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경장편인 169페이지엔 팍팍한 텍스트 대신 고요한 白의 공간들이 있다. 百의 그림자에 白의 공간이라....이 공간도 사색의 그림자로 채워지길 바라는 건 아닐까?

패스트푸드가 확산되며 연애패턴도 속전속결이 돼버린 21세기 인간들. 서로 마음을 탐색하는 대신 겉모습을 눈으로 핥으며 재본다. 나름대로 견적을 추산하고 그에 따른 감정도로 결정한다. 그렇게 서로의 지식, 부를 탐하는 마음을 우린 '사랑'이라 부른다.

<백의 그림자>에선 부모님 세대에서나 볼 수 있는 따스하고 순수한 감정들의 발산이 아름다웠다. 아픔을 배려하고 수줍음을 머금으며 정성을 쏟고 결실을 위해 인내하고 아껴준다. 마치 <소나기>의 주인공들처럼....

은교와 무재는 유신정권 당시 제조업의 중심지, 전자상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보이지 않는 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대의 전자상가는 구시대적인 요소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요즘엔 볼 수 없는 다양한 모양의 전구들을 파는 가계, 지금은 없는 기계들의 부품을 취급하는 가게 등. 은교는 아버지가 소개해준 가계에 경리를 보고 있고 무재는 근처 수리를 맡고 있는 수리공이다.

몇 번 마주침을 인연으로 사랑을 키워가는 존재들이다. 서로 닮은 구석이 많은 그들. 은교는 중고등학교 때 왕따를 당하고 끝내 자퇴를 하고 만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외로운 은교. 무재는 아버지가 전자상가에서 일하는 것을 보고자란다. 상가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울음을 터트리는 무재. 대학을 입학하지만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그만두고 아버지의 흔적이 있는 전자상가에서 일한다. 말이 별로 없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

한 편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 하기엔 너무 심심하고 현대문명의 발전에 따라 사라지는 것의 추억이라 하기엔 너무 밋밋하다. 그리고 이 소설의 자주 등장하는 그림자는 어떻게 설명 가능할까? 3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이라 한다면 어느 정도의 감을 잡고 글을 쓸 것인데 이 책은 경장편이기에 그리 많은 힌트나 의미를 주지 않았다. 그것이 경장편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한 편의 시같이 농축된 단어들을 깊이 생각해보고 생각해보아야 한다. 마치 시 한 편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 주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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