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작품! 언어의 천재 마술사_ 나보코프 <절망>

절망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1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최종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혹시 나보코프의 작품을 하나도 안 봤다면, 관뚜껑에 들어갈 때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나보코프 작품들을 보면 눈이 쫙 찢어질 정도로 놀랍다. 어찌 그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있을까? 흔히 글을 잘 쓰는 작가란 춤을 추는 단어들,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드는 흡입력, 영원히 기억할 만큼 여운 달달한 마무리까지. 이 삼박자 중 한 개만 돋보여도 그 작가는 많은 독자들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보코프는 일단 단어와 문장을 말장난 하듯이 가지고 논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독자를 들었다 놨다하는 건 기본, 소설 구조를 고무줄 가지고 놀 듯이 창조를 한다. <절망>을 읽어보면 작가의 자신감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거만함까지 보인다. 나보코프는 글 쓰는 데 있어 완벽한 자신감을 가진 채 독자를 희롱한다.

나는 지금 <절망>이란 작품을 찬양하는 게 아니라 작가의 작품'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나보코프 소설은 국내에 번역된 책은 몇 편 없다. 그중에서도 고작 장편소설 두 편을 읽었지만 넋 놓고 눈으로 구경만할 수밖에 없었다. <절망>을 먼저 읽고 <롤리타>를 읽었는데 지금, 무척이나 후회된다. <롤리타>를 먼저 보고 <절망>을 봤었다면, 좀 더 머리를 굴리고 다양한 시각으로 읽었을 텐데, 평범한 영미권 소설로 생각한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 내가 말하는 오류란 나보코프에 대해 전혀 모른 상태에서 그냥 읽기만 했다는 것이다. <절망>은 그저 장난끼 많은 소설가가 쓴 소설이었을 뿐이었다. 소설 초반엔 독자들을 향해 말을 던지고 장난질하는 문장을 보며 이놈은 뭔데 이렇게 도발을 하나, 싶었다. (미안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나보코프님을 몰라 뵈고 그땐 쌍욕을 퍼부었습니다. 사죄드립니다.)

소설 내용은 뻔히 보이는 데로 흘러가는데 과정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독자인 나를 가지고 놀았다. 독자인 나는 나보코프가 원하는 방식대로 끌려다녔다. 이리저리, 왜 끌려다니는 줄도 모른 채, '쭈쭈주~~~이리와~~쭈쭈~~~' 난 그저 독자 강아지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았다. 분명, 내용은 뻔한데 난 왜 결론을 못 내고 이렇게 마지막까지 끌려 읽어야 했던걸까,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난 분명 서커스를 보며 갸우뚱하고 있는데 어느 새 내가 서커스 중앙에서 쇼를 하고 있다고나 할까?^^;;

<롤리타>는 소아성애자의 변태소설이란 자극적인 풍문 덕분에 유명해진 작품이다.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소문을 빼면 이 작품에 대해 독자들은 뭐라고 얘기할까? <롤리타>를 단숨에 읽어버리고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일단 문장을 지나치게 화려하게 잘 썼고 표현 역시 1955년에 쓴 작품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현대적이며 섹시했다. 내가 단 한 권의 책을 읽고 천재라 칭하고 질투심으로 활활 타오르게 만든 작가는 히라노 게이치로 외 나보코프뿐이다. (시마다 소지도 천재지만 장르가 다르기에 비교하기 힘들다) 그저 대단한 작가였다!! 내가 죽기 전에 이런 작가를 또 볼 수 있을까?

일단 <롤리타> 추천하고,

<절망>은 1966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책을 읽는 맛이나 뛰어난 문장, 기억 남는 작품은 단연 <롤리타>다. 그에 비해 <절망>은 <롤리타> 만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진 못했지만 상당히 개구쟁이 작품이다. <롤리타>가 실험적인 작품이라면 <절망>은 작가가 정말 쓰고 싶었던 걸 마음껏 표현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작가는 독자와 한번 놀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꽤나 만족이다. 그만큼 나보코프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다. <롤리타>를 빨리 읽은 것도 <절망>을 읽고 생긴 호기심 때문이다.

혹시나 <절망>을 읽으려 했다면 반드시 <롤리타>를 먼저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어떤 책을 먼저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힌다는 생각에 내 손모가지를 건다. <절망>에 대한 줄거리에 대해선 쓰지 않고, 분위기 정도만 남겼다. 나보코프 작품은 필사를 하고 싶은 만큼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니까. 그의 스타일은 표현한다고 그려지는 작가가 아니다.

ps_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롤리타>를 읽고 <절망>을 읽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