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 24명의 아티스트.24개의 공간.24가지 취향
이상현.이안나 지음 / 우듬지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어릴 적에 나만에 공간이 있었다. 귀신이 나올 것처럼 으스스한 지하실. 그곳엔 온갖 잡동사니와 낡아버린 가구들, 부시멘 얼굴처럼 동그란 연탄들이 널부려져 있었다. 지금은 좀 챙피한 기억이지만 아직도 생각난다. 추운 겨울밤, 엄마는 자기 전 항상 내 손을 붙잡고 지하실로 끌고 내려갔다. 내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밤새 뜨끈한 방바닥을 위해 연탄을 새것으로 갈려고 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들 하나인 나를 데리고 가는 엄마가 내심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남자인지라 뒷꽁무니를 덜덜 떨며 따라갔다. 할머니처럼 푸석한 연탄을 연탄 집게를 가차없이 잡아 뽑은 뒤 내 앞으로 놓았다. 아직도 불이 화끈화끈한 연탄을 보고 있자니 엄마가 하는 말

"야~! 이따 화장실 가지 말고 여기다 싸~그래야 불도 꺼지고 좋지. 깜깜하니까 그냥 싸!"

" 뭐야?! 내가 무슨 물총이야? 싸라고 하면 싸게? 나참..." 이라고 했겠나? 고작 다여섯 살 먹은 꼬마가..ㅎㅎㅎ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뭔놈의 재미가 들렸는지 냅다 호줌을 날리며 혼자 낄낄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이 꺼지는 사운드(치이~~)와 스모크&스멜(우엑!)이 재밌었나보다. 아무튼 그런 기억이 갑자기....+_+; 근데 왜 옛 기억을 얘기했더라? 아아...^^;;

밤에는 귀신이 나올만큼 무서운 공간이었지만 낮에는 나의 유일한 놀이터였다. 그곳에는 내가 길에서 주워온 비커, 의자, 주사기, 화분, 훼미리쥬스병(훼미리 쥬스 아줌마는 아시나?) 등등 내 물건들로 채워졌다. 그 공간에서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던 것 같다. 뒷산에서 잡아온 잠자리를 물이 가득한 비커에 넣고 익사시킨 뒤 바깥에 놓으면 다시 살아나는 뭐 그런거?(좀 잔인한가?@_@)

 

갑자기 뜬금없지만 그 집은 부셔졌고 새집을 지어 3층에 살고 있다. 포크래인이 그 집을 부셨을 때 지하실을 보며 울던 게 생각난다....흐흑...그때는 참 순수했지....

로망이지만 아직도 나만의 작업실을 탐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작업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컴퓨터에 끄적거리는 잡다한 글과 내 방과 거실에 가득 찬 책들을 쌓아놓는 것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게 무슨 작업실이냐? 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렇다는 얘기다. 나만의 작업실이 생기면 뭔가 할 것들을 벌려보겠지 뭐. 그런 막연한 상상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24명의 아티스트들의 작업실을 훔쳐보는 짜릿함, 남의 고유의 작업공간을 탐닉하는 불순함,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왔던 작업실에 대한 욕망을 해소할 수 있는 뒷간!바로 <작업실>이다. 서론이 진짜 길었지만 이 책을 읽고 생각난 게 내 어릴 적 작업실인 지하실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만들거라 자신하는 나만의 작업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혼자 쓸 수 있는 작업실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우리집 1층 상가에(지금 코카콜라 창고) '나폴레옹'이란 간판을 내걸고 작업실로 삼으면 된다. 그런데 그곳에서 할 게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다.

작업실을 만들었으면 뭔가 작업을 해야 하는데 작업할 게 없다. 딱히....디자인도, 그림도, 가구 만들기도, 사진 찍는 기술도 전무하다....휴....

 

예술가, 패션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건축가, 디자이너, 사진작가, 가구디자인의 <작업실>을 한 권의 책에서 공짜로 보여준다. 신문이나 인터넷 기사에서 본 유명한 분들도 있고 처음 들어본 예술가도 있고 알 듯 말 듯한 디자이너도 있었다. 24명의 예술가들은 소위 사회적 지위가 있는 분들이었다. 나랑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다. 그만큼 노력도 죽어라 했다는 얘기겠지. 그들에게 작업실이란 과연 어떤 공간일까? 예술가들의 작업실은 투박하면서도 예술적이고 쓰레기를 갖다놔도 예술이다. 커피와 담배 냄새가 은은하게 섞여 몽롱한 기분에 취하게 만드는 매력. 비싼 인테리어나 소품들이 보여주는 것보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상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술적인 감각들이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건 아닐까? 그냥 멋있어 보인다. 왜냐 그들에겐 우리와 다른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작업실이 궁금한 것이고.

 

<작업실>에 나오는 모든 작업장에 놀러가 보고 싶었다. 문전박대 당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놀러가 보고 싶다. 그래서 몇 군데 표시를 해두고 주소까지 알아보고 무작정 가보려 했는데 막상 그들과 뭔가 공통점이 없었다. 그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없다는 것이 치명적이었다.

커피를 대접받는다 쳐도 뭔가 얘기를 해야 할 것 아닌가? 상상에 대화를 펼쳐나가도 단 10분이면 게임 오바였다. 이것 참....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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