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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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표현해야 <좀비>란 책을 정말 읽었구나, 라고 할 수 있을까?

사이코패스를 다룬 여타의 책들이 범죄자의 행동을 지켜보며 그의 잔인한 행위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좀비>는 주인공(사이코패스)의 내면을 파고든다. <좀비>는 사이코패스, 자신이 쓴 글인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있어 마치 소설을 읽는 동안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다. 보통 사람으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망상에 사로 잡혀 있는데도 자연스레 행동으로 옮긴다.

말 그대로 사이코패스가 보고, 느끼고, 행동하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좀비>를 읽을 때는 그가 조정하는대로 따라야 하는 노예가 되고 만다. 나에게 어떠한 결정권도 가질 수 없고 그의 삶에 개입할 수도 없다.

그렇다. 독자는 모두 그의 노예이자 좀비가 되어야 한다.

 

 

우연히 본 책에서 전두엽 절제술이란 정신과 시술을 읽는다. 이 수술을 받는 사람은 누군가의 로봇처럼 순종적으로 온순해진다. 같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수술도 다 있나? 싶었는데 예전에 진짜 이런 수술을 했다고 한다.(영화 <셔터 아일랜드>에서도 나옴) 주인공은 그 수술을 통해 자신만의 노예를 만들고 싶어한다. 동성애자인 주인공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남자만 골라 마취시킨 뒤 집에서 이 수술을 직접 실행한다. 의학적 기술이 없는 주인공의 실험이 잘될 리가 있나...곧 내리 실패를 하고 만다. 그때마다 그는 더욱 안달이 나서 또 다른 주인공들을 찾아 나선다. 물론 실패한 친구들은 거리낌 없이 처리한다.(끔찍!!) 그가 꿈꾸는 좀비는 만들어질 줄 모르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실패하고 그로인해 피해자의 수는 늘어만 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화 한 것이지만 사이코패스의 내면을 독자로 하여금 엿보게 함으로써 그동안 얘기만 들었던 사이코패스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읽는 동안 암모니아수 냄새를 맡은 것처럼 묘하게 무언가 콕콕 찔렀다. 사이코패스 가면을 잠시 빌려 쓴 듯한 기분일까. 그래서 읽는 내내 색다른 기분에 사로잡혔다. 처음엔 그저 뭐 이런 또라이가 다 있어?’ 라고 생각하며 코웃음을 쳤는데 점점 그 또라이는 살아 있는 내 감정들을 갈아먹기 시작했다. 단순히 무섭다라고 표현할 순 없다. 같은 인간으로 공감할 수 없는 행동들과 그가 흥분하는 모습이 소름끼치게 다가왔을 뿐이다. 그는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했을 뿐인데 말이다.

 

<좀비>를 만들고자 하는 주인공의 시도는 책 속에서는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성공했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독자들은 그의 노예처럼 끌려다녀야 했으니까 말이다.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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