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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ㅣ 레닌 전집 59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지음, 양효식 옮김 / 아고라 / 2017년 7월
평점 :
이상하게 레닌 글이 다른 글보다 쉽게 읽힌다. 전에는 한페이지 한페이지가 정말 힘들었는데 각종 정당, 기관지, 사람 이름들을 신경끄고 읽으니 그런 듯하다. 일종의 꼼수가 생겼다.
저번 권에 이어 사회배외주의에 대한 공격, 전쟁을 내전으로,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가 주 내용이다.
신기하게도 레닌의 글을 당대의 쟁점에 관해 논쟁을 하는 지극히 '구체적'인 글임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는 '보편성'을 띠고 있다. 그야말로 극한까지 다가가는 구체적인 정치적 주장이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레닌은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를 우연적 측면이 아닌 사회경제적 내용에 주목한다. 기회주의를 단지 개인이 저 진영 이 진영을 오가는 문제를 넘어 제국주의 시대에 나타난 정치조류로 파악한다.
물론 레닌 특유의 신랄함으로 영국, 프랑스. 벨기에, 러시아 등 유럽 각국에서 전쟁을 옹호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각종 주의주장을 인용하고 반박하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가만히 읽다보면 꼼꼼한 반박에 혀가 내둘러질 정도다. 사실 전에 레닌글을 읽었을때 막연한 첫 인상은 21세기에 레닌이 있었다면 <키보드배틀>로는 아무도 못 이길거 같은 그야말로 "우리동네 미친형" 이미지였다.
책에서 레닌의 전투력에 가장 극딜을 당한 이는 독일 사민당 지도자 카우츠키인데, 읽다보면 너무 극딜당해서 조금 불쌍하기도 하다. 조금 인용해보면,
"카우츠키는 자본가들과 소부르주아지를 설득해서 전쟁은 참혹한 것인 데 반해 군비축소는 유익한 것이라고 믿게 하려고 한다. 교단에서 설교하는 기독교 목사가 자본가들을 설득하여 이웃에 대한 사랑은 영적 갈망이자 문명의 도덕법칙일 뿐만 아니라 신의 계율이라고 믿게 하려고 하는 것과 똑같이 말이다." (246)
"이 목사는 자본가들이 평화적인 민주주의를 채택하도록 설득하려고 시도했다. 그러고는 이것을 변증법이라고 불렀다." (250)
그만 인용하자. 카우츠키에게 비판을 넘어 당 지도자가 아닌 목사라는 노후진로까지 제시한다.
문체의 신랄함은 접어두더라도 당대 제국주의 전쟁에 찬성하는 사회주의자들의 논리를 하나씩 격파해가는 모습은 일종의 카타르시스 마저 느껴진다.
"어느 쪽이 먼저 군사공격을 했는가 또는 어느 쪽이 최초 선전포고를 했는가 하는 문제는 사회주의자의 전술 결정에 어떤 의미도 주지 못한다." (111)
"혁명적 행동에 대한 선전이 없는 평화의 꿈들은 단지 전쟁의 공포를 표현할 뿐, 사회주의와는 아무 공통점도 없다." (177)
"(새로운 정세가) 국제주의 위에서 새로운 그룹을 요구하니까, 그러므로 국제주의자들의 어떠한 단결도 "인위적"인 것이라 거부한다. 정치적 무기력의 극치다!" (189~190)
"아직까지 '충분히 토의되지' 않았다거나 하는 등의 위선적인 주장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중략) 학자들이야 세부적 사항들을 놓고 논쟁하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이유로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적 투쟁을 포기하고, 그 투쟁을 배반한 자들에 맞서 싸우기를 단념한다면 이는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215)
인용을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이 정도로 끝내자. 각국의 사회주의자들은 마르크스와 혁명에 대해 떠들었지만 정작 전쟁이 터지자, "저쪽이 먼저 공격했다." "혁명을 위한 새로운 조직은 인위적 단결이다" "아직 충분한 논의가 없다" 등등의 논리로 제국주의 전쟁을 옹호한다.
이제와서 보면 그야말로 역사의 촌극이자 씻을수 없는 죄를 지은 비극이지만 , 독일 사민당 의원들은 전쟁공채에 찬성하면서 "우리는 전쟁에 찬성해서가 아니라 패배에 반대한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었다.
레닌전집을 신청하고 받았을때 58권부터라서 의아했는데, 읽다보니 왜 출판사가 이렇게 구성했는지 생각해보게된다. 100년전 세계를 전쟁의 참화로 끌고간 사회배외주의자들은 과연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수시로 촛불 항쟁과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운운하는 행정부, 입법부 그리고 언론들이 정작 군비증강에는 박수치며 환호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아찔하다.