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눈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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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좋아하는 작가 있으세요?'

'네,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요.'

'그럼 하루키를 닮고 싶으세요?'

'아니요. 그의 라이프 스타일과 성격은 좋아하는데 그를 닮고 싶지는 않아요. 그보다는 헤밍웨이를 닮고 싶어요.'

'왜요?'

'음...뭐랄까? 하루키는 스파게티를 직접 삶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집에서 고양이를 만지며 시간을 보내죠. 그에 반해 헤밍웨이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를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넓은 초원에서 껑충껑충 뛰는 살벌한 짐승들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요. 그 둘의 차이를 아시겠어요?'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의 이름이 석자는 아니지만, 우린 똑똑히 기억한다. 미국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헤밍웨이는 국민 대부분이 알 것이다. 그의 대표작인 <노인과 바다>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테니까. <노인과 바다>는 간단한 줄거리지만 아직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명료한 문체와 간단한 줄거리, 시작과 끝이 확실한 소설. 소설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읽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오는 특이한 소설이다. 언제 다시 읽어도 그에 따른 느낌은 다 다르다. 개인적으로 그런 소설이 진짜 멋진, 소설의 맛을 가진 소설이라 생각한다.

헤밍웨이의 소설은 그의 삶이라 생각된다. 흔히 소설은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헤밍웨이의 작품들은 거의 그의 경험에서 나왔다고 본다. 그의 이력을 살펴 보면 정말 파란만장한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활동범위가 광활했다. 그런 경험들이 지금의 작품들로 녹아든 게 신기할 뿐이다. 작가로서의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이 바로 헤밍웨이인 것이다.

이야기의 소재, 경험, 글쓰기, 문체, 상상력. 감히 누가 따라올 수 있을까?

 

<킬리만자로의 눈>은 헤밍웨이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좋은 단편들이다. 자전적인 작품들도 몇 보인다. 요즘 단편처럼 허영을 건드리는 장치 따윈 없으며 '무엇을' 염두해두고 쓴 소설도 아니다. 정말 단편답게 마지막 문장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마치 낚시꾼이 잡아준 고기들처럼. 그 작품들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단편이 있다. '프랜시스 머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 전문 사냥꾼을 고용한 주인공. 주인공에게 아주 미인인 아내가 있다. 미인을 차지한 그 남자의 매력은 단지 '재력'뿐이다. 박력도, 용기도, 체력도, 남자다움도 실종한 시시한 주인공. 그가 사냥에 나섰다가 부인에게 창피만 당하게 된다. 그런 주인공은 부인에게 뭔가 보여주려 과감히 사냥에 나서게 된다....그런데..

 

이 작품을 읽었을 때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내용이 조금 비슷한 것이기 때문일까?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는 친구였다.

그의 단편들을 읽을 때면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문체에 자신감에 베어있다. 이런 느낌을 딱히 어떻다, 라고 표현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단지 '느낌'이니까. 그리고 머릿속에는 영상이 그려진다. 주인공은 전부 헤밍웨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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