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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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매력에 빠져버렸다. 그동안 짧고 굵게 끝나는 여운이 좋아 종종 읽었지만 요즘은 단편소설만 찾아 읽게 됐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김연수 작가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편소설은 장편소설보다 읽기는 쉽지만, 그끔 급채를 하기도 한다. 짧다고 허겁지겁 먹다보면 종종 생기는 일이다. 그래서 다시 앞으로 돌아가 단어 하나하나를 다시 살피기도 하고. 짧지만 그 안에 넣고자 하는 내용을 적절히, 독자가 아주 잘 소화할 수 있게 넣어야 비로소 맛이 생긴다. 너무 많으면 쉽게 질려 다음 단편들로 넘어가기가 힘들고 너무 적으면 심심해서 책을 덮게 된다. 한국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그 기준, '적당히'란 표현이 아주 적절할 것이다. 적당히, 넘치지도 않지만 모자라서도 아니되는, 독자들 비유 맞추는 게 여간 힘든게 아니다. 그래서 글쓰는 것 자체가 고통이 아닐까?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발표한 단편소설집이다. 11개의 단편소설 제목들이 우후죽순 하얀 페이지에 그려져 있었다. 가만있자, 처음부터 읽기엔 뭔가 조종(?)당하는 것 같고 책 제목에도 있는 단편을 먼저 읽어봤다. 단편소설 제목으로 골라 읽는 재미 또한 '미'치게 '솔솔'하다. 일단 전체적으로 보통 이상의 퀄리티가 있어서 골라 읽어도 상관없었다. 가끔 단편소설집을 읽다보면 처음부터 읽다가 중간중간에 싱크홀처럼 재미없는 단편을 만나면 그야말로 '꽝'을 만난 기분이 든다. 그뒤부터는 신중하게 고르게 되고 초반에 재미없으면 그냥 건너뛰기 일수다. 그럭저럭 봐줄만하면 읽지만 10권에 3~4권 정도는 봐줄 수 없을 만큼 형편 없었다. 이 책도 11편 모두 다 만족할 순 없지만 다른 단편소설집과 비교하자면 정말 아름답고 훌륭했다. 오랜만에 단편소설의 맛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어릴 때만 해도 인생이란 나만의 것만 남을 때까지 시간을 체로 거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되고 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더라. 막상 서른이 되고 보니 남는 게 하나도 없어. 다 남의 것이야. 내 건 하나도 없어.' _<벚꽃 새해>

 

'죽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보게 될 얼굴이 평생 사랑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더라도 그건 불행하다고 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무조건 결혼을 하고, 그다음엔 아이를 낳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전부야.' _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너도 결혼했으니까 잘 알겠지만, 우린 살 만큼 살았잖니? 그러니 인생을 한번 더 살 수 있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하고 살아야지."

_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아무리 잘 쓴 문장도 실제의 경험에 비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작가의 고통이란 이 양자 사이의 괴리에서 비롯했다.

_<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뿐이리라. 한 번뿐인 인생 앞에서 도덕은 무엇이며, 또 윤리란 무엇일까? _<우는 시늉을 하네>

 

엄마는 오히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산 셈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적어도 엄마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고, 끝까지 그 삶을 살아냈으니까. 그건 광원의 삶과 같았다. 광원이란 스스로 빛날 뿐이지, 그 빛으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까지 신경쓰지는 않을 것이다.

_<우는 시늉을 하네>

'타인의 진심이라는 건 꽤 부담스러운 거야.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사슬이기도 해.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진심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사슬을 채우는 건 옳지 않아.'_<우는 시늉을 하네>

 

내가 읽고 잠시 눈을 감았던 단편들이 있다. <벚꽃 새해>,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우는 시늉을 하네>, <파주로>,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다른 소설들도 필링 괜찮았지만 이 작품들은 그중에서도 우등생이었다. 단편소설들이 각기 다른 매력이 워낙 강해서 이들을 묶어 표현할 말이 없다. 과일맛 사탕봉지에 꺼내 먹는 사탕이 아니라 하나하나 독립된 맛의 사탕봉지들이었다. 그 끝은 언제나 달콤했다.

 

<벚꽃 새해> 세월, 후회, 시작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와인, 팔자, 아름다움, 제주도

<우는 시늉을 하네> 늦여름, 후회, 선택, 삶, 도덕적인 삶이란

<파주로> 달, 새벽 드라이브, 추억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소설, 노무현 전대통령, 아픔

허허....모두 하늘에 떠 있는 별, 달, 태양, 구름 같다. 맑고 투명하고 따뜻하다. <벚꽃 새해>를 읽다보면 예전 여자친구가 떠오르고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을 읽다보면 비오는 날 제주도에 가고 싶고 <우는 시늉을 하네>를 읽다보면 <늦여름>이란 소설과 함께 떠나고 싶고 <파주로>를 읽다보면 소식 끊긴 친구들에게 연락하고 싶고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을 읽다보면 치과에 가서 내 이빨을 하나 뽑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고....이들 소설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아련하게 마음속으로 파고든다는 것이다. 마무리가 확실하게 end로 끝나는 소설은 한 편도 없었다. 내가 마지막을 채워야 할 것 같았다.

 

김연수 작가님이 소설을 참 맛깔나게 잘쓰느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참 똑똑하고 재치 있는 소설가다. 어떤 이야기, 어떤 단어를 쓰면 독자들이 특정한 대상이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야기의 진행 방식이나 그 시대에 맞는 단어 사용이나, <응답하라 1994>처럼 그 시대의 향수에 빠져들게 만든다.

 

인생이란 무엇이며 도덕적인 삶은 무엇인가? 소설을 잘 소화한다는 건? 책을 읽는다는 건? 어떻게 살아야 성공하는 인생일까? 책에는 대답대신 의문형으로 도리어 내게 물었다. 인생에 실패와 성공이 어딧냐고. 세상 사는 게 내 마음대로 된 적은 있냐고. 절망적인 그리움에 눈물흘려본 적 있냐고. 죽을 만큼 아팠을 때 손 내밀어 본 적 있냐고.......

 

덕분에 난 선택할 수 있었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겠다고. 눈치보며 살지 않겠다고 말이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마냥 따뜻하게 감싸주는 소설은 아니지만 읽는 동안 내내 이 책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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