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역열차 - 144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니시무라 겐타 지음, 양억관 옮김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허허..이런 것도 소설이 되는군'

하루키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후 오랜만이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사소설이란 장르. 사소설이란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쓴 것이다. 거의 90% 이상 자신의 겪은 일을 그대로 소설로 쓴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저 일기로써의 기능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읽는 이로 하여금 어떤 마음이 드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내 입장으론 반반이다. 딱히 내용이라 할 알맹이는 없었지만 감흥은 있었다. <고역열차>는 소설로서의 기능보다는 한 편의 에세이적인 효과가 더 강했다. 물론 장르는 어엿하게 소설이다. 사소설의 맛은 뭐 그런 것이다. 어떤 기분으로 어떻게 읽히는 것인가에 따라서.

 

<고역열차>의 주인공이자 작가인 니시무라 겐타는 어떤 인물일까? 물론 <고역열차> 소설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다 털어놓는다. 소설 주인공의 이야기이자 작가의 이야기인 소설. 1967년생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성범죄를 일으켜 구속됐다. 어머니는 곧바로 이혼을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가족은 도망 다녀야 했다.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고 삐딱한 겐타는 학교도 잘 나가지 않고 친구도 없었다. 자신은 이미 아버지의 범죄로 인해 인생이 끝나다고 생각했다. 스물다섯 살까지는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다. 이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설을 썼다.

겐타는 사소설은 "자신의 경험을 서술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8할의 사실에 2할의 픽션을 가미해야 한다.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배제하고 인간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쓰려한다"고 했다.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이렇게 얘기했다. "스물아홉 살 때 폭력 사건으로 경찰에 두 번 체포됐고 기소까지 됐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듯한 기분이 들었을 때 후지사와 세이조의 작품을 읽었다.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사람이 쓴 소설을 읽으면서 '서른이 다 되도록 이 꼴로 살아서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고 용기도 갖게 됐다. 정신적인 버팀목이 돼 줬다." 이쯤 되면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겐타의 열아홉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 <고역열차>다. 겐타에선 내일 따윈 없었다. 그정도로 망나니처럼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간다. 일용직 노동으로 번 돈은 다음날 출근할 버스비만 남기고 다 써버렸다. 술을 마시고 여자를 사고. 일용직 노동도 돈이 떨어지면 나가고 아니면 집에서 빈둥빈둥 놀았다. 그러니 방세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몇 달 밀리면 야반도주하는 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인간이었다. 그는 죄인이라 생각했다. 아버지가 성범죄를 일으켜 감옥에 들어간 순간부터 그 자신도 죄수였다. 피해자 가족을 생각하면 도저히 마음 편히 살 수 없다는 겐타. 돈이 급하게 필요하면 어머니에게 연락하거나 찾아가 행패를 부려 돈을 뜯어낸다. 노동을 하다 우연히 동갑내기 친구(대학생)를 만나 처음으로 우정을 나눈다. 외로움에 미칠 듯 몸을 떨어오던 그에게는 소중한 친구지만 본성은 어쩔 수 없었다. 점점 부러움의 또 다른 이름 열등감으로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그렇게 둘은 헤어지게 된다. 또다시 외톨이가 된 겐타에겐 후회는 없었다. 그저 부러울 뿐이지만 자신은 자질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성범죄를 일으킨 범죄자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외톨이가 된 그에게 변화가 있다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뿐.

 

마지막은 허무하게 끝나버리지만 그것 나름대로 멋지다 생각했다. 이건 소설이 아니라 실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사람의 소설이 상을 받지 못했으면, 출간되지 못했으면 난 그저 그런 소설로 던져버렸을 거다. 그런 삶이라도 자신이 쓰고 싶은 사소설을 쓰려고 노력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다. 그 행동으로 이웃나라인 한국에서 그의 작품을 독자들이 볼 수 있었으니까. 그의 노력이 아니었으면 나는 이 작품을 읽지도 못했고 겐타라는 작가를 알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선 이런 작가들이 가뭄에 콩 나듯 나오지만 일본에선 종종 볼 수 있었다. 밑바닥까지 내련갔던 인간이 힘을 내어 소설을 쓴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것인가? 일본의 작가 중엔 조폭 출신, 왕따 출신, 범죄자 출신 등등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가 많다. 아마 그들이 쓰는 소설의 내용이 궁금해서 그런 관심을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도 역시 떳떳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과거야 어쨌든 겐타라는 작가가 사실 부럽다. 그에겐 마지막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소설 쓰기라 생각하고 죽어라 썼을지도 모른다. 그가 실제로 어떻게 노력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했을 것이다. 그는 죽음이란 배수의 진을 치고 오로지 소설을 썼을 것이다.

 

나에겐 겐타와 같은 파워는 없는 것일까? 결국 작가가 말했듯이 '나 같은 인간도 이렇게 소설가가 됐는데 이 글을 읽는 너희도 꿈과 희망을 잃지 말아라' 라는 메시지에 그만 감동한 것인가? 큭......

 

이 소설이 그래도 인정받은 건 겐타와 같이 희망없이 살아가는 사람들(프리터족, 니트족)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숫자는 대략 200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결국 문학으로 그들을 구원하리라, 는 것이다. 아무튼 <고역열차>를 읽고 단 한 명이라도 무언가 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면 성공이겠지만..... 나도 소설을 써야 하나......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