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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
구보 미스미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오랜만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 휩쓸린 게 말이다. 소설은 소설처럼 일상은 일상처럼 생각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아니 정답이지만 그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서른 넘은 다 큰 어른이 엉뚱하게 방황하는 고등학생으로 변신을 하기도 하고 변태 아줌마가 되기도, 뼛속까지 무능한 인간이 되기도 한다. 감정이입하고는 좀 차원이 다른 상상이라 말하고 싶다. 흔히는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나로 바꿔 상상하고 읽어나가지만 이번엔 아닌 것 같다. 다른 때와는 좀 다르게 이번엔 눈앞에 펼쳐지는 연극을 숨어서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상대방은 나란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지만 나는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아는, 그런 기분. 하지만 감정까지 느껴지는, 손을 뻗으면 어루 만질 수 있는 이런 설레는 기분은 도대체 무엇인지 아직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름 정리를 한답시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아......<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 씨바~ 일단 추천!(김어준 총수 말투ㅋ 모르면 나꼼수를 들으시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다짜고짜 찐한 야한 장면이 열출돼 적잖이 놀랐다.(사실 즐거웠음ㅋ) 그리고 장편소설인 줄 알았는데 단편소설처럼 전개되어 또 놀랄 뻔했다. 그대로 연결하지 않고 보면 단편 5개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거미줄처럼 촘촘히 이어진 장편소설이다. 예를들어 도시에 한 건물에서 한창 영화를 찍고 있다고 하자, 영화를 열심히 촬영하고 있는 감독 스토리 한 편, 또 그 영화 주인공 스토리 한 편, 스텝 스토리 한 편, 그리고 영화 작가 스토리 한 편. 이렇게 총 하나의 큰 그림이 그려지는 책이다.
단편보다 깊이 있고 장편보다 색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챕터는 '세계를 뒤덮는 거미줄'이다. 멍청하고 못생기고 뚱뚱하고, 거기에 불임까지.. 온갖 요상한 행위를 하는 변태 주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한 줄의 글로만 평하다보면 정말 사이코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릴 적은 학교에서 항상 왕따로 수없이 놀림만 당했다. 학교 가는 상상만으로 속에 든 찌꺼기들을 몸밖으로 배출하며 본능적으로 거부하길 수차례. 그렇게 겨우 졸업을 마치고 3류 대학을 들어갔는데 상상밖으로 인기를 끈다. 그런데 그 인기라는 게 예뻐서, 호감이 가서, 성격이 좋아서 인기가 좋은 게 아니라 성적인 도구로 쉽게 이용할 수 있어서 인기가 많은 것 뿐이다. 그래도 그녀는 행복했었다. 직장 생활에서 조차 왕따로 괴롭힘을 당하며 온갖 정신적 고통을 승화시키려 하는 중에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 결혼에 성공한다. 그녀에게 결혼이란 단지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었다. 그녀에게 삶이란 무어인지 묻고 싶지도 않다.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 그녀의 모습에 내가 안쓰러워 눈이 촉촉해졌다...
그녀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 남편이란 놈도 왕따 출신에 마마보이라 그녀를 웃게 해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편하게 만들어 주지도 않는다. 이런 말은 정말 가슴 아프지만 불행한 사람은 로또를 맞아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불임이라니......이건 뭐 하늘에서 작정하지 않고서야 불행의 씨앗을 어찌 모두 그녀에게 모두 쏟아 부었나? 그럼에도 살아가려 하는 그녀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래도 그녀에겐 사랑스런 고등학생 남자친구가 생겼다.
아기 냄새가 나고 원하는데로 섹스도 잘하는......그녀의 유일한 낙이자 삶의 안식처였지만 곧 들키고 만다. 그녀는 이혼을 요구하지만 시어머니는 몰래 찍은 동영상을 협박하며 대리모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라고 명령한다.
다른 건전하고 좋은 내용도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끌리는 건 사실 아직도 모르겠다. 그녀가 단지 불쌍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그녀가 엉뚱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모양이 애초로운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녀와 같은 바보같은 여자를 만나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나 보다 불행한 사람을 봐서 위안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하하...이런 바보같은 말이 어디 또 있겠는가?
혹시나 몰라 덧붙이자면 그녀가 좋아했던 고등학생 남자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구성은 묘하게 끌리는 구석이 있다. 재밌기도 하고....<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를 읽고 몇 단어로 압축해 본다면,
사랑, 섹스, 고독, 희망, 눈물........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