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와 빨강
편혜영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낯선책의 느낌이란 게 있다. 표지와 제목을 보고 풍기는 분위기라고 할까? 대부분은 읽기 전과 후가 같지 않다. 제목과 표지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내용과는 대부분 차이가 있었다. 단순히 흑과 백이 아니다. 그냥 읽어본 사람만이 느끼는 그런 '느낌'이랄까. <재와 빨강>은 제목과 표지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정말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읽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2011년에 처음 만났지만 왜 지금에서야 읽었는지 모르겠다. 밤늦게 책장을 우두커니 보다 보니 눈에 들어왔다. 단지 그뿐이고 표지를 보자마자 읽고 싶었다. 이유는 여전히 알 순 없다.

 

우울한 이미지가 초반부를 지배하다 미스터리가 등장했고 마지막엔 알듯 모를듯한 연기가 뿌옇게 뒤덮었다. 마치 <무진기행>에서 나오는 안개처럼. 주인공을 비롯해 소설 배경조차 우울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정말이지 끝까지 알 수 없었다. 좀처럼 파악할 수 없는 인물이다. 일관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고 환상을 구연했으며 가끔은 다혈질적 폭력성을 보였다. 스스로를 가둔 고독함에 좀처럼 나오지 않은 인물.

제약회사에서 약품개발원인 그. 그러나 그의 인생엔 '쥐'가 주인공이었다. 한 번의 이혼과 아이는 없는 고독한 그에게 c국으로 파견을 제안받는다. 입사순에서도 밀리고 승진과는 도무지 거리가 먼 그가 어떻게 파견으로 뽑혔는지 주위 사람들은 술렁이고 곧바로 직장내에서 왕따가 되버린다. 그 자신도 알지는 못했으나 이혼을 뒤로하고 새로운 인생을 펼칠 절호의 기회라 여겨 떠나게 된다. 전염병이 유행처럼 전지는 c국에 입국하자 그의 인생은 180도 뒤바뀐다. 전염병 의심환자로 분류됐고 파견으로 들어갈 회사에서는 연락이 없고 그가 배정받은 숙소는 전염병으로 격리조치 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전처가 살해 당한 사건의 용의자로 그가 지목된다.

 

이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 쓰레기장 옆에서 노숙자로 전락한 그. 어쩌다 자신이 이렇게 됐는지 곰곰 생각해보지만 당장 배가 고파올 뿐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어떻게든 되돌리려 노력은 하지만 '어떤 벽'에 막혀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전처의 죽음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공기처럼 밀려와 우울해져만 간다. 진짜 자신이 죽인건지 아닌지조차 기억에 없었다. 망상인지, 실제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 심심해서 잡은 쥐가 하나둘 늘어나고 우연히 쥐의 시체들을 보고 방역원으로 뽑혔다. 노숙자보다는 쥐를 잡는 방역원이 훨씬 처지는 나았으리라.

카프카 소설 <소송>의 주인공 K처럼 그였시 이유도 영문도 알지 못한 채 밀려 나갔다. 자신이 '왜' 그렇게 됐는지는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읽는 내내 나는 '그' 대신에 묻고 읽어 나가야만 했다. 그가 적극적으로 한 행동이라고는 파견된 회사 담당자를 찾는 것 뿐이다. 그 회사 1층 보안요원은 담당자를 만나고 싶으면 서류 한 장을 작성하고 기다리라고만 대답한다. 아무리 담당자를 만나야 한다고 이유를 얘기해도 보안요원은 자신이 맡은 일은 서류를 전달하는 것, 이라고만 되풀이할 뿐이다.

한국에서 그는 전처를 살해한 용의자이며 현재 파견된 직원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속해있는 본국 회사에 연락을 하든가 한국대사관을 찾아 도움을 청하면 될 일이다. 간단하지만 그에겐 그만한 속사정이 있는지도 모른다.

 

전처와의 관계

모든 소설이 그렇지만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을 친절하고 풀어주지는 않는다. 가끔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은근슬쩍 단서만 던저주고 또 가끔은 아예 아무것도 주지 않아 읽는 이로하여금 상상하게 만들어준다. 어떤 것이든 뭐 읽는 독자들은 상관없을 것이다. 상상은 누구나 가능한 것이니까. 그와 전처와의 관계는 정말 미스터리하다. 가끔 외박을 하고 집안일을 소홀히 하는 전처. 그것만 보면 이혼이 당연했다, 라로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가 설명하는 그녀는 무뚝뚝하고 살아 있는지 조차 의심될 정도다. 그와 그녀가 소원한 상태에서 그도 바람을 피웠다. 그게 사랑인지 아닌지 몰랐던 그는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이런 이상한 부부의 생활은 그가 일방적으로 한 강간 때문에 이혼 도장을 찍었다. 그뒤 그녀는 바로 결혼을 했고 또다시 이혼을 했다.

이혼을 한 뒤에도 그는 끝임없이 그녀를 생각했다. 그리움도 추억도 아닌 기억. 그는 정말 전처를 살해했을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쥐'다. 쥐는 한 번의 교미만 하면 그뒤 교미를 하지 않아서 암컷은 새끼를 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수컷은 시간이 나기만 하면 교미를 한다. 쥐의 번식력은 아마 세계 최강일 것이다. 생명력도 최고일 것이다. 쥐와 인간과의 관계는 공생관계는 아니다. 그런데도 실험실에는 쥐가 중요한 도구로 쓰인다. 쥐를 잡는 약품들은 계속해서 강해지고 다양해진다. 그래도 쥐는 여전히 어둠속에서 잘 산다. 인간을 죽이는 전염병 역시 점점 강해진다. 그래도 인간들은 약을 개발해 강해진다. 땅 위에서는 인간을 해할 것은 없고 어둠속에서 쥐를 해할 것은 없다. 땅의 위아래를 지배하는 인간과 쥐. 인간은 쥐를 죽이려 노력하고 쥐는 인간들이 버린 음식물을 먹으며 큰다.

그 둘의 관계는 아까 말한 바와 같이 공생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주 잘 살고 있다. 인간이 주는 음식물을 먹으며 말이다. 어떻게 보면 알게 모르게 인간들이 쥐를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정하지는 않겠지. 왜냐하면 끔찍하니까. 가끔 쥐가 나타나면 어떻게든 제거하려 난리를 친다. 그러나 그때뿐. 인간과 쥐는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공존할지 모른다. 두 생명체는 아주 질기니까.

인간이든 쥐든 아주 징그러운 족속들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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