

사람 사는 게 다 같을 순 없지만, 그래도 자신만의 길이 다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따라주는 낭만 한잔과 또 누군가가 따라주는 희망 한잔.

낭만과 희망이 따라주는 술이라면 난 언제든 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밤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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