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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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글을 읽다보면 섬뜩할 때가 있다. 소설과 에세이 사이의 다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소설은 소설 나름대로, 에세이는 에세이 나름대로 동전의 양면처럼 너무 다르다. 문체도 내용도 느낌도 말이다. 뭐 당연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하루키는 만난 지 거의 10년이 지나, 문득 복숭아를 깎아 먹다 총알처럼 머리통을 스쳐지나갔다. 물론 피는 나지 않았다.^^

내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하루키 스타일은 제목을 먼저 설정한 후 줄거리를 짜보고 그에 맞는 인물들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야기라는 털실이 짜졌을 때엔 곧바로 쓰기에 들어간다. 한 편의 소설을 써내려갈 땐 하루 쓸 일정 분량을 넘지 않고 줄이지도 않는다. 자신이 스스로 정해놓은 분량 안에 살포시 넣었다가 내일을 위해 참는다. 가끔 더 쓰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래도 참는다. 왜냐 내일 쓸 분량을 위해서....나 같으면 글이 나오는데로 무조건적으로 써나갈 텐데 하루키는 나와는 다른 종류에 인간인가 보다. 낮잠을 자다가 설령 그게 꿈이라 하더라도 이야기가 되면 무조건 메모한다. 하루키 소설 스타일을 보면 고무줄이 느슨하게 걸려있으면서도 왠지 만지면 끊어질 것 같고, 상대 투수의 공이 100% 직구라 생각하면서도 왠지 홈플래이트 앞에서 뚝 떨어질 것 같은 그런 '왠지'가 있다. 그와 반대로 <7년의 밤>에는 거미줄 같은 촘촘함, 그리고 알면서도 당하는 직구를 가졌다.

 

<7년의 밤>이란 소설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거미 한마리가 큰 거미줄 테두리를 짠다. 그리고 하루하루 꾸준히 그 안을 메운다. 그리고 벌레들이 잘 잡히는지 잡히지 않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다시 보충하고 또 짠다. 이렇게 반복한다. 그 거미가 죽을 때까지. 결국 거미가 죽을 때야 비로소 완성된다. 아무도 뚫지 못하는 완벽한 거미줄이......

그 완벽한 거미줄이란 바로 <7년의 밤>이다.

스토리가 시작되면 장인이 만든 시계처럼 한 치 오차도 없이 흘러간다.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곧 분침이, 그리고 마침내 시침이 움직임을 시작하며 이야기는 움직인다. 작가의 스토리처럼 자신만의 완벽한 세계가 있는 치과 의사이자 대지주인 오영제. 야구판을 읽어내는 눈을 가졌으나 만년 2군에만 머무른 비운의 포수출신의 최현수. 그리고 집안의 기대주이자 소설가를 꿈꾸는 안승환. 어떻게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소설이라는 거대한 판에 앉아 말을 움직이고 멈출 수 있을까?

 

<7년의 밤>의 시작은 최현수의 아들에 의해 전개된다. 살인자의 아들이란 타이틀을 목에 걸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쫓겨난다. 가는 곳마다 집요하게 그를 추적하는 한 매체가 그의 행적으로 낱낱이 까발리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7년 전 어느 밤, 아니다. 단 몇 시간의 사건으로 모든 것이 다 날아갔다.

 

악착같이 벌어 드디어 내 집 장만에 성공한 현수의 가족. 모든 적금은 물론 빛까지 얻어 겨우 일산에 꿈같은 집을 얻었다. 그런데 빛과 이자를 감당하기 전세를 빼고 회사가 제공할 수 있는 조건인 지방으로 가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내려간 세령마을. 이사하기 전, 미리 살집을 보고 오라는 마누라의 특명을 안고 차로 달려간다. 그런데 하필 그날 그 근처에 옛 야구팀 동료가 소주방을 오픈한다. 잠깐 들르기만 하려다 이내 소주를 들이 키고 아내의 닥달에 못이겨 세령마을로 그대로 차로 달린다. 술기운이 뻗쳐오고 슬슬 졸음이 오는데 초행길에 안개까지. 최악의 상황을 스스로 다 이겨내려 하지만 운명은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텅"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을 치게 된다. 이제까지 개미새끼 한 마리 죽이지도 못하고 사람 한 번 때려본 적 없는 인간이 사람을 친 것이다. 그것도 면허 정지에 음주 운전까지. 짧은 시간에 최상의 시나리오를 만들지 못하고 자신이 짊어진 그 모든 것을 위해 최악의 패를 둔다. 쓰러진 사람을 어떨 결에 죽이고 세령호에 던지기까지.......그렇게 현수의 인생은 흐르는 세령호에 모든 것을 던지며 시작된다.

 

탄탄한 스토리가 아주 일품이다. 뭐하나 버릴 것 없는 참치처럼 쓸데없는 이야기 따위는 520페이지 동안 단 한 단어도 허락하지 않는다. 물처럼 흐르는 스토리, 앞뒤를 서로 받쳐주는 전개, 풍부한 배경 지식, 끝까지 지켜내는 긴장감. 내가 바퀴 달린 것을 타고 2시간 동안 졸지 않고 읽은 책은 아마 처음인 것 같다. 일단 책을 펼치면 머릿속에 있는 세포들이 집중하기 시작한다. 곧 그것이 장시간 이어지고 어느 순간 내달리고 만다. 실컷 달렸다 생각하는데도 페이지는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왜냐? 단어 하나하나 확인하고 곱씩어야 하니까. 자신이 해야 할 것을 알고 실행하는 캐릭터들이 마치 살아있는 인간이라 착각마저 들게 만든다. 특이하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케릭들 얼굴까지 떠오르려 한다. 이는 상당히 빠져들어 집중한다는 얘기고 나름대로 그 캐릭들에 이입됐다고 생각한다. 언뜻 보면 엄청난 내용 같지만 끝장을 덮으면 몇 줄만에 완성할 수 있는 줄거리다. 그럼에도 메시와 같은 캐릭터들을 창조했고 곧 그들의 플레이는 예술작품처럼 그려진다.

 

간만이라도 좋을 것 같다. 속독을 하지 않고 무모하게 긴 시간을 투자하여 읽은 한 권의 책을 칭찬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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